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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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낙엽 독설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낙엽 독설 김록 낙엽을 보고 싶어 보지 않았다 어느 날 무턱대고 밖을 나갔는데 낙엽이 나를 보아버렸다 그런 낙엽은 밟을 수조차 없다 낙엽은 조용하다가도 소름 돋는 소리를 곧잘 낸다 한 무더기의 낙엽은 음향 없이도 이미 으스스하다 여름나무의 체온을 내려놓은 것은 낙엽 낙엽의 짓궂은 등장은 미화원에게만 달갑지 아니한 게 아니다 한 무더기의 낙엽은 태우지 않아도 코를 아리게 한다 어김없이 뜰에, 거리에, 몰려나온 낙엽 낙엽의 심리는 오롯하였던 푸른 마음을 잃고 쉽사리 부서지고 다른 낙엽의 움직임에 따르는 한철*의 심리다 그것은 내가 어느 날 무턱대고 밖을 내다볼 때 낙엽처럼 쌓인 눈을 보아버리게 할 심보다 푸른 시야를 흐리게 하고 소리를 곧잘 지르는 것은 곧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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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세뇌(洗腦)
낙엽 밟는 소리가……」 언제 어디서 우리는 이 시를 익혔던가 교과서에서였던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이 싯귀에 오랫동안 점령당해 버렸던 우리들 낙엽 진 숲속에선 늘 아무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이 마음속이 온통 이 싯귀로 법석임은 한편 즐겁고도 한편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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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수구암 마당에서
수구암 마당에서 박선욱 바람이 자취도 없이 와서 문 여닫는다 마당에 서 있는 밤나무 그 아래 수북이 떨어진 낙엽 가만 가만히 쓸어 올린다 둥그렇게 손바닥 모아 깔때기마냥 비틀어대며 순식간에 회오리진다 지구의 자전축과 같은 각도로 아니 그보다 훨씬 변화무쌍한 각도로 위로 갈수록 꽈리처럼 벌어진 채 후르르 후르르 맴돌며 올라 간다 마당에서 누가 팽이를 돌리듯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누가 채를 치듯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낙엽 밤나무 굵은 둥치 옆에서 겅중겅중 뛰는 듯 수구암 지붕 위까지 훌쩍 날아올라 팽이가 커져서 위태로울 무렵 허공중에 속절없이 놓아버린다 팽이도 없이 채도 없이 말아 올려 낙엽들 마당에 다시 떨어져 쌓이는 동안 나그네 머무는 방 앞에 자취도 없이 다시 또 한 번 와서 문 여닫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