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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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와 패러디의 신
그는 원텍스트의 해독자이면서 패러디 텍스트의 설계자인 것이다. 이후 수용 과정에서 독자가 원본을 파악하고 그것과 비교하여 패러디 텍스트의 전략을 알아차릴 때 패러디는 비로소 완성된다.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을 전제로 한 이 소통의 과정은 작가와 독자의 대화일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조우로 이어진다. 이제 기독교의 배타성과 독단성을 패러디하고 있는 '나는 스파게티 괴물교'로 돌아가 보자. 말씀에 따르면 그는 라면이 아닌 여타 모든 면들에게 관대하고(저들을 용서하소서. 자신이 지은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웬만하면 이러지 말길 권유할 뿐 자신의 뜻을 어겼다고 끓는 유황불에 영원히 담그는 벌 따위는 주지 않는다. 김건영이 이 패러디 종교를 시의 지지대로 삼은 것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과장된 비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유머로만 넘길 수 없게 하는 자율성과 상대성에 대한 수호 때문이다. 그것은 김건영이 생각하는 공존의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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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친절한 미류씨
미류씨, 왜 그렇게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 친절해 보일까봐 말을 탄 남자가 초생달처럼 생긴 칼을 들어 내 목을 쳤어 내 목에선 음악이 튀어 올랐어 복수와도 같이 뜨겁고 냉철한 음악의 파편들이 말의 엉덩이로 튀었지 목이 잘린 내가 손을 뻗어 잘린 내 목을 버려진 투구처럼 들어올렸어 나는 마녀도 아니고 요부도 아니고 천사는 더더욱 아니었어 친절했을 뿐 이 별 전체가 감옥이지만 이별은 또 다른 감옥이지 정드는 게 특기지만 당신을 ‘복원’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그러니 친절이나 하면서 감옥을 견디는 거지 늙고 엉뚱한 종족 중 한 명은 무림의 고수와 CEO와 해커와 시인 중 ‘시인’을 선택했고 이모티콘을 좋아하는 종족인 나는 그를 ‘UV시인’이라 불러주기로 했어 UV는 자외선의 약자이고 자외선은 가시광선이 아니야 그러니 친절한 빛이라고 할 순 없지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고통을 현상하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 패러디 해봤는데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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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연재에세이:비문학영역(3회)]내 여동생이 이렇게 라이트노벨 제목을 길게 지었을 리 없어-2
한국어로는 적절한 대응어가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웹에서 쓰일 때는 대략적으로 어떤 맥락 안에서 사용되는 개그의 기본 요소, 패러디 등에서 사용되는 원천 소스 혹은 작품의 스토리상 중요한 결절점 같은 것을 뜻한다. 모종의 공동체 안에서 두루 알 법한 콘텍스트적 요소를 ‘네타’라 부르는 셈이다(한국에서는 ‘네타바레(스포일러)’의 준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잦으나 여기서는 무시한다). 일본의 오타쿠 서사는 세월의 축적을 통해 상당한 양의 개성적 요소를 쌓아올렸으며, 언젠가부터 그 개성적 요소들, 즉 ‘네타’를 창작물 속에 적극적으로 집어넣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