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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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절규
윤이형의 「절규」는 그런 소설이다. 문학이 안간힘을 써서 해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결국 증명해 낸다. 소설 속의 대리 절규자는 바로 작가의 분신이기도 할 터, 무당이 되어 스스로 상처 입은 몸으로 상처 입은 타인들의 넋을 광기어린 굿판으로 위무한다. 이 혼신의 제의에 읽는 이들도 모두 절망한 의뢰인이 되거나 절규하는 무당이 되지 않을 길이 없다. 이 좌절의 시대에, 몇 마디 감언(甘言)으로 손쉬운 치유를 가장하지 않고 누군가를 대신해 온몸을 뒤틀며 절규하는 일이란,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일지! (소설가_편혜영 / 문학평론가_노대원, 양윤의, 조연정)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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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김균탁 너는 젖은 숲의 allegro 늪은 태양을 짊어진 오후의 지렁이처럼 살아 있었다 꿈틀거리는 땅의 끝에서 메아리처럼 흔들리는 절규 침묵을 기어오르는 작열하는 소란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린 발자국 그 뒤를 따라 보폭이 줄어드는 울음 끄덕이는 고개는 의미 없는 것들의 어미 태양이 쏟아지면 죽어버릴 애증의 presto “엄마는 보고 싶지 않아.” vivace처럼, 때론 vivo처럼 흥얼거렸던 지난날의 비보 누나를 멀리 던져버린 수염이 긴 아빠의 술잔은 땅속을 천천히 파고들던 lento moderato는 혼미해진 우상 그렇기에 숨이 멎어버린 andante 달 끝에 걸려 펄럭이는 자장가는 “죽고 싶지 않아.” 흥얼거리던 잠꼬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높은음자리표 속의 # 젓가락이 만든 장단같이 둔탁하게 울리는 늪 서서히 가라앉는 것들은 “다시 태어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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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의무기록실의 K양
의무기록실의 K양 문성해 K양은 대학 병원 지하 3층 의무기록실에서 일을 한다 하루 종일 도서관처럼 빼곡한 책장 사이로 차트를 찾으며 돌아다닌다 걸려오는 전화도 매양 누구누구의 차트를 찾아 달라는 내용들뿐, K양은 맞선 볼 때도 그 남자가 갖고 있는 차트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한 아기가 태어날 때 이곳에서는 이름보다도 먼저 차트가 준비된다 사람은 죽어도 차트는 남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 가족보다 환자의 뜨거운 피와 살보다 더 자세히 아픔의 경로를 잘 알고 있는 저 차트들 그녀는 출근 며칠 만에 알았다 사람의 나이완 상관없이 굵어지는 차트도 있다는 것을, 간혹 성경처럼 두꺼운 그것을 볼 때마다 그녀는 어떤 거룩한 말씀보다 더 절규 가득 찬 말들을 읽어내곤 전율한다 온갖 병명들 사이에서 운 좋게도 아직 자신의 차트를 갖지 못한 그녀 혹시 모른다 어디선가 자신도 모르게 은밀하게 그것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불을 끄면 캄캄한 동굴로 바뀌는 이곳으로 그녀는 아침마다 출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