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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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상_비평&감상글]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제 1차 세계대전 후, 하버는 질소비료에 대한 공로로 1918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의 영예도 얻고 그의 애국심에 충실하게 생활하며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던 하버였지만 그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온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찾아온 그 위기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 시작되었고 그가 유태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버 자신은 본인을 독일인이라 생각하고 애국심이 넘쳤지만 나치에게 그는 학살 대상인 유태인일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의 업적 덕분에 추방에 그쳤지만 그의 친척들은 독가스로 학살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살에 쓰인 독가스는 그가 발명한 지클론-B였다. 결국 절망에 빠진 그는 중립국인 스위스 바젤 호텔에서 허무하게 죽었다. 하버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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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 19] 잘 울기, 잘 헤어지기
왕자라고 하지만 동화 속의 왕자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직전 발칸 반도의 왕자이자, 40대 홀아비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극단의 무희인 마릴린 먼로를 유혹해 원나잇스탠드를 하고자 한다. 예민한 동유럽 정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고 정략결혼으로 평생 사랑을 알 기회가 없었던 이 중년의 왕자님은 원나잇스탠드가 오래된 습관이다. 솔직한 성격에다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마릴린 먼로는 깔깔깔 웃으며 어설픈 유혹을 거부하고, 대신 이 완고하고 메마른 왕자에게 진짜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어한다. 두 사람은 계속 헤어진다. 네 번, 다섯 번 똑같은 이별 인사를 반복하는데 그 변주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처음엔 유혹에 실패한 왕자가 무희를 내쫓으려 하고, 뒤로 갈수록 두 사람의 감정이 발전하면서 애틋해진다. 종국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져서 언뜻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1957년의 관객들도 지금의 우리도 그 이후 곧 닥쳤을 전쟁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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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영화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_제3회] 만수무강하세요. 매기 스미스
다운튼 애비라는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이를테면 타이타닉의 침몰과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여성 참정권 시위, 아일랜드 독립운동, 귀족 장원의 몰락 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반할 수밖에 없도록 역동적이다. 여기서 매기 스미스의 역할은 고루하고 보수적인 할머니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낡은 틀에서 벗어나 손녀들을 위하는, 전형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하도 기가 막힌 명언들을 많이 남겨서 유투브에는 매기 스미스만을 위한 편집본들이 넘쳐나며 세서미 스트리트에 매기 스미스를 닮은 인형도 만들어졌다. 인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일 테다.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 인기가 하도 좋아 속편도 나온다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서도 매기 스미스는 활약한다. 매기 스미스는 여기서 평생을 메이드로 살다가 은퇴한 인물인데, 심한 인종 차별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