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9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모임 - 한국 소설의 다양한 목소리와 만나다
갓난아기인 케빈의 울음소리는 에바의 현실이잖아요.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작정 집밖으로 나오는데, 길에서 공사장의 소음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죠. 품안에서 갓난아기인 아들은 목청 터져라 울고 있는데 말이죠. 동우와 신문사 사장이 무향실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 동우의 태도를 보면 에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향실에서는 온전히 자신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는 신문사 사장의 말을 들으며 동우는 “불안”할 것 같다고 말해요.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소리와 대면한다는 게 불안하고 두려운 거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인 ‘리스너’는 ‘그럼에도 들어야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윤 : 저 역시 비슷한 의견인데요. 단순히 ‘듣는다’는 것이 음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 ‘관계’의 소리,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제3회 민들레문학상 최우수상_시] 문 없는 방
그래서 한동안 불을 켜고 잤다 불을 끄고 자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때야 쥐와 시끄러운 소리에 익숙해질 수가 있었다 천구백팔십오 년 구의동 독일제과점 아버지는 원래 없었다 농사지을 땅 한 평이 없어 엄마는 허드렛일 하러 다니시고 누나와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한 달 일하고 받은 월급 사 만원 은행에서 첫 통장을 만든 후 시장에서 엄마와 동생들의 선물을 샀다 그때만큼은 내가 굉장한 부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빵을 만든다 누이를 닮은 보름달 빵 형을 닮은 곰보 빵 엄마를 닮은 단팥 빵 빨간 반죽 통에서 숙성되는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 《문장웹진 3월호》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폐허의 목소리를 듣기 – 제13회 광주 비엔날레의 감각
그곳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비집고 넘어서 내 귀에 닿아오는 작은 소리들이 가득 있었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했다. 오래된 폐허와 그 안에 남겨진 녹슨 침상, 군데군데 붙어 있는 낡은 이름표, 부서진 창과 문들, 그리고 그 녹슬고 스러진 틈 사이로 우거진 담쟁이와 온갖 풀들, 울창한 나무들, 그 주변을 맴도는 벌레와 새들은 나에게 잔뜩 소리 내고 있었는데, 나는 내 귀가 들은 것들을 웅성웅성, 재잘재잘, 혹은 슬픔의 말, 애도의 목소리 같은 것으로밖에 포획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들로는 내 귀에 닿아오는 것들에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입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고 그럼에도 귀로 들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위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