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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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책벌레 손홍규
책벌레 손홍규 김종광 나는 처음엔 그를 두려워했다. 싸움을 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긴 모습도 하는 짓도 옛날 시골 부잣집의 머슴 ‘마당쇠’ 같다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는, 당연히 주먹도 좀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로는 잘 싸워도 주먹은 휘두를 줄 모르며 눈물이 많은 청년이었다. 나는 그가 형님이라고 말해도 좋을, 나이 차이 별로 안 나는 선배들은 물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나이 차이 엔간한 선배들에게마저도 과감하게 덤비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문단 초짜가 저리도 용감할 수 있다니! 그는 선배들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속으로 꿍쳐두고 삭히는 법이 없었다. 정면 논쟁을 통해, 선배를 설복시키든, 자기가 설복당하든 양단간에 결판을 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그랬다. 그도 술이 좀 들어가야 개겼다. 하긴 맨 정신에 문단초짜가 어찌 그리 용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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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00년대의 한국소설, 혹은 경계를 넘어서는 글쓰기의 열망
손홍규 : 저는 지금도 원고지에 만년필로 씁니다. 잡문 같은 것은 컴퓨터에 쓰기도 하는데 소설은 다 원고지에 쓰거든요. 동물적이죠. 잉크 냄새가 좋고, 손 움직여 쓰는 것이 좋고, 만년필이 지날 때 나는 삭삭 소리가 좋습니다. 뉴미디어가 우리 삶에 전반적으로 걸쳐 있기도 하지만 삶 전체를 볼 때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TV 본다고 제 삶이 풍요로워진다거나 인터넷을 한다고 제 삶이 현대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습니까. 또 어떤 것이 새로 나올지도 모르고. 그것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버린다면 어떻게 삶을 통찰합니까.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김중혁 : 손홍규 씨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만약에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데 그 글이 바로 활자화되어, 피디에이 문자인식처럼, 그렇게 바로 저장이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손홍규 : 그래도 아닐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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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낯익은 상처의 블록으로 지은, 낯선 레고의 집
손홍규: 이문구적 문체와 성석제적 입담 사이 손홍규 소설의 첫 번째 놀라움은 그의 젊음과 그의 언어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극이다. 첫 작품집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가 손홍규. 갓 서른의 문턱에 선 젊은 작가에게 어떻게 이토록 난만한 언어의 춤사위가 가능한 것일까. 걸진 사투리의 응어리, 되알진 육두문자의 카니발, 감옥이나 주먹 세계에서나 가능한 치열한 은어와 비속어의 몸부림. 손홍규 소설에서는 이 모든 언어적 충동이 야생동물의 매서운 송곳니처럼 번득인다. 손홍규에게서는 십대에 이미 가장이 되어버린, 속 늙은 소년의 냄새가 난다. 조숙하다 못해 조로해버린 이 젊은 작가의 입담은 경이롭다. 그는 비애와 궁상으로 점철된 일상의 그늘을 응시한다. 그의 붓끝은 한 줌의 연민도 서리지 않은 채 가차 없이 대상을 해부한다. 그는 미디어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닿지 않는 궁벽진 문명의 사각지대를 찾아 떠나는 21세기의 돈키호테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달리 손홍규는 영웅의 판타지를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