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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울기엔 좀 애매한
울기엔 좀 애매한 * 정창준 연애의 계약기간 역시 좀처럼 연장되지 않았다. 쉽게 해고를 통보 받았고 쉽게 수긍했다. 사랑에서조차 나에게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자리만 허락되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라는 위안은 왠지 반복될수록 서글펐다. 흔한 이별 방식이었고 번번이 슬펐지만 언제나 울기엔 좀 애매했다. 소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입사면접만큼 까다롭거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만큼 모호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았기 때문이다. 간혹 만나고 싶은 여자도 있었지만 인터넷쇼핑몰의 카트에 오랫동안 담겨 있다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다른 물건들처럼 곧 지워졌다. 어차피 내게는 선망할 수 있는 권리만 허락되어 왔으므로 익숙했다. 간혹 만남이 이어지는 여자도 있었다. 주로 호기심의 수명이 길거나 겪고 나서 알아 가는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기념일이 오기 전에 끝나야 하는 연애였지만 어쩌다 기념일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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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오래된 신생
정창준(경향신문)과 홍문숙(세계일보)의 시편이 이에 해당할 것인데, 그중에서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화법을 인용했다는 주(註)가 붙은 정창준 시편을 보자.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燒却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성揮發性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의 발화發火. - 정창준, 「아버지의 발화점」 중 - 선행 시편은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1969」일 것이다. 유년의 가난을 온몸으로 기억해 내는 화자의 어조와 주요한 인물 설정이 꽤 닮아 있다. ‘바람’과 ‘기름 냄새’, ‘김장’과 ‘배추값’과 ‘약’의 세목도 줄지어서 이 선행 시편의 흔적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