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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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엄마, 조금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요?
그런 건 유치원, 아니 요즘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쌓아야 한다는데, 중2 돼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토박이들이 패밀리로 받아 줄 거 같아? 대단한 실력자나 재벌 집 자식도 아닌데! 나는 힘들지 않게 말소리의 두 주인공을 찾았다. 우리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들이었다. 막차인 마을버스 안에는 나와 내리는 문 바로 앞자리에 앉은 두 아주머니. 그리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한 발을 쉼 없이 흔들어대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전부였다. 물론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도 있었다. 나는 매주 토, 일요일에는 꼬박 15시간을 피시방에서 알바를 한다. 나는 미성년자이지만 피시방 주인이 친척이라 가능한 것이다. 그냥 숙모라고 부르지만 엄마 말로는 촌수가 꽤 멀다고 했다. 숙모는 나를 알바로 쓰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러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숙모는 원치 않게 거짓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숙모, 그러니까 피시방 주인집 딸인데 엄마의 가게를 도와주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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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담배 한 대
중1 혹은 중2 봄 소풍 때였나? 그날 너는 죽음과 처음으로 대면했었다. 세찬 여울 속에서 거듭 자맥질하던 너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뜻밖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수면을 너는 보았고, 눈앞에서 보글보글 피어나는 작고 영롱한 기포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그리고 저쪽 강변에 늘어서서 놀란 얼굴로 뭐라고 외쳐대며 발을 구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었다. 너무도 환한 한 폭의 풍경화였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너는 중얼댔다. 네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신 것은 강물도 아니고 눈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참으로 낯선, 그래서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이었다. 그 순간 너는 가만히 작별을 고했었다. 그 아름답고 환한 세계와……. 축사 안으로 달빛이 훤하게 흘러들고 있었다. 살벌한 도구들을 무람없이 적시고 있는 달빛 탓일까. 삽과 괭이 따위를 꼬나쥔 손들이 어쩐지 수줍음을 타는 듯 보였다. “이 아줌씨가 놀자구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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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기획소설_HㆍOㆍTㆍEㆍL ⓛ] 우산도 빌려 주나요
중2 때였는지 중3 때였는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날이었다. 기상예보가 번번이 틀리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퇴근 시간은 딸의 하교 시간보다 일렀다. 폭우 때문에 딸은 여느 때보다 일찍 하교했다. 그녀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이미 그녀는 딸의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가 재빨리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안방에서 나왔을 때, 딸은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중이었다. 딸의 교복이 홀딱 젖어 있었다. 귀밑을 겨우 가리는 짧은 머리카락이 딸의 머리통에 찰싹 달라붙어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딸은 메고 있던 가방을 거실 안쪽으로 내던지며 왜 날 혼자 집에 오게 만드느냐고,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날 혼자 오게 해. 왜 혼자 오게 해. 프런트의 직원이 둘의 말다툼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저희 호텔에는 우산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