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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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임시보호자
하늘색 내복을 입은 아이가 피카츄 인형을 안고 내 앞에 섰다. 안방으로 들어가 나란히 누웠다. 얇은 이부자리가 눅눅하고 차가웠다. 눈물인지, 땀인지, 오줌인지 모를 물기를 잔뜩 머금었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누웠다. 바닥이 차가웠다. 마지막으로 난방을 한 게 언제인지. 할 수 없이 다시 요 위로 올라갔다. 아이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눕더니 앙상한 등을 보이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바닥에 가슴과 배를 붙이며 엎드렸다가 나를 향해 모로 누웠다. 노란 피카츄 인형 때문에 아이의 까만 얼굴이 더 까맣게 보였다. 아이는 솜 인형의 발바닥을 작은 고무공처럼 만지며 눈꺼풀을 천천히 열고 닫았다, 잠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껐다. 좁고 적막한 방 안이 더욱 좁고 적막해졌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창문이 덜컹이고, 방 안이 오렌지빛으로 차올랐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서영은 매일 이 방에서 잠이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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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잔혹 동화」외 6편
겸손한 스티커 위험한 애인에게는 취급 주의 라벨을 부착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등에 푸른 꽃이 폈다 지곤 했다 꽃을 가리던 파스의 접착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꽃무늬로 포장된 나의 겉은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가 수집하는 포켓몬이 늘어갈수록 파스의 냄새는 짙어졌고 오랫동안 압류된 나의 정신은 사용법을 잃어갔다 그가 온다는 문장은 불안하다 나를 떼어냈다 붙이고 붙였다 떼어내고 밤부터 시작된 그의 스티커 놀이는 새벽에야 멈췄다 찢긴 포켓 몬스터 빵 봉투에서 내 근육의 가장 깊은 곳이 몽롱해질 때까지 피카츄, 꼬부기, 잠만보를 외웠다 앞면은 토요일 뒷면의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방전된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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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2014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_이야기글] 스테이지 19
피카츄, 저 새끼 다리 부러트려. 강우는 주저하는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나 오늘 기분 안 좋다. 훈련 받고 싶냐? 그 말은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와 뇌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찌릿하는 전기입자는 혈관을 타고 몸 곳곳에 피어있는 멍 자국들을 일제히 아프게 쏘아댔다. 나는 각목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꼬부기의 얼굴이 바닷물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전속력으로 꼬부기를 향해 달려갔다. 꼬부기는 형석이가 방어명령을 내려주지 않아서, 나를 피할 수 없었다. 꼬부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의 오른쪽 다리를 정확히 여덟 번 더 내리쳤다. 오른쪽 다리의 뼈가 부서졌으므로 체력 100퍼센트 상실……. 나는 중얼거리며 각목을 떨어뜨렸다. 각목이 땅에 부딪치며 난 마찰음과 꼬부기의 비명소리가 한 데 섞여서 소각장에 메아리쳐 울렸다. 내가 이겼다, 강우가 형석이의 어깨를 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