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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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잉어
푸른 물이 손가락 끝으로 번졌다. 그 푸른 수액이 온몸을 열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다시 발가락들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내 몸에서 더 이상 발가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땅을 뚫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한 그루 이팝나무였다. 내가 놓아 버리고 잃어버린 그 무엇들의 존재였다. 가슴 속에 쌓여 있던 상실감과 알 수 없는 슬픔의 정체, 나를 이 숲속으로 이끌었던 힘의 근원이었다. 그렇다고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낯설지만 모든 것들이 곧 익숙해졌다. 영혼이 있는 모든 것들은 살아 온 날의 기억들을 갖고 있으니. 내게도 바람과 햇빛과 물로 생육된 영원의 시간이 있을 것이었다. 내 영혼은 조금씩 지난 삶을 관통하여 아주 더 멀리 아득한 시간 속 우주의 어느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억할 수 없는 먼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수면 위로 높이 뛰어오른 한 마리 붉은 잉어였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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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경계를 넘어
헐거워 보이는 대로, 연두색 울타리를 헐겁게 대한 어느 아주머니의 싸늘한 시신이 침묵 속에 돌아왔다. 경계는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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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낭이전(娘伊傳)
“그러면 한 발 늦었어요. 그 김씨 어른은 강도를 만나서 돌아가셨어요.” 김원춘은 낭이가 예상했던 대로 포도청에 불려 다니는 것이 두려워서 김오선이 병으로 죽었다고 말한 것이다. “강도요? 그럼 시체를 봤나요?” “그럼요.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다 봤을 거예요. 가슴을 칼로 찔려서 피가 낭자했어요.” “에그 무서워라. 강도는 잡았나요?” “잡기는 어떻게 잡아요? 죽은 사람 아들이 괜히 포도청에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을까봐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말았어요.” “혹시 강도를 본 사람이 있나요?” “우리야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범골 사람 조영택 어른의 두 아들이 강도를 직접 만났대요.” “예.” 낭이는 뜻밖의 소득을 얻게 되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마침내 살인사건 목격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영택의 초가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었고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 셋이 왁자하게 뛰어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