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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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푸른 서리
푸른 서리 장옥관 꽃샘추위 찾아온 아침 거친 피부에 발라 놓은 가루분처럼 흙바닥이 푸석푸석하다. 흙에도 살갗이 있는지 한 겹 길바닥이 얇게 들떠 있다. 성성한 서릿발 재미삼아 밟다가 문득 속이 궁금하여 쪼그리고 들여다보니 광섬유 다발처럼 희고 투명한 유리 기둥이 촘촘 하늘로 뻗쳐 있다. 악다문 옥니 같다. 쇠창살 같다. 누가 이 흙바닥을 달뜨게 만들었을까. 공기의 입술이 밤새 애무하였으리라. 피부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흙바닥은 가쁜 숨결 몰아쉬며 한기를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화농의 아침 환멸 속에 질척하게 흙바닥은 조금씩 녹아내리고 서른하나에 혼자가 된 내 어머니의 공규(空閨)가 또한 그러하여 어머니, 날마다 감옥이었겠구나. 악다문 철창이었겠구나. 밤마다 찾아드는 그림자에 푸른 서리[靑孀]는 또 얼마나 날선 각을 세웠을까. 냉기 삼엄한 기억의 복도 문득 빠져나와 돌아보니 그예 일찍 나온 개나리꽃 하나 입술 시퍼렇게 혼자 떨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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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유(引喩)에 대하여
중국 조선족 출신의 학자인 윤해연은 ‘서리 까마귀’란 어휘에 대해 고찰하면서, 한무제(漢武帝)의 「秋風辭」와 위무제(魏武帝) 조조(曹操)의 「短歌行」을 인용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는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새가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소슬한 풍경(‘雁南飛’ / ‘烏鵲南飛’)과 인생무상의 태도를 들어, 정지용의 「향수」에서 ‘서리 까마귀’라는 시어의 고전적인 연원을 해명하고 있다.10) 그러나 이러한 영향관계에 대한 추론은 ‘서리 까마귀’라는 시어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다지 기여하는 것 같지 않다.11) 오히려 이러한 추론에서 필자가 착안하는 부분은 ‘석근/성근’에 대한 인유의 근거를 추적하는 일이다. 윤해연이 인용하였던 조조의 시구에서 그 단초는 이미 발견되었다. 그러면 조조의 「短歌行」가운데 그 부분을 살펴보자. 對酒當歌 人生幾何 술잔을 마주하고 노래하노니. 인생이 길어야 그 얼마더냐. 譬如朝露 去日苦多 아침이슬과 같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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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노란 산국
노란 산국 고인숙 머뭇거리다간 끝장이라며 밭두렁 쑥구렁 바래 가는 산천에 미끄러지고 엎드러지며 노란 치맛자락 펄럭여 숨차게 달려가는 노란 산국 치장도 못한 고슬고슬한 매무새로 쨍그렁 서리 머금은 하늘에도 억만 송이 별로 뜨는 노란 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