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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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당신이 안다고 말하는 나의 어떤 것
양끝으로 한 사람 정도 지나다닐 수 있었는데 아마도 차가 관광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바리케이드 너머 오른쪽의 매점은 임시휴업을 알리는 손 글씨의 알림판이 출입문에 붙어 있었다. 종이 귀퉁이가 들떠 있는 걸 보니 임시휴업은 좀 오래된 듯했다. 매점 앞을 지나 왼쪽 관광지 입구의 숲길로 들어섰다. 너무도 휑해서 처음 와본 것처럼 낯설었다. 여기까지 온 건 괜한 일이었을까. 그러나 생각과 달리 K는 계속 걸었다.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보았다. 무심하고 그 어떤 것에도 무관한. 여자가 앉았던 그 나무 의자가 생각났다. 마침 저만치 그곳이 보였다. 걸어가면서 나무 의자에서 조금 떨어진 그러나 그 둘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애써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세워 둔 것처럼 붉은 글씨의 경고판이 의자를 향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무 의자 옆에 저런 경고판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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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흩어지는 구름
비수기의 관광지 거리는 조용했다. 행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문 닫은 상점과 창문이 뜯겨진 빈집, 임차인을 구하는 건물은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버스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던 뚱뚱하거나 비쩍 마른 소년과 소녀들이 암호처럼 웃으며 우리를 흘끗거렸다. 반대 방향에서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막걸리 병이 삐죽 나와 있는 비닐봉지를 든 채 위태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호재와 내가 길을 터주자, 노파는 우리를 지나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방과 바로 이어지는 허술한 쪽문 안으로 들어갔다. 노파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내 쪽을 돌아보는 호재의 얼굴이 차가웠다. “유령이 따로 없네.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면 대낮부터 술이나 퍼마시고 저런 꼴의 집에서 사는 거냐?” 호재의 말투는 얼굴보다 더 차가웠다. 갑자기 밤의 영역으로 이주한 듯 대기에는 묽은 어둠이 스미고 있었으므로 호재가 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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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책무덤
관광지 근처에 있는 데다 템스 강과도 가까워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다. 그때는 영국 출신 작가들의 책이 테이블마다 꽂혀 있었다. 나는 주문한 맥주가 나올 동안 습관적으로 책의 첫 문장, 길게는 한 단락을 읽어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이곳에 낭비했음에도 단편 하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술에 취하거나 지희에게 치근거리느라 바빴다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내 시선은 주로 천장에 머물곤 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책장과 거기에 꽂힌 수많은 책들이 실물과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책들이 얼마나 사실적이었는지, 술을 마시고 보면 도무지 실제와 구분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때때로 그림 속의 책들이 진짜인 양 책을 고르는 척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초점이 흐려진 시야 사이로 벽에 그려진 책들이 흔들렸다. 곧 떨어지는 책들에 압사당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고행이라도 하듯 제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