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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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젖은 신발
젖은 신발 최명진 문 속을 들어가는 문 속에 들어앉은 때로는 문 속에서 그저 망망대해 문 속에 잠긴 노크 문 속에 잠긴 허밍 문 속에 잠긴 달빛, 캄캄한 하루를 쏟아내는 메마른 장작이 타듯 빗소리로 걸어간 가지런히 놓여진 고요하게 어떤 시간을 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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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내 신발 속의 여자
내 신발 속의 여자 이순현 그녀가 떠났습니다 캐리어를 반려처럼 옆자리에 앉히고 어느 이른 새벽 가버렸습니다 자동차 꽁무니의 빨간 등이 둘이다가 넷이다가 송이송이 부풀다 번지다 주르르 쏟아졌습니다 의심과 질투, 그녀의 천적들도 저장할 수 없는 느낌들도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새끼를 낳는 해마 수컷처럼 나는 그녀를 낳습니다 그녀1, 그녀2, 그녀3…… 불어나는 그녀는 붐비며 넘쳐나며 핏줄을 돌고 돌다 안경 밑으로 흘러내리거나 음경 끝으로 분출되거나 너무 많은 백혈구가 생명까지 갉아먹듯 골수가 헐고 내 심장이 부어올라 못 쓰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그녀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 되어 갔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불어난 그녀로 공기 한 가닥 드나들 수 없을 때 염낭거미처럼 뿔뿔이 나를 박차고 날아가겠지요 비로소 떠남이 완성되겠지요 안쪽을 파 먹혀 찬란한 나는 가장 그녀다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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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판교로 가는 마음
판교로 가는 마음 이근화 판교로 가자고 그가 말했다 옷을 차려 입고 서둘렀지만 끊임없이 신발이 태어났다 나의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발 아래 그 아래 더 아래 나 나의 신발 판교 판교로 가자고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냉동 인간처럼 그는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았는데 먼 미래에 우뚝 솟은 판교 아버지는 판교에 가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세 가지 말해주었다 한 가지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판교를 중얼거리며 아, 무너지는 마음 이것은 행운인가, 판교 밀애인가, 판교 배교일 뿐이야, 판교 아이는 없었다 고양이도 없었다 주말도 소풍도 기차도 김밥도 달걀도 다 날아가고 없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판교는 있는가 그는 있는가 그가 웃었다 판교에 가자고 거의 다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