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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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아내의 발레 1
아내의 발레 1 장석주 당신은 마루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을 세운다. 발끝에는 부리로 연신 햇빛을 쪼는 작은 새들이 산다. 허리를 세우고 견갑골은 아래로 내리세요. 당신은 보석가게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당신은 손끝을 빈 나뭇가지인 듯 허공으로 뻗은 채 목을 길게 늘인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산비탈을 오르듯 발끝에 힘을 모으고 즉흥곡을 연주하세요. 은잎사귀 같은 귀를 쫑긋 세운 소녀들이 마루에서 공중을 탐색하며 몸을 회전한다. 삐루엣. 삐루엣. 당신은 발끝을 뾰족하게 모으고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는가. 당신은 중력의 그물을 찢고 공중에서 새의 자세를 취하는가. 우리는 비망록을 끝내고 당신은 기다린다. 우리는 날마다 가벼움의 영재를 발굴한다. 저 영재가 당신이 갑각류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할 테다. 당신은 춤 너머의 춤을 추고, 음악 너머의 음악을 듣는가. 당신은 심장에서 피를 펌프질하는 새들과 윤곽도 형태도 없는 식물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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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아내의 발레 2
아내의 발레 2 장석주 노란 새의 꿈을 오래 품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제빵사의 집에서 향기로운 새를 오래 들여다본다. 새는 침울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년 시절은 곧 끝날 것이다. 내 심장에 노란 새가 화살이 꽂히듯 날아든다. 파란 대문을 나서 돌아오는데 어깨 위로 노란 빛이 쏟아진다. 길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태양이 식으면서 노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소년이 나뭇잎과 제 꿈을 텅 빈 폐교 운동장으로 데려간다. 시간은 태고의 빛에 물든 무한의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리고, 새들은 자꾸 추락한다. 소년이 귀를 열어 강물 우는 소리를 듣는다.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면 첨탑의 종을 치는 종지기라도 되어 볼까. 종소리를 저 극지까지 보내고 싶다. 얼음과 서리가 오는 새벽마다 뒤척인다. 결혼식 아침이 밝아 오고, 내 안의 둥근 씨앗들이 싹을 틔울 기미를 보였다. 초가을 저녁 이른 별 두엇이 뜨고, 항구에는 출항을 서두르는 배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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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불가능한 문법
무용단 산하 발레 학교를 다녔고 졸업과 동시에 솔리스트로 낙점되어 춤을 춰왔다는 사람이었다. 톡 튀어나온 둥근 발등과 강한 발목, 긴 목을 가진, 가늘지만 모든 근육이 제대로 짜여 있는, 가장 미국적인 무용수, 발란신의 안무를 가장 적합하게 수행하는, 아름다운 사람. 조에게는 별 의미 없었다. 그가 바리에이션 하나를 완벽히 끝내고 박수를 받을 때조차 조는 느리게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조가 기다리는 사람은 해나였다. 무용단 산하 발레 학교를 학기 중에 겨우 입학한, 단 두 개의 콩쿠르 입상 상패를 가진, 오래된 나무의 달콤한 냄새가 나는, 창백한 얼굴에 다시 흰 파우더를 칠한 아름다운 무용수. 조의 특기는 흰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무대에서 해나를 발견했을 때, 조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안무의 끝이나, 잘 수행된 동작 뒤에 따라온 것이 아니었기에 조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조를 바라보게 하기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