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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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하늘 인연설
하늘 인연설 이양섭 청룡의 기운이 온다며 떠들썩하게 맞은 새해도 그새 석 달이 지나가네. 용띠 친구들 카톡엔 꽃피는 사진이 뻔질나게 올라오는데, 나는 겨울이고 봄이고 멱살이라도 잡아 며칠이 못 가게 막고 싶네. 제발, 청룡뿐 아니라 천지신명과 오만 신들에게 손 모아 빈다네! 부디, 기적을 내리시어 전처럼 마주 앉아 웃고 떠들게 해 주시기를···. 우리, 깨복쟁이 때부터 삼총사였잖아? 아직 한참 그렇게 어울려 살 줄 알았는데, “며칠 안 남았대···” 장난치듯 말해 놓고 장난이 아니라니! 기가 막혀 숨도 멎었지. 그 지경까지 나한테 쉬쉬해서 더 야속했지만, 캐묻지 못한 날 탓해야지···. 웃긴 왜 웃어? 달관이라도 한 거야? 농담마저 멋쩍었어. 인제 면회도 오지 말라니, 자네가 나라면 안 오겠나?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자주 멍해지는데, 자꾸 옛날 생각이 나더라. 자네도 기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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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하늘 벤치에는
하늘 벤치에는 조정권 거북이연립주택 옥상에는 안 쓰는 찬장, 내다버린 장롱, 스티로폼조각, 부서진 싱크대들이 두엄처럼 쌓여져 있다. 오리집도 올라가 있다. 호박밭과 화단도 올라가 있다. 벤치도 올라가 있다. 그 벤치에는 트럼펫 부는 남자가 런닝차림으로 산다. 빈 소주병주위로 흙을 수없이 물어다 나른 빗방울들.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 커가다가, 삭아버렸다. 가끔 옥상에 빨래를 내다 거는 남자가 구석에 틀어놓은 수돗물도 보였다. 그 남자는 얼마 전 늦은 밤길에 누런 연탄재의 골을 쏟고 반듯하게 누운 채 실려 나갔다. 채마밭과 새들과 나무들과 지상철(地上鐵)이 먼저 철거를 당했다. 갈 곳 잃은 오리들은 어디론가 날아볼 시간을 두리번거리다 도로 주저앉았다. 오리들은 쭈그러진 나팔을 내밀고 무슨 음표같이 옥상에 모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헐벗은 눈발을 올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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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하늘 거울
하늘 거울 김영석 아주 먼 옛날 하늘이 내려와 푸른 호수가 되고 호수는 올라가 푸른 하늘이 되어 마침내 거울이 생겨났다네 그때부터 거울 속에는 새와 물고기가 함께 노니는 그림자가 늘 어른거린다네 그러나 거울은 제 빈 몸을 씻어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고 지운다네 그림자는 거울을 떠나 살 데가 없고 거울은 그림자 없이 살 수가 없어 샘물 같은 그림자 맑게 지우며 날마다 거울은 새 얼굴로 태어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