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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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소년 황정은 머리맡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신경을 모은다. 밤새 딱딱한 목질에 짓눌려 목덜미의 감각이 둔하다. 오른쪽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소년은 그 방향으로 급히 머리를 돌린다. 눈꺼풀 속에서 빨간 점이 확 피어오른다. 쥐다. 소년은 생각한다. 쥐가 또 수챗구멍에서 기어나왔다. 이 방은 늘 좁다. 세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크기의 방을 네 사람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문턱에 머리를 올려두고 잠을 잔다. 문턱 너머는 낡은 타일 바닥이다. 타일 바닥엔 구겨진 신발들이 흩어져 있고, 수챗구멍과 음식찌꺼기를 담은 바구니가 있고, 곳곳에 쥐똥이 흩어져 있다. 닷새 전쯤 잠에서 깨고 보니 정수리가 얼얼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 속을 더듬었더니, 덜 마른 피가 손톱 밑에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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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스톡홀름 소년
스톡홀름 소년 문정희 백야가 뜬눈으로 잿빛 아침을 데려왔어 음울한 어깨 늘어뜨린 거리에서 스톡홀름 소년을 만났어 이름이 성호라고 했어 남은 치약을 쥐어짜듯이 기억을 짜내어 그는 말했지 코리아에서 태어났다고 베리만인가 마르틴손인가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성호야! 하고 그를 불렀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하나의 꽃이 되지’못하고 한쪽이 찌그러진 별처럼 묘한 웃음이 되었지 처음 듣는 자기 이름! 성호야! 를 듣고 그는 갑자기 개구리처럼 어기적거리며 내게로 왔어 소름 돋아 오소소 나도 그에게로 갔어 늘 배가 아프다며 성호가 부끄럼도 없이 대뜸 내 앞에 배를 내밀었지 자궁으로부터 배제당한 입양이 심장 깊이 총알이 된 것일까. 어린 짐승처럼 어미 냄새를 킁킁 맡은 것일까 순간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노래 하나 꺼내어 나는 낮게 부르기 시작했어 “엄마 손은 약손! 성호 배는 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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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지구를 지키는 소년
지구를 지키는 소년 서진 1. 지구를 구하는 건 만만찮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은 더 만만찮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벌써 5학년이다. 숙제도 작년보다 늘어났고 가야 할 학원도 두 개다. 나는 지구만 지키면 되지 않나? 본부에서 학교 성적까지 챙기는 건 오버다. 분명 부모님과 모종의 계약을 했을 것이다. 지구를 지키되 성적을 유지하게 도와줄 것. 제대로 도와주려면 과외 선생이라도 붙여 주든가. 왜 일반 아이들이랑 똑같은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학원에 다니게 하는 건지. 학교에서도 헤헤거리며 바보 같은 아이 흉내를 낸다. 심심할 때마다 내 머리를 치는 영철이 같은 녀석에게 주먹 한 방을 날리면 창문 밖으로 날아가겠지만, 참아야 한다. 더 이상 전학을 다니기는 싫다. 아토믹스라는 게 밝혀지면 아이들은 나를 괴물 취급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