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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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시계
시계 김태수 아버지 힘겹게 팔을 올리셨다 시계는 깡마른 팔목 지나 팔꿈치에 걸렸다 시계는 그놈 올 때인데 올 때인데 시계는 아버지, 깊은 잠 속으로 데려가 버렸다 시계는 지금 우리들 손목에 살아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보았는가 낮술에 취한 이웃 도회에 내리던 저녁놀 또 다른 이웃 도회의 단칸셋방에도 내리던 어둑살 그리고 먼 고향집은 짙은 어둠 뿐 황망(慌忙)하여라 아버지 바삐 가신 작은 집 짙은 밤을 흔들던 더 작은 조등(弔燈) 하나 조등 하나, 아직도 또렷하다 한동안 그 도회, 그 낮술 속에 빠져 있었다 시계는 아직도 그 도회, 그 낮술 속에 빠져 있다 시계는 손목에서 쉴 새 없이 재깍대며 우리들 생애를 질기게 보듬고 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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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물방울 시계
물방울 시계 흉기가 되도록 뾰족해졌다, 그러나 어떤 시간도 공기와 같아서 삼켜야 하는 것. 꺽꺽, 네가 시간을 뱉었을 때,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무거워진 물방울이 떨어질 때, 함께 깨지고, 합쳐지고, 한 줄기처럼 흘러가자, 물방울의 형태로 매달릴 수 없는 무게와 물방울의 형태로 매달리지 않는 무게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너는 조금 일찍 떨어져도 돼, 어떤 새가 제 무게를 견디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겠니? 밤에, 나무에 깃든 새와 아침에, 나무를 떠나는 새는 같은 새의 다른 가능성, 다른 꿈들. 어떤 시간은 새와 같아서 구부러진 발톱으로 붙잡고, 부리로 쪼고, 작은 몸통을 울리며 신기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때도 그랬지, 시끄럽고 끔찍한 소리를 낼 때도 우리는 귓속의 새소리를 이해하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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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크로핑(cropping)과 언어의 시계(視界)
편의상 위에 인용된 시를 카메라(1), 카메라(2), 카메라(3)으로 임의로 지시하기로 하고 각각의 카메라에 포착된 전모 ― 여기에는 시각적이고 언어적인 풍경이 모두 포함된다 ― 를 시계(視界)(1), 시계(2), 시계(3)으로 지시하고자 한다. 까닭이 있다. (그림 – 에드워드 호퍼, 「밤의 창문(Night Windows)」, 1928) 이 그림은 잘 알려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밤의 창문(Night Windows)」이다. 많은 설명이 가능하겠으나 현대인들의 불안과 고독을 선명한 명암 대비와 크로핑(cropping) 기법에 의한 특수한 시계(視界)의 분절에 의해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다. 가시적·가촉적 질료에 의해 비가시적 주제를 표현하려는 그림의 이상을 현대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사(前史)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