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상_생활글] 슈퍼 할아버지
슈퍼 할아버지 정소희(제이쇼) 어린 여자아이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 동네는 세상의 전부였다. 마당 밖을 나갈 때에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만 했던, 걱정 없고 절망이 없던 예닐곱 살의 아이에게는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모습이 비치는 대문에 얼굴을 이리저리 가져다대며 꺄르르 웃다가, 조금만 놀다오라는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던 나는 항상 동네 슈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곧장 걸어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살짝 경사가 있는 왼쪽으로 달음박질 쳐 올라가면 빨간색 천막으로 가려져있는 번쩍번쩍한 슈퍼가 나온다. 그 슈퍼 앞 평상에는 주로 슈퍼 할아버지께서 연신 부채질을 하며 앉아계셨다. 덥지도 않냐며 숨을 몰아쉬는 내게도 해진 부채로 바람을 나눠주시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좋았다. 할아버지께서 어디에 사시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성함이 무엇인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사자상
오랜만에 운동하러 간다며 나가는 할아버지 뒤를 쫓았다. 할아버지는 교각 아래에 가서도 어르신들과 장기나 바둑을 구경만 할 뿐이었다. 운동도 뒷전이었다. 오가는 사람들과 주고받던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매일 옥상에 올라가 항아리 닦던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낸 지 일주일이 되던 아침, 주훈이는 아빠, 엄마에게 할아버지 상태를 얘기했다. “그래? 동네 어르신들과 싸움이라도 하셨나?” 주훈이는 간장 사건을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화를 낼 게 뻔했다. 아빠, 엄마가 가게로 나간 뒤, 주훈이는 마른행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항아리들이 옥상 귀퉁이에 모여 있었다. 주훈이는 마른행주로 항아리들을 쓱쓱 닦았다. 이렇게라도 하면 왠지 할아버지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다 닦아 갈 무렵 뒤에서 누군가 주훈이를 불렀다. “주훈아, 할아버지 어디 아프시니? 네가 장독을 닦고 있어?” 뒤돌아보니 2층 아줌마였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부기우기
“우기 할아버지! 우기 할아버지!” 놀란 간호사가 민주를 다독이며 우기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임종실로 데리고 갔다. 간호사가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청력은 살아 있으니까 좋은 이야기 많이 해 드리세요.” 우기 할아버지는 단 몇 분 사이에 더 힘이 없어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여기 부기 데리고 왔어요.” 민주는 우기 할아버지 가슴에 부기를 올리고 할아버지 손을 얹어 부기를 안겨 드렸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부기우기 음악을 틀어 할아버지 귀 옆에 놓았다. 우기 할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꿈틀거리는 뺨을 보고 민주는 우기 할아버지가 활짝 웃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기와 우기 할아버지는 넓은 평원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경쾌한 부기우기 음악도 흘러나왔다. 둘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빠른 리듬에 맞추어 느린 춤을 추었다. 그렇게 춤을 추며 무지개다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