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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를 위한 장례
탕비실 문이 열리고 도서관장이 들어왔다. 입고 있는 회색 코트가 비에 젖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남학생이 마른 수건을 건넸고, 나는 관장이 코트를 쉽게 벗을 수 있도록 뒤에서 팔 부분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내 의지와 달리 손이 떨리고 뇌가 쥐가 난 것처럼 경직되어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학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오른손으로 반대편 팔을 잡아 누르고 있었다. 관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래턱이 경련하는 게 보였다. 관장은 뻣뻣하게 굳은 입을 간신히 뗐다.“죽었네.”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덧붙여 설명했다.“방금 CCTV를 확인했어.”관장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것 같다고 끝까지 말했다. 방 안은 적막이 무서워 틀어놨던 라디오 소리만 감돌았다. 음악 채널을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국가에서 송출하는 긴급재난방송으로 바뀌어 있었다. 라디오는 젊은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눈치도 없이 혼자 떠들었다.[지구가 지름이 1km에 육박하는 거대 운석에 충돌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나사의 비밀 연구가 세상에 밝혀진 지 13개월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카이스트, 한국항공우주 주식회사에서 ‘노아의 방주’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있으며 노아 호에 탑승할 수 있는 1,000명의 인구를 선정하는 기준을 선정 중입니다. 대한민국 5,000만의 인구의 생체 데이터를 복사해 가상 공간으로 이주시킬 기술 또한 제시간에 맞춰 완성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리지 말고 일상을 유지해, 정신 이주와 노아 호에 탑승할 기회를 잃지 말라는 정부의 당부 사항이….]평소에는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음성을 차단하려 했지만, 관장과 B, 남학생, 소설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은 관장의 말을 소화하지 못하고 다시 뱉어내려 했다.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머리에 있던 걸 모두 뱉어내고 개운해졌으면 하는 충동이 일었다. 옛날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을 반으로 쪼갰던 것처럼, 머리를 까뒤집고 싶었다.Z는 죽었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관장이 말해주기 전부터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피가 스며든 도로를 소설가가 발견했었고, 그곳에서 Z가 들고 나간 전단지를 찾았었다. Z가 키우는 고양이 흑당의 사진이 프린팅되어 있었다. 그 피의 주인은 Z가 확실했다. 그 정도 피를 흘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범죄 수사하지 않는 경찰과 신고해도 움직이지 않는 119대원들, 시체만 치워가는 구급차가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사하겠지, 잘 지낼 거라고 회피하지 못하게 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남학생이 비틀거리며 벽 쪽으로 다가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Z가 집을 잃고 도서관에 살게 되었을 때 남학생은 자신도 도서관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둘은 도서관에 같이 살았다. Z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남학생이었다. 며칠 전 저녁, Z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사라졌다며 도서관을 나섰고 이후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시신은요?”남학생이 물었다. 관장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모르겠구나, 영상만 확인하고, 병원은 가지 않았으니.”“늦으면 못 찾을 거예요.”일어나 나가려는 남학생을 내가 붙잡았다. 남학생은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붙잡힌 팔을 뿌리치기는커녕 벽을 잡고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소설가가 남학생을 부축해 소파로 대려오는 걸 도왔다.“내가 다녀오는 게 좋겠네. 장례는 치러야 하니까.”관장이 벽에 기대 세워놓은 우산을 집어 들었다. B가 같이 가겠다고 하며 얇은 잠바를 꺼내며 따라나섰다. 소설가는 구석에서 숨죽여 우는 남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내게 턱짓으로 신호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거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가는 남학생의 손이 닿는 곳에 미지근한 물과 휴지를 뒀다. 남학생이 그걸 사용할 정신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다정함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말리지 않았다.불을 끄고 조용히 나와 문 앞에 쪼그렸다. 남학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정신이 멍하기만 할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잠들고 싶었다. 봄비를 맞으며 돌아다녀서 그런지 몸에 열감이 느껴졌다. 머리를 벽에 기대고 옆에 쪼그리고 앉은 소설가를 바라봤다. 눈가가 빨겠다.봄비 소리가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심장처럼 가동되던 공장이 멈추고 체한 것처럼 막힌 도로가 뚫렸다는 뉴스를 생각했다. 공기가 맑아지니, 도심 한가운데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고 하던데 진짜였다 보다.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열린 창문 사이로 젖은 흙냄새가 들어왔다.Z가 생각났다.“비 오는 날이 싫었죠.”Z가 말했다. 당시, B와 나, 남학생이 Z와 함께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딱 여름 장마가 시작되던 때였다.“아침에 열고 나온 창문을 닫아줄 사람이 없어서 비가 집 안까지 들어왔었거든요. 제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는데, 꼭 비 오는 날에는 현관에서 저를 기다려요.”Z는 품 안에 있는 검은색 바둑무늬가 섞인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턱 주위를 만지니 낮은 울림소리가 내며 품에 파고들었다.“사채업자에게 집을 뺏기고 노숙할 때, 문득 이번 장마가 두려워지더라고요. 버텨낼 자신이 없었어요. 관장님이 도서관에 저와 제 고양이가 머물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웠을 거예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물 냄새가 불쾌하지 않으니 다행이에요.”그때 Z는 카드 게임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 같이 모여있는 틈에 껴있을 뿐이었다. 남학생이 우산을 쓰고 비를 맞으러 나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그는 비가 싫은 건 여전하다며 거절했다. 시선을 창가에서 때지 않았었다.Z가 했던 것처럼, 멍하니 밖을 내다봤다. 바깥은 비 때문에 희뿌연 물안개가 일었다. 여름이었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코끝이 시린 것 같았다. 더위가 가라앉는 시원한 느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비 오는 날이 싫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공기에 담긴 수분만 느껴져도 Z가 생각날 것 같았다. 나는 비 오는 날 Z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Z는 해가 쨍쨍한 날에 죽었기를 빌었다.따르르-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를 뚫고 내 귀에 들어온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전화를 받을 사람이 나 뿐이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도서관이지만, 그래도 공공기관으로 운영되는 중이었다. 벽을 붙잡고 일어나 계단을 한 층 내려갔다. 1층, 사무실에 정말 오랜만에 발을 들였다. 관장이 일을 전부 맡아간 이후 잘 찾지 않았다. 파일이나 개인 소지품들이 그대로인 책상들이 보였다. ‘노아의 방주’프로젝트는 눈속임일 뿐이고 우주선에 고위 관리만 태우고 지구를 빠져나갈 거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그때, 다들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사직서를 제출하고 서둘러 떠났다. 주인 없는 물건만 남았다.주변을 둘러봤다. 제일 중앙 안쪽에 있는 도서관장의 자리에서 전화가 울렸다. 잠깐 망설이다가 잠긴 목을 풀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중앙도서관 사서 김민지입니다. 관장님께서는 지금 외출 중이셔서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아, 한국 항공 우주에 유상철입니다. 어제까지 파일 최종본을 보내주신다고 했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했습니다.”젊은 남성의 말에 ‘아, 그렇군요.’라고 추임새처럼 대답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말하는 게 뭔지 몰랐다. 일은 관장이 전부 하고 있었다.“그, 그 파일 최종본이라는 게 뭐죠?”입이 풀린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업무 전화는 오랜만인데다가 파일에 대해 모른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하니 더 말이 꼬였다.“‘노아 호’에 저장시킬 파일이요. 우주비행선에 탑승할 1,000명의 승객이 아무것도 안 하고 100년을 살 순 없으니까 그 사람들을 위한 전자도서관을 완성할 거라 했잖아요. 그래서 그 도서관에 들어갈 책이나 영화, 잡지 같은 리스트를 쫙 뽑아서 보내달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중앙도서관에 협조 요청했던 걸로 아는데?”“아아, 그랬죠. 그거.”“그래서 그 완성본 파일은요?”남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전화기를 타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걸 보니 그곳에 사람들은 다 바쁜 것 같았다. ‘월급도 꼬박꼬박 받아 가면서 정말…….’이라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못 들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관장님께서 파일을 가지고 계셔서요. 아무래도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언제 오시는데요?”“모르겠습니다.”“그걸 왜 몰라요? 업무시간에 나가는 거면 보통 말을 하고 가지 않나요?”사람을 주춤하게 만드는 날 선 목소리였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의 머릿속에 관장이 어떤 사람으로 잡히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나는 일을 안 한 게 맞으니 남자의 한숨을 받아도 싸지만, 관장은 아니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저희 직원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사람 시신을 수습해주려고 동료 한 명이랑 같이 병원에 갔는데,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Z가 죽었다고 내 입으로 내뱉었다. 이 말을 이렇게 빨리 내 입으로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관장이나 B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변명처럼 하게 되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숨이 차올라서 말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으면 관장에게 화살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꾸역꾸역 말을 내뱉었다.“음, 그래서요?”내 말이 끝나자마자 흔들리지 않는 낮은 음성이 들렸다. 오늘 아침 메뉴를 들었다는 듯한 의연한 태도였다.“네?”“아아, 말이 좀 불편했겠네요. 이거 미안합니다. 제 말은 그걸 왜 당신네 상사가 관여하는지를 묻고 싶은 거였어요.”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관장이 관여하는 이유가 왜 중요한지 이해가 안 됐다. 공무원이라서? 업무시간에 자리에 앉아있지 않아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자가 이어 말했다.“하던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시국인 거 모르나요? 게다가 이 일은 일반 사무 업무가 아니라 ‘노아 호’에 관한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그래요?”한 사람의 죽음이 문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은 이유가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거였는지 의문스러웠다. 큰 운석이 떨어진다고 하기 전에도 이랬던가. 남자는 나중에 전화하겠으니 그때는 파일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수신음만 흘러나왔다. 남자에게 말을 해야 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짚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전화를 내려놓고 등을 돌렸다.다시 계단을 걸어, 있던 곳으로 올라갔다. 소설가가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는 공책 위에 무언가를 적다가 말고 날 보며 물었다.“무슨 전화였어요?”소설가는 습관처럼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눈을 느리게 깜박이고 있었다. 아까 앉았던 자리에 다시 몸을 기대었다.“아뇨, 한국 항공 우주에서요.”“아, 그거.”소설가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알고 있었어요?”“네, 궁금한 건 못 참아서요. 관장님이 혼자서 일하는 게 뭔지 물어봤었죠.”“그런가요. 저는 몰랐네요.”“관장님이 숨긴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이 일을 여럿이 머리 싸고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관장이 일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숨기려고 했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물었다. “알잖아요. 그거,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거. 얼마 안 남은 시간 엉뚱한 곳에 에너지 쏟지 않길 바라셨어요.”소설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소문이 퍼졌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였기에 좌절감이 들지 않았다. 조금 허탈할 뿐이었다.우리는 휴식을 위해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베지밀을 4개 들고 왔다. 가스버너로 물을 끓이면서 그 안에 베지밀을 병째로 넣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곧 관장과 B가 돌아올 것 같았다. 따뜻한 베지밀을 건네고 싶었다. 물에 넣고 기다렸다. 그동안 소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Z에 대한 거였다. 우린 Z의 시신이 돌아왔을 때 해야 할 걸 고민했다. 관이 없으니 이불로 감아서 빠르게 땅에 묻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이 장마철에 가능한가, 아니, 다 떠나서 Z의 시신을 똑바로 보는 게 가능할까 등의 대화가 오갔다.결론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Z는 도서관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B가 병원 측이 Z의 시신을 수거한 거는 맞았지만,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서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가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화제를 바꿔 관장에게 걸려 온 전화에 대해 알렸다. 관장은 눈을 가늘게 찌푸리곤 알려줘서 고맙다며, 1층으로 내려갔다. B는 마른 옷가지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냉장고 속 관장이 가져다 놓은 도시락 4개를 꺼냈다. Z의 몫과 남학생 몫의 도시락이 남아있었다. 평소에는 따로 먹었지만, 오늘은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갈 것 같았다. 일회용 수저를 뜯고 플라스틱 컵에 생수를 부었다. 4인 테이블에 나와 소설가가 마주 보고 앉았다. 곧, B가 젖은 머리를 화장지로 닦으면서 내 옆에, 관장이 소설가 옆에 착석했다. 기독교인 B가 기도했고, 우리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기에 B를 기다렸다가 같이 수저를 들었다. 계란말이와 장조림, 아욱국이 오늘의 식사였다. 식사는 조용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일회용 수저에서는 그 흔히 말하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안 났다. 적막이 유지되고 있을 때, 소설가가 말했다.“Z의 장례를 우리끼리 치러주는 건 어떨까요.”소설가가 자신의 수첩을 우리에게 꺼내 보여줬다. 그 위에는 Z의 예전 집 주소와 평소에 자주 머물던 장소, 좋아했던 음식 등이 간략히 메모가 되어 있었고 옆에는 ‘작은 기념비’나 ‘그의 흔적을 잊지 않게 남기는 방법은?’등의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Z의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도 수소문해서 알리면 좋을 것 같아요. 시신은 찾지 못했으니까, 평소 자주 사용하는 옷가지들을 대신하는 방법도 있고요.”도서관장이 수첩을 받아 내용을 훑었다.“좋은 생각이야. Z도 좋아할 걸세.”관장이 긍정했다.“음, 그럼 저랑 민지는 전 동료들에게 연락해볼게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겸사겸사 물어보면서 Z 이야기도 해야겠어요. 다들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B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소설가가 유품 정리는 남학생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자신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하겠다고 했다. 내려앉은 분위기가 순환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퉁퉁 부은 눈으로 내려온 남학생에게도 알려주었다. 남학생은 그 누구보다 Z의 장례를 치르자는 의견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남은 식사를 했고, Z와 도서관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조금 알려줬다.“Z의 아내분이 도박 중독이셨나 봐요. 빚을 몇천만 원을 지고 도망가셨데요. 사채를 빌릴 때 Z의 이름을 써서 Z가 갚고 있다가 이번에 마지막 청산으로 집을 빼앗기고 내쫓기신 거고요.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는데, 사업을 성공한 후에 Z랑 연을 끊었다고 하더라고요.”“그래도 아들이니까 연락은 한번 해보죠.”소설가가 남학생의 말을 수첩에 메모했다.“제가 그 아들분 연락처를 알아요. Z가 그 번호를 외우고 다녔거든요. 적어드릴까요?”남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설가는 남학생에게 자신의 수첩과 펜을 건넸다.“마지막인데,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들분이랑 연이 닿았으면 좋겠어요.”남학생은 전화번호를 한 자 한 자 눌러 적으며 중얼거렸다.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샐쭉해 보였다.“부럽네요. 제게 Z는 친아버지와 같은 존재였거든요. 부모님은 절 버리고 집을 나갔는데, Z는 절 거둬서 보살펴 줬었죠. 그래서 Z의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국 Z에게 필요한 건 친아들이네요.”Z와 남학생은 진짜 부자 관계 같았다. 부모님 없이 보육 기관에서 자라온 나도 아버지가 있다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Z의 진심이 뭔지 물어볼 수 없지만, 남학생이 Z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남학생의 기분이 나아질 만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남학생은 별거 아니라는 듯 평소처럼 해맑게 장례를 준비하자고 했다. 나도 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고 대답했다.“그래.”장례는 장마가 끝나면 치르기로 했다. 기상청이 일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Z의 흔적은 얼마 없었기에 그 준비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사흘이면 충분했다. 날이 맑아지기 전까지 준비될 것 같았다.“Z가 쓰던 옛날 휴대폰을 찾았어요, 이 안에 연락처들이 남아있으니 연락을 돌리면 될 것 같아요.”남학생이 소설가에게 휴대폰를 넘겼다.“저희도 옛날 동료들 연락처를 구했어요. 날이 밝는 대로 연락해보려고요.”B도 나와 작성한 전화번호 목록을 흔들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이런 식이었다.중간에 Z가 잃어버린 고양이 흑당의 시체도 발견했다. Z와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가 반지하 자취방에 잠깐 들리려다가 골목 구석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해 들고 왔다. 날이 맑으면 도서관 앞마당에 묻기로 정했다. 이렇게라도 Z에게 돌아와 다행이었다.모두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고, 예정대로 Z를 추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 기대는 단 이틀 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비참할 정도였다.전화를 돌린 지인 중 전화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없는 번호였고 수신음이 가도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Z의 아들은 세 번째 전화했을 때 간신히 연락되었다. 하지만 Z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다른 어떤 말도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차단을 한 것 같아 관장님의 휴대폰을 빌려 메시지를 남겼다.[Z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평소에 아들분을 많이 생각하셨기에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연락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읽음 표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남학생은 이 사실을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가가 다시 부어오르고 있었다. 나와 B는 전 동료들에게 연락을 서둘렀다. 마찬가지로 몇 사람에게만 연락이 닿았다. “여보세요?”라고 의심스럽게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서 전 직장에 있던 사람을 떠올리느라 열심인 게 느껴졌다.“저 김민지예요. 화요일 날 열람실에서 근무했던.”이렇게 말을 하면 대부분 아는 체했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떨떠름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도 잘 지냈냐고 묻지 않았다. 바로,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라고 용건을 요구했다. 씁쓸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만 해도 사소한 장난을 치거나 점심을 같이 먹던 사이었다. 퇴사할 때도 가볍게 안아주면서 잘 지내고 연락하라는 말을 주고받았었다.뭘 하며 지내냐고 물어보려다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Z가 며칠 전에 죽었어요.”다들 Z가 누구인지도 기억 못했기에. 행정관리실에서 근무했던 50대 남자 직원이라고 알려 줘야 했다.“기억이 안 나는데.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바로 전화를 끊은 사람도 있고, 잘은 몰라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덧붙인 사람도 있었다. 몇 년을 동고동락한 사람을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잊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잊은 건지, 아니면 기억했다고 말해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남은 건 Z의 여름옷 3벌과 가을옷 2벌, 그리고 가족사진 한 장과 고양이용품뿐이었다. 비가 그치기 전에, 너무 빨리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결국 다시 원점이었다.무서웠다. 가족이 곁을 떠났고, 동료들이 모른 체 하며 Z를 잊었다. 정부마저 멸망할 지구의 잔여물로 여기고 있었다. 남겨지고 잊히는 것이다. Z는 죽었고, Z를 위해 움직이고 싶었지만 다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하나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그때, 도서관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도서관장의 자리는 아니었다. 어느 빈자리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내가 전화를 받았다.“중앙도서관 사서 김민지입니다.”목소리가 잠겨서 잘 나오지 않았다.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자신을 문화홍보부 소속 곽우영 과장이라 밝혔다.“무슨 일이신가요.”내가 물었다. 남자는 한국항공우주 소속 유상철과는 느낌이 다르게 어수선했다.“아아, 용건 잠시만요. 그 용건이.”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하려던 찰나 남자의 명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펜을 딸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찾았네요. 정리가 잘 안되다 보니까 늘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고요.”“아, 네.”“다름이 아니라 한국중앙도서관에 협조를 요청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협조라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B나 관장의 의견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거절하고 싶었다. 저번에 받은 일처럼 그 우주선과 관련된 일을 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나사에서 쏘아 올린 보이저호처럼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우주에 쏘아 보낼 계획을 설명했다. 사라질 지구의 흔적을 우주에 남기는 중대한 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그 안에 담길 내용 중, 인간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달라고 요청했다. 인류 문명에 관련한 중대한 일이라고 말하는 혓바닥을 잘라내고 싶었다. 거절하겠다고 했다. 남자는 이런저런 말로 나를 붙잡았다.“지구를 대표해서 쏘아 올리는 겁니다. 우주는 넓고 기니 언젠가 다른 행성에 닿아서 지구의 흔적을 남기게 될 거예요.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남자가 외쳤다. 이해했다. 자신들이 살았다는 게 영영 잊힐까 봐 몸부림치고 있는 마음을. 나도 인간이기에, 잊힌 Z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우주 어딘가에 Z가 살아있었다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길 바랐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우주에 남겨 Z라는 생명체를 증명해줬으면 했다. 지구의 부산물이나 별 볼 일 없는 시민 엑스트라 187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기억되고 싶었다. 희미하고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있었음을 알리고 싶었다.“있잖아요. 그 우주선에 그런 내용 말고 그냥 일반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 건가요?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이런 사람들이 살았다 하는 거요.”내가 물었다.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긴장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다. 남자는 짧게 “네?”라고 내뱉더니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안되죠. 그건.”어린아이의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들은 듯한 말투였다.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하며 다른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 했다.“딱 한 사람 이야기만 같이 넣어주면 안 되나요.”나는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무리 말해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게 뻔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말은 허공에서 흩어져 지구랑 같이 사라질 것이었다. 한 마디 더 내뱉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한마디 중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되었다.“아니, 안된다니까요.”남자는 ‘허!’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전화를 끊을 법도 하지만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아마, 이 일을 맡을 곳이 우리 말고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러면요…”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우주선에 이 내용을 기록한 사람 이름만 새겨주실 수 있나요? 딱 석 자만 작게 적어주면 되는데. 출처 표기한다 치고요.”건너편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이 들렀다. 그 흔한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전화가 끊어진 건지 확인하려는 순간 남자가 말했다.“이름이요, 이름. 그래요, 좋습니다. 그 이름도 한자랑 해서 같이 적어 보내주세요. 같이 적어줄게요.”진저리가 난다는 투였다. “아니, 그 이름이 뭐라고…….”남자가 구시렁대다가 물었다.“아니, 근데 진짜 이름이 뭐예요?”망설이지 않고 Z의 이름을 댔다.“김민(金民)입니다.”남자는 알겠다며 파일 양식을 보내줄 테니 맞춰서 작성해 달라고 덧붙였다. 약속을 지킬지 말지 반신반의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서 파일을 만들어 제 시간에 보냈다. 걱정과 달리 몇 달 뒤에 남자가 사진 한 장을 전송해왔다. 단단한 철판 위에 Z의 이름이 두 자 새겨진 사진이었다. 저 약속 지켰어요. 사진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려다가 말았다. 대신, 그걸 우주에 쏘아 올릴 날짜를 물었다. Z의 장례를 그 철판이 발사되는 날에 맞춰 치르자고 할 셈이었다. 완벽한 장례식이 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