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6)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징검다리 건너
징검다리 건너 조길성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도랑가에 별빛으로 날아 망아지 눈 속처럼 깊은 밤을 부르던 거기 그리운 것들 실어 우체국으로 보내면 명왕성 해왕성 징검다리 건너 고향집 창가에 갈 수 있을까 삶의 두려움이 긴 그림자 드리우는 창가 어린 나무들 불빛 쪽으로 키를 늘이는데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그렁그렁한 별빛 사이 징검다리 건너 대문을 여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티브이 시저(caesar)
티브이 시저 강 정 티브이를 켜다가 망막에 낀 이끼들이 문득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느덧 자신의 배후를 지운 채 고요한 물상처럼 시생대와 원생대를 급히 오간다 박제된 현세가 문득 아름다움의 전부다 내 마음에서 산란한 최소한의 물질들이 허공의 주사선을 따라 누군가의 긴 밤에 우레로 떨어진다 절망과 희망에 대한 오래된 에피소드들이 볕드는 작은 창가 파리한 화초처럼 슬그머니 입 다물며 인간의 마지막 노리개가 된다 아이가 손 가는 대로 탄주하는 장난감 악기의 새된 소리를 따라 천상의 별길이 어지럽다 오래 동면했던 詩들이 철갑을 껴입고 별세계의 첨단에서 왈츠를 추는 동안 나는 슬픔이라 불리는 낡은 물질을 질겅질겅 씹으며 이따위 유치한 꿈이나 꾼다 이 유치함을 즐거이 봐주는 당신의 텅 빈 동공이 아니라면 난 더 이상 詩를 쓸 곳이 없다 부신 눈꺼풀을 내리 닫는 순간, 티브이가 잠들듯 내가 생각했던 우주의 全面이 폐쇄된다 이 가공의 현세가 아름다움의 개념을 바꾸는 동안에도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지란지교를 꿈꾸며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서 내 지정석은 단연 창가 자리다. 거기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연히 쳐다보거나 옆 사람들 이야기를 엿듣기만 해도 두서너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책도 읽고 원고도 다듬고 전화도 몇 통 주고 받으면 반나절은 족히 지나간다. 창가 자리 바로 앞 인도엔 언제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데 모두 신림동으로 가는 5515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다. 언젠가 나도 그 줄에 끼어 5515를 타고 신림동으로 가게 될 줄 아직 모르고 있던 지지난 해 가을 어느 날, 역시 그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누가 톡톡 어깨를 쳤다. ……누구? 목사처럼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한(이런 표현을 선생은 싫어하겠지만) 조성기 선생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늘 그러던 것처럼 봉천사거리에서 신림동으로 가는 5515 버스를 기다리느라 저 밖에서 줄을 서 있다가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발견하신 모양이었다. 아무튼, 몹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