문장웹진(819)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집과 나무
집과 나무 황혜경 두고 올 수 없어서 봄의 언덕으로 배낭에 담아 날라서 심어 두려는 것입니까 자목련의 이름은 그림자로만 남으려는 중입니다 목련의 백색이 그 위를 넓게 덮고 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집은 나무에게 말이 없었다 심은 묘목이 집을 둘러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지만 떠나려는 것이었다 집을 황급히 피워내는 개나리들 집을 피하듯이 다른 땅에 심어지고 있습니다 남은 손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오며 잡초를 뽑고 집이 나무를 떠나려는 것인지 나무가 집을 옮기려는 것인지 아주 가려는 것인지 행군을 하듯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옆집 마당에는 또 씨앗이 뿌려지고 있고 저 멀리 앞집에서는 나무들이 가을을 미리 읽고 집에는 겨울이 오고 있는 중입니다 변함없이 바람, 불던 대로 불고 있습니다 떠나는 것들을 따라서 모르니까 가고 볼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모르는 채 갈 것이라는 맹세였습니다 그리고 오고 있습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무장이의 나무
나무장이의 나무 이제니 나무장이가 나무를 쥐고 걷는다 나무와 나무를 쥐고 걷는다 나무에 나무를 더해 걷는다 한 손에 하나씩 나무 두 그루 나무는 말라서 막대기가 됩니다 막대기는 눈먼 자의 눈이 됩니다 한켠에는 들판 한켠에는 어둠 어둠 한켠에는 깨어 있지 않음 들판 한켠에는 죽어 있지 않음 나무가 들판을 어둠으로 물들입니다 어둠이 나무를 들판으로 불러냅니다 나무장이가 나무를 따라 걷는다 어둠에 어둠을 더해 걷는다 들판에 들판을 더해 걷는다 나무 두 그루 나무 두 그루 멀리 바라보는 나무 두 그루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중얼거리는 나무
중얼거리는 나무 때로 없는 것을 두 번씩 발음하는 버릇이 있다. 등대 등대. 들판에서, 바람들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들판에서. 오래 중얼거린 단어들이 입안에서 닳는다. 혀끝에서 닳아, 닳고 녹아 사라진다. 사라진 이름의 얼굴을 떠올리듯 나는 두 번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네가 바라보는 곳은 소실점 너머 어딘가. 너는 이곳에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다 눈동자를 잃은 사람. 그러니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어디로든 가려는 사람. 어떤 예감은 가정법의 서체를 가진다. 어쩌면, 불면의 미래를 견딘다면, 다시 만날 거예요, 한 번은 만날 거예요. 희망 없이, 희망 없이도. 나는 두 번씩 다짐하는 습관이 있다. 그건 의미를 흐리는 어법. 어순이 필요 없는 중얼거림처럼 나를 견디게 하는 어법. 다시 실오라기처럼 흔들리는 등을 향해 두 번 묻고 두 번 읽는다. 검은 숲의 행간 너머 간극 너머 극한 쪽을 향한 네 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