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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동지(冬至) 마윤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 시집 『개구리극장』(민음사, 2024)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글틴
당신이나의 빛을 앗아가도 좋습니다나의 소리를 앗아가도 좋습니다나의 향을 앗아가도 좋습니다당신이나의 미식을 앗아가도 좋습니다나의 살갗을 앗아가도 좋습니다설령,나의 오감을 앗아가도 좋습니다대신,당신은 나의 사랑이 되어주세요잃어버린 오감은부작용이란 이름이면 충분합니다.
<흰, 꿈>이라는 파일을 하나 갖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시도 수필도 소설도 일기도 아닌 무언가를 끄적인다. 메모장 같은 공간이다. 약 3년 간 그곳에 글을 써왔다. 올해는 자주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나의 2년이 담긴 공간이라 할 수 있다.나는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곤 한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글틴에 업로드한 <확신>,
글 하나만 써 보고 자겠다고 생각했던 게 벌써 두 시간 전이다. 아무래도 인터넷 세상은 내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글 쓰는 화면을 찾는데에만 몇 십분을 쓴 것 같다. 그래도 결국 잠들기 전에는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했다. 첫 글로 뭘 써야할까 고민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 사이트에 나타낼 첫 번째 글이다, ‘나’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여는 느낌. 그렇게 생각하니 쉽게 주제를 정할 수 없었다. 소설을 멋지게 적어 내려가 볼까,어제 본 만화에 대한 감상을 적을까, 하다가 결국엔글틴에 왜 들어오게 됐는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그게 가장 무던하고 튀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의 무기력이란 것은 굉장한 힘을 가진다. 물론 나쁜 쪽으로. 글틴 회원가입 이야기에서 왜 갑작스럽게 무기력으로 넘어갔느냐-하면은 그것이 바로 오늘에서야 글틴에 들어오게 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글틴을 추천받은 것은 지금으로 부터 대략 2년 전. 2023년의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랫동안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미술학원의 글 선생님께서 내게 글틴을 추천해주셨다. - 미술학원에 글 선생님이 계시는 까닭을 설명하자면 좀 길다. 그곳은 평범한 학원이 아니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중학교 내내 만화 그리기에 전념했던 나는 창작욕에 불타고 있었다. 아마 그때 바로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회원가입을 했다면 글을 수백편은 썼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고등학생이라니’하는 충격에 휩싸여서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로 오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는 무기력의 증가였다.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 때문에 전에 그리던 만화를, 쓰던 소설을 못 이어나가곤 했다. 그게 반복되니 한 작품을 끝내는 일이 거의 줄어들었다.도입부까지만 쓰고 끝내는 일이 점점 쌓여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멈춰 서버리는 무기력함. 무기력이라는 것을 핑계로 나는 멈춰버렸다. 글틴이 고등학교 재학 도중 종종 생각나곤 했지만그때에도 전부 포기해버렸던 것 같다. 무언가 시작하면 끝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이 오히려 부담으로 바뀌어버렸고, 그 부담은 ‘시험기간 되면 또 그리지도, 쓰지도 못하는데’하는 무기력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2년이 어느순간 지나가버렸다... 2년이라니, 글자로 적어보니 정말이지 한심하다.. 자그마치 700일도 넘는 시간 동안 멈춰 서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삶을 살면서 내 꿈을 펼쳐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니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러고 보니.“내일 모레면 고3이잖아?”글틴에 갑작스럽게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꽤나 단순한 이유다. 2년의 무기력이 만들어낸 급박함!내년이, 이틀 뒤면 올해가, 지나가버리면 나는 글틴에 글을 쓸 수 없다. 틴이 아니게 되니까. 따라서 늦었지만 글을 써보려 한다. 2년이 지나가버렸지만, 남은 한해라도 글을 써보려 한다. 글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형식이나 그런 이론적인 것에 대해선 더더욱 모르지만, 일단은 써보기로 했다. 무기력에게 힘을 보충해준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오후의 어시장을 통과할 때아스팔트에서 굴러다니는 빛무리가 차창으로 번져손잡이바닥가방이마의자훑고 가듯이 바라보듯이물고기들은 대야에서 퍼덕거리고 있는데우리는 좌석에 앉아 지금의 감상을 간직하고 있네버스 창문에서 손을 내밀고시적인 단어들을 음미하다가멀어지는컨테이너 박스하늘이 쏟아낸 오늘의 길길은 어쩌면 벽그렇게통 안에서 빛바랜 잿빛 노을오래된,또는 흰 배나 번쩍거리는 등빛이 출렁거릴 때버스는 몸부림치는 그 안으로익어가아무도 모르게나는 너를 태우고반투명한 창문을 나누어 여는 일이횟집에서 살점을 가르는 일만큼이나 서럽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손톱에서 자라나는 가시이로 뜯어버린 잘못된 성장너는 무심하게 모든 것을 흘린다그렇지만 나는 주워담는 일이 익숙했어 늦은빛뜨거운 빛 아래로...
얇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나는 그런 아이를 품속에 잡았다하늘에서 식초가 떨어진다산성이 강한 얼굴이 떨어지면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까?작은 질문으로 앞을 걸었다하늘에서 내리는 산성땅이 뜨거워지고 따가워지고토지 물속걸음을 옮길 수 없어품속에 자리 잡은 아이걸을 수 있니?아가미도 없고얇은 몸인데발을 옮기는 순간호랑이 앞에 서 있는 종이 호랑이가 될 거야찢어지는 것숨을 멈추고 달려 보는 것호랑이 이야기는 젖어있는 교과서에서 배웠겠지다리를 숨기는 아이얇은 살결 사이사그라드는 몸식초는 흐르고식초의 향기는 사라지고풍기는 것은걷지 못해 박혀 있는우리 집 벽장에 박혀 있는 우리쪼그라지고찢어지고물에서 호흡은 걷기는얇아서 스며들어아이가 흐르는 것을 잡지 못하고우리의 냄새도 사그라들고우리 그냥 품에서 침대에 누워있자하늘 위 식초교과서에서 흐르는 향기호랑이가 호흡하지 못하는종이의 찢어짐물 길이 찢어지는따가운 땅 위지워지는 품 밖으로배웠던 몸들의 기억을 버려물길 위에 얇은 다리를 내려놓으며호흡을 지워지는 다리에 넣었어
불이야말하니까 불이 났다눈 앞에서 선명히 타오르는 건물의 초상 우리는 멍하고 불을 바라본다 불똥이 튄다금방 퍼져 흐터지고우리는 멍 하고 멍 짖는다 사람들이 막 뛰어내려 윽 저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고 저기 누워있는 사람은 떨어지면서 뇌진탕이 왔대 저기 저 사람은 팔이 꺾여서 이상한 신음을 낸다 그런데 왜 하필 너가 옆에 있었을까나는 다시 멍 때리고 쿵 하고 건물이 무너진다 그 밑에 너가 있고 너는 쓰러진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이상함을 느끼는데내 몸이 어색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고 멍 하고 꺼져가는 눈을 바라본다
흐릿한 시야와 단순한 잡음들 사이단순함으로 생긴 복합 속의 흰 고양이와 나흰 고양이의 숨과 온기만담겨있는 집 안에서고양이의 주인 몰래 사료를 꺼내어 그릇에 붓는다.'카드득, 카득'흰 고양이가 사료를 먹는 소리,나는 이 평화를 미래의 노스탤지어로남기겠다. 다짐하며난간에 걸터앉아 고민한다.'눈을 감을까? 마지막으로 시를 쓸까? 아니면 편지는? 저 조명은 언제까지 나를 비출까?나의 피는 눈물로 바뀔까? 신은 존재할까?'그때 나의 위에 앉은 흰 고양이,그 고양이를 보며나는 드디어'고양이는 착지를 잘하니까,고양이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으니까.그래, 떨어지지는 말자.'결심을 하고 발목을 잘라 피를 모두 빼내어가벼워진 육체로 흰 고양이를 안으며"그래, 날자날아오르자."
문장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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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광장 댓글챌린지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를 보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참여 작가의 사인본과 캠핑 테이블 등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에 댓글을 남기고 캡처하세요! ★ 댓글 작성 가능 콘텐츠 : 김기태, 윤이안, 김중혁 소설가 및 조성래 시인의 작품 ★ 바로가기 - 김기태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1601&nPage=2&c_page= - 윤이안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3000000&bid=0035&act=view&ord=B&list_no=103036&nPage=1&c_page= - 김중혁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3264&nPage=1&c_page= - 조성래 시인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2000000&bid=0034&act=view&ord=B&list_no=102878&nPage=1&c_page= 2. 댓글 작성 후, 응모 폼에 설문 제출! ★ 인스타그램 피드 또는 스토리에 @munjang2005를 태그하여 댓글캡처본을 공유하면 당첨 확률이 UP! ★ 응모 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O3oQP ㅇ 댓글 작성 플랫폼 : 유튜브, 문학광장 누리집, 팟빵, 인스타그램 등 어디든 OK!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16명) - 『천국어 사전』(5명), 『온난한 날들』(3명),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5명),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3명) - 접이식 캠핑 테이블 (5명) 지금 바로 댓글 남기고 특별한 선물을 받아보세요!
문장 ONE-PICK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를 ONE-PICK 해주세요! 독자 코멘트는 문장웹진 2025년 1월호에 소개되며, 푸짐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를 골라주세요! 2. 선택한 콘텐츠와 그 이유를 이벤트 응모 폼에 작성해 제출하세요! ★ 응모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v9lyN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4명 ): 『카카듀』 - 손난로 보조배터리 (12명) - 리싸이클 코끼리 노트 (9명) 여러분의 최애 콘텐츠를 골라 문학광장과 함께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숨은 문장이 찾기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 한 콘텐츠에 숨겨진 '문장이' 캐릭터를 찾아주세요! 정답을 맞히면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 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무작위로 '문장이' 캐릭터가 삽입된 5개의 콘텐츠를 찾아주세요! 2️. 찾아낸 '문장이' 캐릭터가 있는 콘텐츠 링크를 복사하여 설문폼에 제출하세요! ★ 설문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Knp4g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여행용 구급 키트(10명) - 로이텀 A5 다이어리 LEUCHTTURM 1917(5명) - 에코 키트 선물세트(손목가방,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고체 3종 어메니티)(5명) 문장이를 찾아 문학광장의 재미를 더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