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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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바람, 바람」 외 1편
바람 소리는 슬그니 기억 저편의 바람 소리를 부른다. 오래도록 기억에 가라앉았던 소리가 일어나자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린 시절, 봉화산 기슭 외딴집의 뒤란은 대숲이었다. 츠츠츠스스스, 쉐엑쉐에솨아아, 츠륵츠르츠으, 끊임없이 바뀌는 바람 소리는 봉창에 달빛 가득한 밤이면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는 바람이 운다고 생각했다. 귀신인지 짐승인지, 흐느낌이다가 아우성치다가 호곡성이 되기도 했다. 파락파라락 문풍지 떨리는 소리 곁에서 귀뚜라미가 그 울음을 달래듯 자지러졌다. 꺼어어, 바람 소리 속에 느닷없이 이름 모를 새가 어미의 속앓이 같은 울음을 토하기도 했다. 바람은 낮과 밤이 다르고 나날이 다르고 철 따라 달랐다. 나는 들과 산에서 색색의 바람을 마시고, 내 안에 바람이 차는 줄도 모르고 자랐다. 바람은 늘 밖에서 불어 왔고 밖으로 내몰아서 고향은 먼 그림이 되었다. 바람은 늘 어긋났다. 바깥에서 부는 바람은 나를 벌벌 떨게 했고, 내 안의 바람은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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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평화의 바람
평화의 바람 이영광 생각하면 나는 사랑의 포로였고 슬픔의 포로였고 허무의 포로였다 죽음의 포로였고 불안의 포로였고 희망의 포로였다 생각하면 나는 기운이 넘치는 절망의 포로였고 생명의 포로였고 자유의 포로였는데, 도대체 나는 묶이지 않으면 살지를 못했는데, 이 튼튼한 무균 감옥에 오래된 금이 가고, 오염물질처럼 맑고 깨끗한 공기가 스며들려 한다 해롭기만 하고 힘이라곤 없는,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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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바람 부는 날
그런데 빨간 코트와 내가 바람의 길과 인접한 한 동 외벽에 [바람 부는 날]을 써 둔 뒤부터는 그 앞에 바람의 길 이용자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바람 부는 날]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현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바람의 길에 현실 감각을 부여해 준 덕분이었다. 10분 안팎으로 떠다니는 일이 그리 고되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길이라면 마땅히 벤치를 품듯 바람의 길에도 공중 벤치가 필요했던 걸까? 이용자들은 [바람 부는 날] 앞에 모여 사담을 주고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얼마 전 회사에 동행했던 까마귀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뜻밖의 재회로 마음이 너그러워진 덕분에 까마귀에게 또 필요하면 말하라고, 기꺼이 자리를 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툭툭 쳐 보이기도 했다. 그 앞에서 긍휼해지는 마음이 내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었는지, 이용자들 모두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