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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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독립
독립 최아현 * 퇴근길의 조명을 보고서야 때를 안다. 연등 조명이 달리면 5월이고, 잎을 잃은 나무에 붉은 빛이 돌면 12월이다. 연휴가 다가오면 북적이고 싶다가도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금세 귀찮다. 불규칙한 퇴근 덕에 그렇다 할 취미도 없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다 때가 느껴지는 날이면 광장에서 조금 머무르는 것이 유일한 재미다. 유행하는 길거리 음식을 하나 사들고서 풍남문 광장 한 귀퉁이에 앉아 관광객처럼 시간을 보낸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번쩍거리는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면 심심한 연휴의 헛헛함이 잠시 가신다. 이렇게 잠깐, 내가 원하는 만큼 북적임을 즐기면 그만이다. 오늘따라 무척 피곤했다. 평소처럼 집에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현관에 누웠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떻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적막이 도래해도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다. 명상을 하면 소란이 잦아들려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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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수동적 소비자에서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증가와 그 대응 방안에 대하여
작가들이 만든 독립 잡지인 『더 멀리』(2015년 4월 30일)와 『후장사실주의』를 위시하여,'페미니스트-퀴어 독립 문예지' 『소녀문학』, '평화롭고 게으른 문예공동체'를 표방한 『베개』,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 문예지' 『영향력』, 그리고 『젤리와 만년필』, 『자정작용』, 『시인보호구역』 등이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거나, 개인이 직접 비용을 마련하여 잡지를 제작한 후, 독립 서점에 위탁 판매한다. 이 독립 잡지들의 특징은 등단과 비등단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 잡지를 운영하거나 참여하는 주체들은 등단 여부를 떠나서 작가가 되기도 하고, 독자로 남기도 한다. 스스로 만든 지면이므로 기존의 문단 질서로부터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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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독립출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독립 출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여로 1 독립 출판의 특이함은 공공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문자 '문학'의 특이함은, 그것이 프로그램화된 문법성을 드러낸다는 내적 형식에 따라, 누구든 깃들 수 있는 공적 언술이 되지만 동시에, 그 게임에 참여하는 개별 주체의 특이성 또한 그 공공성에의 참여 정도에 따라서만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립 출판은, 내가 보기에 이런 대문자 영역의 공공성을 그냥 무시하고 개별 주체의 특이성을 주장한다. 독립 출판에 대하여 지적하기를, 새로운 장(platform)이 활성화된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잉 생산되며 수준이 낮아졌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독립 출판 워크숍 따위를 도둑질이라 생각하며 힐난했다. 내 의식이 바뀐 계기는, 직접 출판사를 등록하고 책을 만들고 유통한 경험에 기댄 정서적 연대라기보다 그 비판이 범주오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