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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2026년 9월 월 장원 선정 / 성현아 문학평론가
글티너 여러분, 안녕하세요. 멘토 성현아입니다. 벌써 10월이네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어요. 학창시절엔 시간이 참 안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시간이 아주 쏜살같이 갑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네요. 정말 틈틈이, 부지런히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도 그런 나날 보내시길 바라고요. 노벨문학상 발표도 있었는데 보셨나요? 저도 앤 카슨의 시집을 다시 들춰 읽어보고 있습니다.
* 감상&비평 게시판 월 장원
9월에는 비평 편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제출된 비평문들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다들 언제 그렇게 열심히 쓰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Marllin Zero, 「피뢰침(김영하, 1998)의 상징에 관한 효용론적 관점의 해석」
-노스텔지아, 「정언명령, 써야할 의무」
-시유레, 「살아갈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영화 『씨 인사이드』 비평문)」
세 편의 글 모두 월 장원이 되어도 좋을, 각각의 장점이 빛나는 글이었고요. 그중 구성의 완성도가 높아 안정감이 있는 시유레님의 글 「살아갈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영화 『씨 인사이드』 비평문)」를 장원으로 선정했어요. 축하합니다! 다른 두 편의 글 역시 참신한 발상과 새로운 시도가 인상적이어서 마지막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세 작품 모두 훌륭했어요.
시유레님의 「살아갈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영화 『씨 인사이드』 비평문)」는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영화를 발판으로,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글입니다.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우리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의제로 확장해내는 솜씨가 굉장히 좋았어요. 더불어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상충하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칫 공회전할 수 있는 논의에 영화의 연출 방식에 대한 분석을 더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이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일과 맞닿아 있으며, 따라서 ‘감정’의 차원에서도 논의될 필요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두루 아우르는 풍부한 비평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려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태도도 신뢰할 만했고요. 장애를 갖게 된 신체에 관한 논의로 조금 더 나아가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스스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뇌사 상태의 환자나, 죽음을 선택했더라도 이를 실행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조력 사망의 경우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논의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졌고요. 무엇보다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글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었어요. 정말 정말 축하합니다!
* 이달의 콘텐츠 :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여러분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아마도 한 번쯤 읽어보셨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고전이자 명작으로 자리 잡은 책이지요.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큰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기도 하고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는데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너무 불온해 보여서ㅎㅎ 약간 무섭기까지 했어요.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데미안이 하던 독심술도 혼자 학교에서 따라 해보곤 했던 기억도 나네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이번 가을 독서 토론을 진행하기 위해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그러자 새삼 달리 보이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데미안이라는 인물이야말로 진정한 비평가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데미안은 성경과 학교에서 배운 내용마저도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며, 이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인물이었어요.
특히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알려진 ‘카인’을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종교나 학교 등을 통해 이미 권위와 신임을 얻은 텍스트라 할지라도요. 충분히 의심해보고, 상상력을 보태어 재구성해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데미안』이 더욱 특별하게 읽히더라고요. 에밀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매혹되면서도, 자신이 배워온 내용이나 데미안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만의 관점을 구축하려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기만의 가치 평가 기준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얼마간 비평가로 거듭나는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비평 게시판에서 그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책의 재독을 권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