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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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장마
장마 최영철 창틈에 매달린 귀뚜라미 한 마리 천둥번개에 요동치는 집을 가는 실다리로 부여잡고 있다 귀뚤귀뚤 노래도 멈추고 장맛비에 떠내려갈지 모르는 집을 큰일이라고 큰일이라고 가는 실다리로 떠받치고 있다 장맛비 핑계 삼아 빈둥빈둥 일손 놓은 내게 이리 와 같이 붙잡자고 집 다 떠내려간다고 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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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금강수 한 병
금강수 한 병 최영철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느냐 길은 막히지 않더냐 가로막는 돌무더기 없더냐 그 물속에 뭘 숨겼는지 캐묻지는 않더냐 다른 물 섞어 흔들지는 않더냐 내가 그때 한탄강 너머 띄워 보낸 안부편지 받아보았더냐 그래 이리 부지런히 달려온 것이냐 맑은 개골산 노래 실어 보낸 것이냐 계곡 깊은 개울물에 꼭꼭 눌러 쓴 사연 방울방울 빼곡하구나 이리 살피고 저리 어루만져 다 펼쳐 읽기에 밤이 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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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날아간 것들
날아간 것들 최영철 3억 5천만 년 전 처음 하늘을 난 잠자리는 지금도 그 높이 그 빠르기로 팔랑팔랑 소리없이 날아가고 있고 날아가서는 곧 다시 돌아오고 100년밖에 안 된 비행기는 날마다 더 높이 빨리 날아보려고 쌕쌕 숨을 헐떡이며 날아가고 있고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10년도 안 된 돈 사랑 약속 같은 것 날개도 없이 풀풀 날아가 어느 품에 안겼는지 영영 기별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