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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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당신들이 알고 있는 당신들이 궁금해!
이소연(시인) 1983년 포항 출생. 2014년 한국경제 청년 신춘문예에 시 「뇌태교의 기원」으로 등단. 《글틴 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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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뿔 - 무늬를 배설 중이다 외 1편
뿔 이소연 1 희고 밝은 봄비가 타오른다 2 죽죽 아래로부터 차오르는 봄비, 위로부터 내리꽂히는 봄비 뿔을 세우는 중이다 기어코 대기의 껍질을 뚫고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 뿔은 액체여서 눈을 뜨지 못했다 물로 된 단단함이 저녁 해가 지는 곳으로 건너간다 3 봄빛이 점점 더 큰 하늘로 솟구치듯이 봄비가 사막을 지나고 산과 바다로 달려 나가듯이 그렇게 뿔은 후려치고 할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한다 4 이 뿔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어디까지가 머리이고, 또 어디까지가 몸통인지를 안다 5 뿔은 힘이 세지만, 기꺼이 나팔이 될 수도 있다 중심이 막혀 고이는 곳, 거기에 뿔이 있고, 그 뿔이 만드는 음악이 있고 그러나 저기 또 뿔들은 제 냄새 혹은 감정을 들키고 싶어 하는 수 없이 구름을 밀고 별을 긁어 난간을 밝혀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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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무늬를 배설 중이다 외 1편
무늬를 배설 중이다 이소연 금복주 페트병에 방아깨비 잡아넣고 집에 와서 보면, 방아깨비 항문엔 꼭 똥이 나와 있었다 장마철이면 뱀장어 잡아 용돈벌이하고 처자식도 없이 살던 용구 아저씨 죽기 일주일 전, 협성 슈퍼 앞에서 소주 한잔 들이켜고 신 김치 한 조각 집어먹다 똥을 지렸다는데, 흑염소 죽을힘으로 첫배, 새끼를 낳듯 그렇게 똥을 우두커니 쌓아 놓고 죽었더란다 그러고 보니 죽음의 촉감이란 항문에서 시작되었던 것, 너무나 황홀한 의식불명을 맞듯이 도무지 괄약근이 잠기지 않았던 거다 한참을 늘어진 빈 구멍, 아예 제 구멍을 모조리 내놓은 건데,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구멍이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옥죄고 있었음을, 부글부글 끓는 내장의 기억들, 악취란 무늬를 배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