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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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를 배워 등단하고 삶을 배워 시를 쓴 문학주의자
신경림 추천받은 뒤에 인사를 했지. 안상학 그때 당시 당선 소감을 보니까 ‘신경림, 슬픈 나무’ 이렇게 나가면서 주소, 학교, 이름 밝히고 하는데 본명을 신응식으로 해놓으셨더라고요. 신경림 잡지사에서 밝히라고 해서 했는데, 안 밝혀야 하는데 밝혔지. 안상학 이 필명을 쓰시게 된 것은 누가…… 신경림 자작이지. 자호. 특별한 동기는 없고. 안상학 굳이 경림이라고 쓰신 것은 울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신경림 숲을 좋아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나하고 같은 사람이 집안에 하나 있었는데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여러 가지로 내가 싫어하는 성격의 사람이라 그게 가장 큰 이유였지. 안상학 특별히 수풀 림 자를 선택한 것도 나무를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었나요? 신경림 그렇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정직한 대답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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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가문비나무 숲, 문장(文章)의 뿌리들
촛불, 별 그리고 시 ‘문장의 소리’ 500회의 주인공은 신경림 시인이었다. 1956년 잡지 《문학예술》에 그 유명한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그의 시력(詩歷)은 무려 60년이 넘었다. 내가 아직 다 살아 보지 못한 시간을 시인으로 살았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그는 이미 높고 큰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저한테서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는 말은 못 들을 겁니다. 제가 워낙 재미없는 사람이니 얼굴 보는 걸로 만족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셀프 고백으로 시종일관 신경림 시인은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 사이 사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 시 쓰는 일밖에 잘하는 일이 없었다는 겸손함, 시를 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현실의 아픔까지 신경림 시인의 이야기 하나 하나는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처럼 읽혔다. 신경림 시인은 요즘 ‘별’을 보러 다니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별’을 보기 위해 사막과 초원을 여행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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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신경림의 「눈길」이라는 시가 <한국일보>에 발표된 것을 보고 이런 시가 있을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신경림이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쉬운 시가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창작과 비평》이라는 공간에서 신경림이 부각되었습니다. 《신동아》에서 김우창과 백낙청이 「농무」로 특별대담을 했었습니다. 1970년대의 민중 개념이 문학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에 관한 것이었지요. 신경림, 황석영 등의 민중 지향 문학이 쌓여서 1975년에 「민족문학의 현단계」라는 논문으로 민족문학이 한국문학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그 책은 판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박형준 : 그 시절에는 민중이라는 개념이 현장에 존재했었는데요. 지금 민중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현장성을 붙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시영 : 신경림 선생의 시 자체도 변화해 왔습니다. 「농무」는 광산을 끼고 있는 소읍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