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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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카유보트 따라 하기」외 6편
있다 마른 나무토막 같다 몸통만 남은 도마뱀은 웅덩이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은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는다 종려잎을 흔든다 제 냄새에 취한 사향쥐가 꼬리를 잡고 돈다 본능적으로 식물원에선 감정을 감출 이유가 없다 층고가 높고 채광이 좋아 나는 투명에 가깝다 진심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바라보는 일은 만지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손을 놓지 않는다는 말은 따뜻한 말일까 감정도 사막화된다 가시가 사라진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 가짜인 것 같아 만져봐야 할 것 같고 아열대 식물원을 나가면 연못 정원이다 가까운 데서 바라보면 물고기는 물고기 같지 않고 돌아온 것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종려잎이 흔들린다 나는 어제의 꼬리를 찾아 야자수 아래 흙더미를 뒤지고 있다 뒤진 곳을 또 뒤진다 축축해지면서 우린 아직 웃는 법을 모르고 눈과 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너는 춤을 추는 것 같다 단내나는 흙이 우리를 빨아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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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사막을 주세요
완벽히 파산을 한 지지 아줌마가 발레 교습소를 정리할 때까지 한영진은 이 년간 교습소를 드나들었지만 정작 발레는 준비 동작 말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한영진은 대학에 간다면 발레를 전공할 거라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 다짐을 들은 아버지는 그런 딸의 장래 희망과 상관없이 발레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늠해 보고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사이 좀 살아나는가 싶었던 아버지의 양고기 수입 사업이 다시 주저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뒤에 계속되리라 생각했던 활황의 기운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위기를 타개해 볼 요량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몸에 좋다는 사슴 고기까지 대량으로 구매했으나 그마저도 고스란히 냉동고에서 처리 불능의 얼음덩이가 되어 갔다. 추락은 원래의 제 계획대로 차근차근 부녀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실패를 견뎠고 한영진은 좀 더 강하게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으로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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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에세이] 별 ― 사막의 미학 3 김태형(글/사진) 낙타는 지평선을 건너가지 않는다 기운 햇살을 받은 데리스가 마른 잎을 반짝이고 있었다. 한 떼의 가축과 어린 목동이 말을 타고서 황금들판을 지나가고 나면 바람 소리만 남았다. 데리스의 앙상한 잎은 낙타만 먹는다. 겨울에 먹이가 부족할 때는 양과 염소가 눈 위에 솟아난 길쭉한 잎을 마지못해 먹기도 한다. 석양을 받아 지평선을 건너다보고 있는 낙타는 마른 데리스 빛을 닮았다. 몽골 신화를 보면 원래 낙타는 아름다운 뿔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사슴이 잔치에 가기 위해 낙타의 아름다운 뿔을 빌려갔다. 멋진 뿔을 달고 한껏 뽐을 내던 사슴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낙타는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슴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얼핏 우스꽝스럽지만, 이 신화를 잊고서 낙타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낙타는 기다림의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