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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신간리뷰] 부정의 시쓰기, 부재하는 공동체
[문학 신간 리뷰] 부정의 시 쓰기, 부재하는 공동체 - 황인찬,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리뷰 김태선(문학평론가) 황인찬의 첫 번째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2012)가 출간되었을 때, 그의 작법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인 일이 있다. 그 특징적인 것들 중 하나는 관조의 태도, 즉 사물에 어떤 개입을 하기보다는 그 사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을 말로 옮기려는 태도였다. 관조라 했지만 물론 시의 주체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진 않는다. 대상에 어떤 작용을 가하기도 한다. 가령 「건조과」에서 보이는 “나는 말린 과일로 차를 끓인다”라는 수행문처럼. 그런데 “말린 과일은 뜨거운 물속에서도 말린 과일로 남는다”라는 표현처럼, 어떤 행위를 가하더라도 여전히 사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의 주체가 대상에 가하는 행위는 무위의 행위가 되고 관조의 태도는 유지된다. 분명 어떤 일을 하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작용을 산출한다. 이 지점에서 ‘안 하기를 행함’이라는 의미인 종래의 무위와는 조금은 다르다.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은 줄어들고, 행위를 하는 장면이 늘어났다. 시의 주체는 더 이상 대상을 관조하지만은 않는다. 행위는 주로 “~는데, ~이다”라는 구문으로 나타난다. 가령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종로일가」), “다른 아이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조물」), “아무런 비밀도 없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다”(「네가 아닌 병원」), “총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는데 총소리가 들리는 것은”(「여름 연습」), “네가 죽는 꿈을 꿨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검은 모래가 하염없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바다였다”(「유사」), “누군가의 죽음도 아닌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한 가지 일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등, 이외에도 열거하지 않은 많은 표현들이 있다. 이러한 문장들은 “~이므로 ~이다”라는 인과의 표현과는 달리, 어떤 행위가 일어났음에도 뒤따르는 결과는 행위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이루어지는 바를 나타낸다. 때문에 시에 등장하는 주체의 움직임은 행위를 지워버리는 행위가 된다. 일종의 부정(否定)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개의 부정은 대상을 향하는 반면, 이 움직임은 시의 주체 자신을 향한다. 주체가 목적한 바대로 조작되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가 주체의 조작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를 드러내는 운행이 『희지의 세계』에서 주로 나타난다. 목적에 의한 작위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사물과 그것에 어떤 작용을 가하거나 바라보는 주체가 있다. 이들의 관계를 무엇이라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황인찬의 시에 나타나는 관계들은 어떤 목적을 담지하고 쓰였다기보다는, 글쓰기 자체의 유희적 움직임에 의해 산출된 우연의 결과들이다.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목적을 배반한다. 유희적인 움직임에 의한 결과는 반성적 사유를 배제한다. 즉 그 결과를 움직임에 내재한 목적인으로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책상이 있고 책상에 누가 누운 흔적이 있고 수백 개의 창이 있고 거기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조용히 움직이는 초침이 있고 망상과 전망을 혼동하는 시인이 있고 점차로 잦아드는 들숨과 날숨이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낮과 무관한 밤이 있고 눈뜨지 않는 육체에 갇힌 영혼이 있고 창밖으로 무수하게 펼쳐진 마지막 잎새가 있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자주 아픈 사람은 병원에 자주 가고 계속 아픈 사람은 병원에 계속 있고 아프지 않으면 오지도 못하는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 아무런 비밀도 없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다 - 「 네가 아닌 병원」 전문 시가 그려내는 것은 ‘네가 아닌 병원’의 풍경이다. 누가 누운 흔적이 있는 책상이 있고, 수백 개의 창과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고, 망상과 전망을 혼동하는 시인이 있고, 잦아드는 숨이 있고, 낮과 무관한 밤이 있고, 육체에 갇힌 영혼이 있고……. 기묘한 일은 이 풍경을 열거하는 대목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이 전혀 병원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병원에 있어야 할 것들이라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아파 보이는 것들만 있다. 시에선, 병원이라면 아픔들을 응당 치료하는 데 쓰이는 것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황인찬의 시는 부정하는 문장의 배열로써 인식의 충돌을 일으키며 의미화에 저항한다. “이곳은 네가 아닌 병원”은 물론 그 의미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이곳은 병원이되 네가 아니다. 병원은 어떤 장소의 이름이기에 사람으로 상정할 수 있는 ‘너’라고 지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두 대상이 문장에 의해 등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네가 아닌’은 곧 ‘병원’과 등가가 되고, ‘병원’은 ‘너’의 부정이다. 그러나 시는 ‘너’에 대해 말하는 바가 없다. ‘네가 아닌’ 것들의 목록만이 시에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너’는 없다. ‘너’와 대립된 것이라면 ‘네가 아닌 병원’이라는 이곳에 있는 ‘나’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나’는 발화의 주체로 등장할 뿐이지만, 발화가 들려주는 목록들은 결국 ‘너’를 부르지 않고, ‘나’를 지시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로써 ‘나’는 폐쇄적인 곳에 고립된 인물처럼 나타나게 된다. “네가 아닌 병원”에 대한 목록을 나열하면서 ‘나’의 발화가 우리에게 알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아무런 비밀도 없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다”라는 사실만이 전부다. 주체의 발화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발화가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너’를 부르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시는 담화의 맥락에 놓여 있지 않다. 담화라는 것은 발화 작용에 포함되어 있는 ‘너’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지만, ‘너’는 발화문에서 부재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너’는 부재함으로써 발화 상황과 함께한다. 동시에 시는 여전히 담화로 기능한다.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특정되지 않은 비인칭, 부재의 자리로 남아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겨우 집에 왔구나” 그건 일어나지 않는 일이야,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하고 “우리 이제 뭐 할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는 묻는다 - 「 조율」 중에서 「조율」에선 ‘나’와 ‘너’가 등장하며, 분명 둘은 서로 말을 나누고 있다. “너는 나의 왼팔에 매달려 있다”라는 표현처럼 두 사람은 꼭 붙어서 걷고 있다. “뭘 하고 싶어?”라는 물음은 ‘너’의 말이다. 그런데 화자는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라고 한다. 묻는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추운 겨울 저녁 두 사람이 걷는 일 자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앞선 상황 자체가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라는 표현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이 앞서 일어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라는 말 자체도 부정된다. 부정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담화. 담화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담화의 상황에선 발화하는 ‘나’와 그것을 수신하는 ‘너’가 발화된 문장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나’나 ‘너’가 직접 현시되지 않더라도 둘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담화란 1인칭과 2인칭이 만들어내는 이자관계(dyadic relationship)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나’와 ‘너’ 두 사람이 분명히 등장하고 ‘너’의 말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과 행위 모두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또한 ‘나’와 ‘너’의 직접적인 대화의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향하는 ‘너’의 발화는 직접 등장하고 있지만, ‘나’의 발화는 ‘너’를 향하지 않고 담화 상황 바깥에 있는 수신인을 향한다. 그 수신인은 특정되지 않은 사람, 담화 내에 부재하는 인물, 그러나 화자에게는 청자로 가정된 부정(不定)의 인칭이다. ‘나’는 ‘너’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발화가 향하는 곳은 기묘하게도 ‘너’에게서 비껴나 그 부정의 인칭을 향한다. 수신인을 시의 독자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독자 역시도 불특정한 누군가일 뿐이다. 부정은 계속된다. 가령 “우리는 아름다운 숲 속을 거닐게 될 거야”라는 미래를 가정하는 표현은 “그건 이미 일어났던 일이고”라는 문장으로 부정되고 “겨우 집에 왔구나”라는 말은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라는 문장으로 부정된다. 게다가 1연에선 “추운 겨울 저녁”에 걷고 있던 두 사람이 5연에서 “여름밤 주택가에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 걷는다는 말로 부정되고 있다. 앞서 제시된 상황을 부정하는 문장들로 발화된 모든 것들이 불확정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불확정 상태를 만드는 관계의 양상은 동시에 문장들 간의 위계를 전복시킨다. 일반적인 문장의 흐름은 대개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흐름은 하나의 주제 아래 모든 문장을 종속시킨다. 황인찬의 시에 쓰인 문장들은 그런 순차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무언가에 종속되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흘러가는 어떤 필연의 움직임에 대한 거부일까. 목적을 향해 달려간다는 건, 하나의 의미로 고착되어 간다는 것, 일관된 모습으로 종결되어 간다는 것, 어떤 앎을 완성한다는 것일 테다.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하나의 작업이 의미를 갖게 된다면, 그 역시도 어떤 완성이지만 동시에 죽음으로의 귀결이기도 하다. 어떤 혼은 돌아오지 않고 어떤 혼은 깃들지 않는 교실 안에서 시간이 자꾸 흘러 애들이 죽고, 살아 있던 내가 만든 작은 물건을 믿을 수 없게 커져버린 그 피조물을 죽어버린 나 자신이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 어디에 있지? 혼을 잃은 선생님과 죽은 애들 사이에 여전한 모습으로 네가 있었고 차가운 캔 음료를 얼굴에 대며, 이제 살 것 같다고 너는 말한다 - 「 조물」 중에서 『희지의 세계』에서는 전작에 비해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타난다. 『구관조 씻기기』에도 죽음에 관한 시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희지의 세계』에서는 죽음이나 끝에 관한 이야기가 높은 빈도로 출현한다. 죽음은 분명 모든 존재자들의 가능성들이 불가능에 이르게 되는 종착지지만, 동시에 어떤 삶, 혹은 작품이 완성에 이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희지의 세계』에선 그 죽음이 출현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가령 「조물」에서는 “살아 있던 내가 만든 작은 물건을 믿을 수 없게 커져버린 그 피조물을// 죽어버린 나 자신이 보고 있었다”라는 상황이 제시된다. ‘나’의 의도는 자신이 만든 물건에 혼이 깃들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작은 물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작게 만들었던 그 물건은 제멋대로 커져버리고, 오히려 제 혼이 몸을 빠져나와 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너’를 위해 물건을 만들었던 ‘나’는 죽어버렸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너’는 “차가운 캔 음료를 얼굴에 대며, 이제 살 것 같다고” 말한다. 분명 어떤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행위들의 결과는 의도를 배반하며 일어난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서정2」에도 등장한다. 「서정2」에서는 “여름 속에서 자꾸 죽으려 하고 있었다 나무는 죽는 것에 가까운 것이 되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정작 “나무는 이 여름이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진술이 이어진다. 나무는 “여름 속에서 자꾸 죽으려”는 행위를 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던 여름이라는 건 가짜였던 셈이다. 이외에도 『희지의 세계』에는 의도에 따라 행해지는 움직임이 결국에 가선 제 의도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된다. 시집의 제목 『희지의 세계』마저도 자서에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고 쓰여 있다. 시의 주체는 의도에 따라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하지만, 그의 앞에는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들이 잔뜩 펼쳐지고 있다. 분명 우리 시대는 어떤 일을 해내고자 하여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이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좌절에 빠지곤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앞선 세대의 어른들이 일러준 대로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은 노력에 비해 턱없이 하찮고 시시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날이 흐를수록 체계는 공고해지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쉽게 세상을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주체의 움직임이 자신의 의도대로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그 주체는 허무와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황인찬 시의 주체는 비탄에 빠져 있지 않다. 황인찬 시의 주체는 부정의 시 쓰기가 보여준 움직임처럼 의도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움직임마저 부정하면서 어떤 극적인 행위가 아닌 유희를 향해 나아간다. “비는 비의 모습을 지우고, 소리를 지우고,/ 그 부분이 비가 좋아하는 부분”(「채널링」)이라는 말처럼, 그의 시가 드러내는 움직임은 자기 자신을 지우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런 일을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라 생각하는 모습이다. 시인이 행하고자 하는 일은 큰 변화가 아니다. 「채널링」에 쓰인 것처럼 “우리는 시시하고 즐거운 일들을 하기로 했다/ 그것들을 계획하면서 너무 신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시는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하지 않는다. 황인찬의 시는 다만 시시한 일들을 계획하며 즐거워하는 이의 목소리를 구현하려 할 뿐이다. 시로써 그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는 있지만, 애써 어떤 공통분모를 만들거나 연루되고자 하진 않는다. 그러나 시는 하지 않음으로써 무언가 해낸다.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딘가에 당도하는 것”(「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처럼. 물론 이런 일은 “너무 무섭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시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자리로부터 달아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잘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기로 했어요 그냥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자꾸 멍하면 좋아요 아주 좋아요 - 「 멍하면 멍」 중에서 아마도 그건 시를 쓰는 일. 황인찬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누군가 시를 쓴다면 그건 그냥 시예요”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수식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중요한 건 누군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 시가 있다는 사실이며,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냥 시’라는 점이다. 시는 분명 어떤 의미를 전하지만, 어떤 정확한 의미라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시를 읽는 일은 항상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시는 이 세계라는 감각의 연속들을 분절하여 언어라는 옷을 입힌다. 그럼에도 그 언어가 작품이 되는 순간, 다시 사물이라는 연속적인 감각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물은 하나의 외연에 무한한 내포를 담지하고 있는 것. 때문에 사물의 감각을 의미의 그물로 포획하려 할 때엔 붙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시는 매순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맥락에 자신을 기입하면서, 동시에 그곳을 빠져나간다. 일의적인 의미로 시를 읽어내는 시도는, 그래서 불가능한 시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시는 나름의 의미를 그 누군가에게 전한다. “멍하면 멍 짖어요”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어떤 은유나 알레고리 같은 걸 확인할 필요는 없겠다. 은유라든가 알레고리라든가 하는 것들을 몰라도 괜찮다. 『희지의 세계』에는 ‘모른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애써 시인은 이를 앎의 상태로 전환시키고자 하지 않는다. 앎이라는 건 세계를 장악하려는 어떤 가정에 불과할 뿐이다. 모르는 일을 긍정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주체는 자신에게 부과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시인은 “잘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그냥 시를 쓰는 일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예술가의 미학적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를 쓰기 위해선 시를 쓰기 위한 능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전범을 따르는 가운데 획득된다. 시를 쓰기 위해선 시라는 것에 대한 연습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쓰기 위해 학습했던 능력만을 발휘하는 일은 그저 시 비슷한 것만을 만들 뿐이다. 그것은 시가 아니다. 시를 쓰는 일은 능력을 배반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는 가운데서 시가 나온다. 그렇게 쓰인 시는 어떤 목적이나 능력을 따르는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순전히 유희에 의한 산물일 것이다. 더 이상 시인 자신의 것이라 할 수도 없을, 스스로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것이 될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쁨을 준다. “자꾸 멍하면 좋아요 아주 좋아요”라는 말처럼. 시시해 보이더라도, 이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 준, 어떤 목적에 따라 움직일 것을 종용하는 죄악감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움직임이다. 앞서 황인찬의 시에서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홀로 고립된 세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며, 전언의 수신인은 부재하는 누군가라고 언급하였다. 시집의 표제작 「희지의 세계」에는 양들을 기르며 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희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분명 그의 곁에는 양들과 목양견 미주가 함께한다. 그러나 시에는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자 산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처럼 황인찬의 시에 등장하는 초점 인물이나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특정한 개인과 접합되어 있지 않고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특정되지 않은 그 누군가가 된다. 그 누군가는 시의 주체와는 어떠한 공통점이나 우정의 흔적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황인찬의 시가 그려내는 담화의 수신인은 모르는 사람이다. 담화 내에서는 부재하는 인물, 그러나 부재함으로써 담화 안으로 호출되는 인물이다. 이는 ‘나’에게는 부재하는 이로 상정된 ‘너’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황인찬의 시 쓰기는 특정되지 않는 이에게 말을 건네면서 독특한 모습의 공동체를 가정케 한다. 바로 부재하는 공동체, 어떤 앎을 상정하지 않고, 모르는 일을 긍정하는 공동체다. 모든 우정을 배제하지만, 그런 부정으로써 시 쓰기는 어떤 우정을 향해 나아간다. 그 우정이 자리하는 곳은 앎이라는 동일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앎을 상정하는 일은 공동체를 하나라는 동일성의 맥락에 자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름을 긍정하는 이 공동체에는 계속해서 다름을 향해 열린다. 이렇게 폐쇄와 고립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였던 ‘나’의 세계가 열린다. 이는 나와 너라는 이자 관계의 닫힌 항을 상정하는 담화를 부정하며, ‘너’의 자리에 누군가라는 비인칭, 부정(不定)의 인물이라는 부재의 자리를 놓음으로써 닫힌 체계를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독특한 담화에 의해 가능해진다. 불가능해 보였던 소통은 그렇게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렇게, 시를 통해 그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방식은 기묘하게도 어떤 연루를 만들어낸다. 이런 연루를 통해 황인찬의 시를 읽는 이들은 시에 드러나는 ‘있음의 세계’를 서로 나누는 일에 참여한다. 어떤 의미의 공유가 아니라 의미 이전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현사실성을 나누는 것이다. 앎을 상정하는 비밀을 나누는 것보다, 모르는 것 자체를 긍정하며 나눠 갖는 일이다. 앎을 상정하는 미지의 세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든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유희하는 희지의 세계를 나누는 일이다. 작가소개 / 김태선(문학평론가) -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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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타당한 소통 가능성의 거름망으로 걸러지지 않는 것은 그의 시쓰기 영역 밖에 놓여 있다. 과잉된 감정의 표현과 요설이 이 밖의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념이 소통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한 뒤, 범위가 좁을 수 있는 것들의 특수함과 생생함을 끝내 보편화한다. 그는 견고하고 집요한 이성주의자이다. 그의 등단작 중 하나가 「시론」이라는 점은 그의 견고한 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시론」을 제목으로 단 시는 말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지닌 여느 시인들의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감정보다는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을 등단작으로 하는 시인들의 시를 보기는 어렵다. 그는 「시론」에서 언어를 “불충족한/소리의 옷”이라고 한 뒤 “두려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아무런 축복도 기다리지 않고//다만 말하여질 수 없는/소리를 따라/바람의 자취를 쫓아/헛된 절망을 되풀이한다”고 하였다. 말의 한계를 인식하더라도 김광규는 거기에서 생겨나는 절망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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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마종기(시인) 진행?정리 김종태(시인) 동영상 보기 은퇴 후 근황 살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시를 썼다 진실성을 향해 가는 길 아버지 마해송 우리에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 근황, 문학과 의학 사이에서 김종태 : 오늘은 시인 마종기 선생님을 모시고 웹진 《문장》에서 마련한 ‘작가와 작가’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 쓰는 김종태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와서 그런지 선생님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여러 활동들을 펼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오랜 세월 동안 근무하신 병원에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더욱 활기찬 시인 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으신데 선생님의 근황을 말씀해주시지요. 마종기 : 반갑습니다, 김종태 시인! 저는 1966년 6월에 조국을 떠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미한 지, 햇수로 40년, 정확하게는 39년 5개월 정도가 되었습니다. 2년 반 전에 미국에서 의사 교수로 근무했던 직장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한글로 시를 쓰면서, 조국이 아닌 이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해가 지날수록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제 모교인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이라는 새로운 강좌의 초빙교수로 와달라고 해서 몇 해 전부터 고국에서 한 해의 절반 정도를 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문학과 의학에 대한 강좌가 많이 있었습니다. 문학이 의학도에게 주는 도움이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왔기 때문에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김종태 : 요즘은 강의가 중요한 일이 되셨겠네요. 마종기 : 제 후배들이라서 그런지 본과 2학년, 일반대학으로 보면 4학년 학생들에게 선택과목으로 가르치는데, 여러 가지 느낌이 많이 생깁니다. 제가 의과에 다닐 때는 시나 소설을 읽는 경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외톨이로 다녔는데,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시를 읽고 소설도 읽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회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태 :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의과대학생 중에서 시를 쓰는 제자가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종기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적인 취미를 갖는 것이 의사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힘이 시를 쓰고 문학을 좋아하는 것에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김종태 : 문인이라면 쓰라린 습작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습작 시절에 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4?19세대의 가운데에 계셨는데, 그 세대의 문학적 특징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마종기 : 의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써왔던 이유에는 남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 생각하지 않던 의과로 대학을 정하고 물리?화학 공부를 하면서 저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의과대학에 다니다 보니 책을 읽거나 시를 쓸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시를 많이 못 썼지만 주위에 글 쓰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군의관을 하고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문학을 집어치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로서 외국에 나가 산다는 것이 힘들어서 시를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적인 충격 때문에 오히려 시로 돌아와서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막혀 있는 공간,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미로라는 느낌이 있어서 반사적으로 시를 쓴 것 같습니다. 고국에서 적당한 직업을 가졌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막혀 있는 듯한 정신적인 상태가 시로의 탈출을 시도하게 했습니다. 김종태 : 선생님께서는 의사라는 삶과 시인이라는 삶, 이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잘 만들어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문학사를 살펴보면, 체호프처럼 소설가이면서 의사인 경우와 존 키츠처럼 시인이면서 의사인 경우가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문학과 의학』이라는 저서에서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연과학인 의학과 인문과학인 문학 두 가지를 병행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에는 어떤 것이 있으셨는지요? 마종기 : 의학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1+1=2가 꼭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파괴될 수 있는 자리에 자주 서게 됩니다. 문학의 경우 1+1=2가 되면 오히려 문학이 아닌 것이 되지요. 그런 것이 의학이 가지는 정확성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조화가 사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아마도 내가 의사로서의 외로움을 크게 겪지 않은 것은 문학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행운이 있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김종태 :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균형 감각이 선생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셨으니,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를 쓰신 셈인데요. 영어로 생활하는 유랑자로서 모국어인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주었는지요? 김수영의 칭찬 마종기 : 미국에서 의사 수련을 시작으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시를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순간이 되니까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 모국어 시를 읽고 쓰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가 나에게는 어려운 시간을 견디게 하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허영의 소산이나 이름을 위한 욕심이 아닌, 내가 살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에 절실했습니다. 고국에 살지 않으면서 모국어로 시를 써야 하는,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살려 달라’는 외침 같은 것이 시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조건들이 오히려 나에겐 시를 쓸 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김종태 : 미국에 계신 것이 오히려 역설적이게 시를 더 열심히 쓰시게 만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조국에 대한 서운함과 사랑을 시로 녹이셨습니다. 어떤 시인에게나 자기가 가장 아끼는 시집과 시가 있을 텐데요. 선생님의 경우는 어떠신지요? 한 편만 육성으로 낭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종기 : 수백 편의 시를 쓰고 발표했으니, 어느 시집이나 어느 시를 꼬집어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굳이 시집 한 권을 들자면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1958년 무렵의 작품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시를 낭송해 보겠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 2 저기 날아가는 나뭇잎에게 물어보아라, 공중에 서 있는 저 바람에게 물어보아라, 저녁의 해변가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갈매기 몇 마리, 울다가 찾다가 어디 숨고 생각에 잠긴 구름이 살 색깔을 바꾸고 혼자 살던 바다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해변에 가서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다. 파이프 오르간의 젖은 고백이 귀를 채운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차가운 천국의 바다, 밀물결이 또 해안의 살결을 쓰다듬었다. 나도 낮은 파도가 되어 당신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멈추고 석양이 푸르게 가라앉았다. 입 다문 해안이 잔잔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도 떠도는 내 운명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김종태 : 바다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면서 고독한 비애의 정서가 묻어 있는 작품입니다. 한국 시인의 계보를 나누어본다면 전통서정 계열, 모더니즘 계열, 리얼리즘 계열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이러한 문학사적 계보에 넣는다면 전통서정시 계열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선생님의 시세계에 영향을 미친 국내외의 시인은 어떤 분들이신지요? 마종기 : 재미있는 말씀이시네요. 제가 1960년대 초에 문단에 나와 기고만장해서 다닐 적에 저와 친구들은 스스로를 전통서정 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서정 계열에는 서정주, 박재삼 이런 분들이 있었는데, 저희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 자신도 그쪽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963년 의대 졸업하던 해 발표한 시가 「정신과 병동」이라는 시였는데, 김수영 선생님께서 긴 촌평을 쓰셨습니다. 그분의 산문집에도 그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서정시를 쓴 사람들은 이 시를 읽고 깨어나라고 쓰셨습니다. 그 해의 중요한 수확이라고까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제 시의 전문이 실렸습니다. 초년병 시절이었는데, 많이 고무되었던 사건입니다. 제게 영향을 준 시인은 많습니다. 어느 한 분만을 지적할 수는 없고, 미당 선생님,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당시에 그 바로 밑 세대들은 그분들에게 반항하면서 외국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들, 말라르메 등과 같은 시들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일본 번역을 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밑 세대였습니다. 우리는 한글 1세대니까 일본 말은 모르고 영어로 그 시들을 보았는데 많이 달랐습니다. 프랑스, 일본, 한국의 시학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운을 찾는 것, 상당히 점진적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서정주, 김종삼, 김수영에게 경도되었습니다. 김종삼 선생님은 새로운 서정에 대한 꿈을, 김수영 선생님은 현실참여적인, 문학적으로는 혁명가적인 영향을 주셨습니다. 주위 친구들, 좋은 시를 쓰던 황동규, 정현종, 김영태 이런 시인들과도 영향을 서로 주고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종태 : 선생님의 초기 시는 모더니즘적이며 실험적이었던 데 반해, 중후기 시의 세계관은 세계와 자아의 동일성의 세계, 즉 서정의 세계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수영 선생님 이후 수많은 중진 평론가들과 신예 평론가들이 선생님의 시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김주연 선생님의 ‘동심과 달관의 시’, 김병익 선생님의 ‘투명한 시’, 황동규 선생님의 ‘따뜻함과 아픔의 진혼시’, 박이도 선생님의 ‘명징한 이미지의 시’ 등의 평가가 있는데, 이런 평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마종기 :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과정이 내 시의 틀에도 작용했는데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향수 이미지가 확실히 서정적인 것으로 귀결된 것 같습니다.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것을 주제로 한 시들이 저에게는 직접적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식이 아닐까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이면서 수필적으로 쓰는 시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김종태 : 선생님의 시는 한국 문단의 시류를 좇지 않으면서 진실성, 진정성, 핍진성의 세계를 추구하셨습니다. 마종기 : 감사합니다. 나 자신에게 진실한 시를 쓰고, 그런 내 문학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김종태 : 진실성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선생님의 시에는 주변의 지인들,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선생님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 마해송 마종기 : 의사 수련을 받고 오겠다고 고국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아버지가 뇌일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임종도 못하고, 장례식에 참석할 돈도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1960년대에 고국을 떠난 저에게 신나고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의사 수련을 마치고 싶었습니다. 제 동생이 사회부 기자였는데, 정치적인 일에 관련되어 회사도 그만두고 미국에 와서 살 수밖에 없게 되서 제 주위에서 살다가 1994년 총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문인들이 한일회담 반대하다가 끌려가는 등 정치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학을 하기에는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습니다. 좋지 못한 환경이 시를 쓰게 했습니다. 식물이 해를 쫓아가듯이 기형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김종태 : 『이슬의 눈』이라는 시집에서 동생분에 관한 시를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 전 『아버지 마해송』이라는 300쪽이 넘는 글을 쓰셨는데요. 아버지 마해송 선생님의 삶과 마종기 선생님의 삶 사이에는 어떤 운명적인 인과관계가 있었는지 말씀해주시지요. 마종기 : 아버지께서는 열한 살 나이에 집안에서 성혼을 시키려 하자 극렬히 반대하시고, 또 퇴학을 당한 후 반항아처럼 지내다가 연애 사건을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지 《문예춘추》의 창간 동인으로 활약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재산을 다 날리고, 그 이후 돌아가시는 날까지 직장을 안 가지고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동화만 쓰시면서 사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국책회사 사장, 정부 관리 등의 제안을 다 거절하셨는데 고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반발했습니다. 제가 문과에 소질이 있었는데 진로를 의과로 바꾸게 된 것은, 김현의 말처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편안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세상을 사는 게 뜬구름이라지만 외국에서 사는 것이 더욱 뜬구름이다.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이런저런 관계들이 저를 아직까지 끌어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장성한 아들이 셋인데, 모두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한 것이 자랑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태 : 가난하게 사셨던 문인 아버지에게 반항하셨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더욱 많이 갖고 계신 듯합니다. 마종기 : 의과에 간 것으로 섭섭하게 해드린 것이 죄송하게 생각됩니다. 김종태 : 지금 저승에서 보시면, 시인이나 의사 두 가지 다 잘했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자제분 중에는 문학을 하시는 분이 아무도 없는지요? 마종기 : 네,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시가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까지 직접 살면서 그 나라 그 땅에서 글을 쓰고, 한국의 문인으로 문학적 자각을 하면서 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엔솔로지나 동인지에 투고도 하면서 1970년대 말에는 교수를 하는 시인과 연락이 되어서 국가에서 나오는 돈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현대시가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수들의 시집이 100권, 200권 정도도 팔리지 않습니다. 시의 사정이 아주 어렵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오늘의 시가 살려면 우선 시의 내용이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인들에 비하면 한국 시인들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제 시를 외우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시를 쓰므로 시가 죽지 않도록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너무 장난같이, 우스개로, 어렵게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기자기한 말, 아름다운 말, 섬광같이 따뜻하고 빛나는 시를 써야 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해성에 편향된 젊은 시들 김종태 : 한국 시의 큰 문제가 난해성에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여러 시인들을 살펴보면, 문단에서만 유명한 시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시인은 대중들에게는 인정을 받지만 문단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문단과 대중 사이에서 공히 알려진 시인으로서 한국 문단과 한국 독자들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종기 : 젊은 시인들의 시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습니다. 시의 방향을 상당히 좋게 보아왔습니다. 그 중에 어떤 부분, 해체적인 시를 쓰는 분들의 용기와 열성에 찬성하지만, 한국 시의 장래를 볼 때 그런 시적 편향에 구애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 시가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학 이론만 있는 나라, 현대시의 이론만 있는 나라에는 오히려 좋은 시가 별로 없습니다. 시류적인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고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문학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들이 만들 수 있는 우리의 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구 사조에 대해서 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태 : 너무 극단적인 실험성이나 해체성에 대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종기 : 그러한 것들이 시에 대한 사랑을 식게 할 것 같습니다. 서양 시를 자주 접한 것이 이런 생각에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시 잡지의 종이가 아주 나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 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난해성은 무가치합니다. 김종태 : 우리 젊은 시인들이 각성을 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성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시심으로 세계와 자아의 동일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깊이 동의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마종기 : 내년 중반기에 새 시집을 내려고 합니다. 저는 일 년에 열 편 정도의 시를 발표합니다. 이 기준을 1970년대 초부터 지켜왔습니다. 한 해도 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5년에 한 권씩 시집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대한의학협회와 협력하여 《의학과 문학》이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의학과 문학을 접목시키는 두 가지 일을 할 계획입니다. 김종태 : 앞으로도 계속 좋은 시 더 많이 쓰셔서 저희 후학들을 깨우쳐 주십시오. 오늘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자상한 육성의 말씀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줄 것입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오늘 대담을 마치겠습니다.《문장 웹진/200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