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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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골목 서정, 뼈의 기록
골목 서정, 뼈의 기록 - 윤석정, 『오페라 미용실』 (민음사, 2009) 김영희 19세기 파리의 거리에는 자본주의의 모나드로서의 ‘만보객’과 ‘창녀’가 있었다. 이를 윤석정 식으로 말해보면, 21세기 서울의 ‘골목에는’ 쪽방 두어 평에서 탈출해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사내(「골목들」)와 골목 벽에 기대어 헛웃음을 파는 여자(「파리」)가 있다. 골목 벽에 지린내를 흘리는 사내, “줄무늬 팬티를 즐겨 입는 여자”는 ‘골목의’ 만보객이고 창녀이다. 윤석정의 시에서 만보객과 창녀가 도시의 거리가 아닌 동네의 골목에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시인의 시선은 거대한 상품 전시장으로서의 도시와 인간관계가 상품관계로 치환되는 거리가 아닌, 저녁밥을 안친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고 일당과 맞바꾼 돼지고기로 삼겹살을 구워먹는 후미진 골목(「자목련이 활짝」)의 풍경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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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정 시인들과 그 감성을 꿈꾸던 이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시는 낯섦을 얻고 서정을 잃었다. 독자를 잃고 시인을 얻었다. 시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서정시가 낭만과 설렘의 시골길이었다면 지금의 시는 신문물이 즐비한 잘 구획된 신도시의 화려한 길인지도 모른다. 서정 시인이 정류장마다 서 있는 독자들을 태우고 가는 버스 기사였다면, 현대시를 쓰는 시인은 정해진 목적지로만 향해 가는 택시 기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럿이 함께 타지만 각자의 감성에서 타고 내리는 버스 승객이 서정시의 독자였다면, 거침없이 하나의 목적지로 달려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이들이 현대시의 독자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딱히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변화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일면 인위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수만 명인 시대를 살지만 독자의 수는 가늠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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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변선우 이팝나무 두 그루 사이 ‘김’은 앉아 있다 온몸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을 감각하다 눈 감는다 벤치가 편안해진다 나뭇가지가 쩍, 하는 소리와 흔들린다 비염 앓는 ‘김’은 재채기를 하려다 만다 눈물이 다소 흘러내리고 있으나 손수건으로 훔친다 이팝나무 꽃이 ‘김’의 정수리에 떨어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코 ‘김’은 고양이 한 쌍을 본다 암수거나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 한 쌍이 고요하게 지나가는 걸 본다 적요를 등에 태우고 땅의 끝으로 향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이팝나무 꽃이 다시 한 번 정수리에 떨어진다 톡, 톡, 이팝나무가 소리 없이 우는 것이란다, 어느 서정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사이 자전거 두 대가 지나갔고 노후한 봄과 가을이 얼굴 맞대고 떠나갔다 어쨌든 막, 떨어진 꽃이 정수리에 있던 꽃을 ‘김’의 무릎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건 중력이 요구한 일인가 정수리에 있었던, 사정을 무릎으로 옮겨 온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