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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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어쩌면 이런 날이」외 6편
청설모가 손에 쥐는 것은 뚝의 소리 눈이 내리는 사람이 되어 잣나무 숲을 맨발로 걷는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찌릿한 전깃불. 천천히 느끼도록 몸을 여기에 둔다. 나는 차가운 밤처럼 선명하다. 무덤의 책자처럼 차갑다. 바닥은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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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리뷰] 월간 〈읽는 극장〉 2회 – ‘사라진, 살아진’
물 내려가는 소리, 사람 걷는 발자국 소리, 콘크리트가 힘을 받아서 ‘끙’하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런 소리들을 다 듣는데, 굉장히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소리들이죠. … 우리는 이것을 정말 사람의 목소리로 더 구체화 시키기로. … (이 전시는) 내가 움직여야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 움직임에 시간이 개입하면서 그런 것들이 더 구체적으로 살아나더라고요. ‘없다’라는 우리말이 가진 의미와 독특함도 이 〈없는 극장〉 전시의 맥락에서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있음의 부정형, 반대어로서 없다가 아니라, 즉 ‘있는 걸 전제하는 없다’가 아닌 그냥 ‘없음’. ‘있다’와 ‘없다’는 상호 독립적인 관계인 겁니다. 이는 우리말이 한 문장 안에서 주어진 위치를 벗어나 뒤죽박죽 순서가 섞여도 말이 되고 이해가 된다는 것을 짚으며, 나아가 우리말 안에서는 공간에 따라 시간이 배치되는 시공간성 또한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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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미술관, 그 불규칙성」외 6편
물의 묘비 노모는 우네 지나온 밤의 모퉁이에 기대 기약 없이 우네 빗금 같은 저 기침 소리 나를 뱉어 내던 소리 귀가 먼 나는 잠을 물리고 한밤 저물도록 노모의 울음소리 알아듣네 키우던 앵무새도 죽고 앵무새와 놀던 고양이도 죽고 노모는 살아 있네 노모만 남겨졌네 나는 노모의 목소리로 노래하네 들매화 창백한 흰빛으로 바닥을 기어 찰랑찰랑 검은 머리 묶은 아이 노모야 노모야 내 품에 안기어라 노래를 하네 물의 뼈 사이 빠져나와 나는 너를 빌렸으니 이제 네가 나를 빌리어 잠들어라 앵무새는 죽고 앵무새와 놀던 고양이도 죽고 노모는 우네 목으로 우네 먼먼 바다 떠돌다 우린 만났네 머지않아 백 년인데 이제 새털처럼 가벼워졌네 해묵을수록 해맑아지는 새 모이 같은 옹아리 감춘 날개 겹겹이 사분의사 박자 흥을 돋우면 노래는 정오를 가르네 나는 문 옆에서 춤을 추네 나 말고 아무도 나를 동정하지 못하여라 노래를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