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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글틴
그대가 추위에 괴로워 울면내가 기나긴 붉은 실을 끊어와 목도리 하나, 해줄테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그대에게 바람이 불어도날이 무척이나 쌀쌀해져도내가 언제나 끊어와스웨터 하나, 장갑 하나, 해줄 테니너무 쓸쓸해 하지 마라.그저 내가 그대를 너무 사랑해서 붉은 실이 전혀 아깝지 않기에실은 점점 짧아져가 그대와 맞다아도 갈 것이니앓던 나는, 따듯해지는 그대를 보며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날이 쌀쌀해도, 날이 쓸쓸해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신을 믿어보지 않겠는가?나는 반사적으로 안 사요, 라고 답하려다 말고 질문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식당 주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왼쪽 양반. 자네 말야.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산행 중에 허기를 달래려고 들어온 식당에서 포교를 당할 줄은 몰랐다. -이 산을 왼쪽 길로 오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있어. 하지만 저걸 정독해준 사람은 자네뿐이야.주인이 내가 순두부를 기다리며 읽은 벽보를 가리켰다. 순두부의 효능: 단백질이 풍부하고 혈압을 낮추는 항고혈압 펩타이드가 들어 있다. 그리고… - 보통 사람들은 순두부에 관심을 갖지 않아.나는 주인의 진지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순두부, 순두부라. 낮에 시 합평에서 들은 말이 재생되었다. - 새로운 시도는 좋은 거지. 근데 전혀 융화가 안 되고 덩어리져 있잖아. 이건 뭐, 죽도 밥도 아니고, 차라리… 순두부라고 부르는 게 낫겠어. 이건 일종의 계시가 아닐까? 나는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 되어 물었다.-어떤 신 입니까? 마감 시간, 셔터가 내려간 어두운 가게. 오래된 회중시계를 닦으며 주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신을 알려면 우선 순두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순두부는 사실 신이 되다 만 음식이야. 주인은 한나라 때의 왕이 시종들에게 콩과 바닷물로 불사의 영약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이야기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최초의 순두부라고. 나는 어째서인지 그 이역만리의 무모한 중국인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아침이 밝자 주인은 내게 직접 맷돌을 돌려서 두부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고된 노동 끝에 예쁜 상아색의 두부가 쏟아지자 시를 완성했을 때와 같은 충만함이 차올랐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주인이 말했다. - 이제 그분을 뵈어도 될 것 같군. 주인은 나를 회중시계 앞에 세웠다. 그리고 예의 그 진지한 얼굴로 이분이 내가 모시는 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 이건, 그러니까, 시계잖아요. 내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 서자 주인이 느물느물 웃었다.- 그래, 신은 이렇게 가까이에 계시네. 되먹지 못한 순두부와는 달리 완전한 형태로. 그 차이를 느껴 보라고 일을 시켰던 걸세. 나는 불쑥 묻고 말았다. - 궁금했는데, 왜 순두부는 신이 못된 건가요? 제가 다 서운하네요. 이런 것도 신인데. 순두부는 먹을 수라도 있지, 시계는 손에 잡히는 걸 생산하지 않잖아요. 공허한 원심력이죠.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열을 내가며 순두부에 마음을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시곗바늘을 보면 서툴게 맷돌을 돌리던 내 노력이 떠올라 짜증이 치밀었다. -시계가 손에 잡히는 걸 생산하지 않는다고? 그건 중요치 않아. 잘 듣게,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이곳에 와서 순두부를 먹네. 시간 개념이 먼저고, 욕망은 다음이야. 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 구절도 있잖은가. 내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주인은 틈을 주지 않았다. - 그리고 자네는 시인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 어울
누군가 불붙인진 10년됐던흔한 흑석탄을 찍었었던블리치-바이-패스의 거칠고 마른 사진안매캐한-흐릿-일렁인 연기와 불의 모습안조금씩-버석-툭하고떨어진 석탄 덩어리왜 또 보고싶어질까?검, 희, 낙관주의대신총, 비, 비관주의뿐인다 탄 석탄재뿐인데20년대의 모니터 곁에흑탄재를 닦아내 보고백사진을 대어다 본다깔끔한-뚜렷-달라진건물과 강과 공원들도로와 도보 블록들전등과 창의 사진밖전자석-터빈-회전의연기와 불의 모습안습기차-파삭-탁하고떨어진 석탄 덩어리전기로 불이 드는20년대의 모니터 속과백사진이 모두들 담은바스라진 석탄 덩어리내 모습이 궁금하여또 다시끔 들여다본다
네가 뱉는 그 모든 기분 나쁜 말들이세상 끝까지 퍼져나가.사람들이 살면서 많이 아파할 만큼.나도 세상 사는 사람들 만큼 많이 아파,그리고 괴로워.피하려고 조금만 떨어지려 해도자꾸 붙잡고, 따라다니고.대체 우리가 좋아서 그런건지,아님 우릴 힘들게 하려고 그런건지.
미국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빼곡히 글자로 채워진 그 편지는 먼 거리를 건너오며 무언가 잃어버렸을 것이다편지에 담겨있던 마음이라던가 고민이라던가 나는 남은 문자들을 빠짐 없이 읽어냈다 시작은 안부 인사로 가령 ‘잘 계신가요’와 같은동시에 흩날리는 무색무취의 무언가 빛을 받은 먼지가 반짝이고 하필 눈에 들어온 단어가 ‘시한부’부재는 존재의 근거라고 했던가 발신자를 잃어버린 편지는 내가 가지고 있다
, 샬롯 웰스, 2023.모래그 여름이 끝나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영화 은 아버지 캘럼과 함께한 마지막 여름을 회상하며, 그가 남긴 상실의 흔적을 쫓아가는 소피의 여정을 그린다. 성인이 된 소피는 캠코더에 남은 장면들과 파편화된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트라우마로 얼룩져 왜곡되고,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그녀의 내면에 깊게 박혀 있다.상실의 여름이 남긴 흔적아버지 캘럼과의 관계는 소피에게 깊은 불안감을 남겼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애착의 단절 속에서 소피는 정서적 결핍을 경험한다. 볼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어린이는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을 통해 감정적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나 캘럼의 우울과 고독 속에 소피와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단절된 형태로 자리 잡았다.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은 자녀에게 깊은 정서적 결핍을 남긴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신체적 리듬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신체적,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로서 애착을 통해 충족되지만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이러한 애착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결핍으로 작용한다. 애착 관계와 단절되거나 사별을 겪게 될 경우, 한 사람을 뒤흔들만한 중대한 영향을 주고 또한 트라우마로 정의될 수 있다. 볼비는 이러한 단절로 인한 고립감이 성격 형성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 캘럼은 홀로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거나 난간 위에 아슬히 서있는 등 우울한 모습을 빈번히 그린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명상과 태극권에 몰두하는데, 이는 그의 정신적 고통과 정신병적 우울증을 암시한다. 우울증은 유전적 경향이 강한 질병으로, 부모가 겪은 우울이 자녀에게도 유전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피에게도 이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기억의 파편, 고통의 재경험영화는 캘럼의 반복적인 우울을 통해 그가 겪은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퇴장 씬에서는 그의 자살을 암시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가정한다면, 소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PTSD의 주요 증상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과도한 각성 상태로 인한 반응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은 교감신경계의 지나친 활성화로 인해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과도한 각성 상태는 에서 소피가 새벽에 깨어난 장면과 같이 잠이 들게 어렵게 하고, 작은 소리에도 깨어나게 만든다. 두 번째 증상은 충격적인 외상 기억의 반복적인 재경험이다. 이는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시간이 지나도 마치 그 사건이 여전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재경험은 깨어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잔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플래시백 형태로, 잠을 자는 동안에는 반복적인 악몽으로 이어진다. 특히 외상 사건과 비슷한 자극이 주어질 때마다 강렬한 정서적 고통이 다시 두드러진다. 이러한 외상 기억의 재경험은 강렬한 정서적 고통을 유발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3주 전, 나는 회사를 나왔다. 그때를 떠올리면 코끝이 시큰해진다.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마치 누군가 ‘이상적’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려 설계한 듯한 날씨였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가로수길을 건너며 회사로 향했다. 길가엔 은행잎과 단풍잎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떨어진 단풍은 내 신발에 짓이겨졌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었지만, 다시 볼 여유는 없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날의 풍경은 유난히 선명했다. 단풍나무가 뿜어내는 붉고 노란 빛깔이, 마치 나를 바라보며 작별을 고하는 듯 느껴졌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는 어딘가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학벌도 좋지 않았고, 능력도 평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균 이하였다. 그래서 성실함이라도 보여야 했다. 회사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그러나 내가 깔아뭉갠 단풍잎처럼, 나의 노력도 그렇게 짓이겨지고 있었던 것일까?단풍잎의 흔적은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날 이후 사람 냄새가 유독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사람에겐 각자의 냄새가 있다. 전날 먹은 고등어의 비릿한 냄새, 믹스커피의 구수한 냄새, 상사의 다급한 잔소리 냄새, 그리고 친절을 가장하며 요구를 쏟아내는 쿰쿰한 냄새까지. 모든 냄새가 뒤섞여 나를 둘러쌌다. 나는 그 냄새들을 싫어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맡다 보니 코가 지쳐버렸다.정작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내 냄새였다.내 냄새는 지독했다. 코끝을 찌르는 악취는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나는 내 냄새를 혐오했다. 그것이 내 실패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승진이 미뤄지고, 사람들과 멀어지고, 조롱당했던 이유는 모두 내 냄새 때문이었다. 물론 누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냄새를 잊기 위해 나는 얼음을 씹기 시작했다. 얼음은 냄새를 없애주진 못했지만, 잊게 해줬다. 얼음이 이 사이에서 깨지는 싸한 통증은 내 코끝의 불쾌함을 잠시 덜어줬다. 회사에 다닐 때도 늘 얼음을 달고 살았다. 얼음이 아그작 깨지는 순간만큼은 내 냄새와 타인의 냄새가 모두 사라졌다.얼음은 나에게 작은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 위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가 시려와 고통스러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냄새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았다.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따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하루를 보냈다. 더 이상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 냄새에 질려버린 내 코에게 미안했고, 내 냄새를 맡아야 할 사람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자신의 냄새가 점점 진해지고 썩어가는 걸 느꼈다.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흐리멍텅한 눈동자, 생기를 잃은 피부, 그리고 어딘가 부패한 듯한 표정.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짓누르며 속삭였다. "넌 이미 끝났어." 나는 그 말을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문장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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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수상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시)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시 장원 김ㅇ언 지우개의 행방 우수상 김ㅇ림 볼풀장 장려상 정ㅇ영 뜨개질 장려상 이ㅇ민 지우개 인간 장려상 주ㅇ영 지우개 입선 박ㅇ희 기다림 입선 정ㅇ연 영구임대 입선 박ㅇ원 공연 입선 박ㅇ정 기다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산문)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산문 장원 김ㅇ애 매실의 시간 우수상 박ㅇ연 지우개 장려상 전ㅇ희 지우개는 그곳에 두고 왔다. 장려상 장ㅇ현 기다림의 순환 장려상 김ㅇ연 나는 오늘도 내일의 나를 기다립니다. 입선 박ㅇ선 그런 기억도 소중하다고 당신에게 배웠습니다. 입선 손ㅇ선 겨울 준비 입선 조ㅇ옥 두번 심은 고추(모종) '기다림' 입선 김ㅇ연 얀의 선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아동문학)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아동 문학 장원 고ㅇ성 특별한 청설모 우수상 임ㅇ정 회색 꼬마 공룡 지우개 장려상 지ㅇ순 안젤라 누나 장려상 이ㅇ민 한 줄 두 줄 엮이더니 장려상 한ㅇ비 나와 너의 기다림 약속 입선 이ㅇ지 커다란 지우개 입선 김ㅇ영 당근 김밥 입선 이ㅇ희 기다림 입선 한ㅇ숙 D-15 누나가 나타났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특별상)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특별상 오ㅇ원 나와 타인 특별상 김ㅇ희 지우개
안녕하세요.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수상 작가님을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은 올해 2회차를 맞이하였으며, 올해 297명의 작가님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차년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상(1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대상 이*숙 0691 □ 공감상(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공감상 한*희 6220 방*의 8596 장*교 3370 김*아 7073 정*선 5498 □ 소통상(1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소통상 김*선 9218 유*하 0913 박*영 0631 장*현 5963 김*언 8675 이*령 7811 조*숙 0875 박*롱 7714 최*숙 4557 권*현 8068 이*지 0691 정*숙 7863 최* 5552 강*은 0694 이*님 3413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의 등단(미등단) 작가님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목표로 미등단 여성 작가님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의 흐름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등단 이력이 있는 작가님도 본인이 등단하지 않은 장르(시, 산문,아동문학에 한함)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참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ㅇ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 가능여부 안내 -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여성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등단 여성 작가님은 등단하신 장르로 참여는 불가하나, 다른 장르로는 신청이 가능합니다.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신청 예시 1. 산문(소설) 분야 등단 작가님 → 산문 부문 신청 불가(아동문학, 시 부문 참여 가능) 2. 아동문학 분야 등단 작가님 → 아동문학 중 세부 장르의 등단 분야 신청 불가(시, 산문 참여 가능) (예시 : 아동문학_동화 등단일 경우 동화 신청 불가, 동시로는 가능 / 반대일 경우도 동일) 3. 시 분야 등단 작가님 → 시(시조) 부분 신청 불가(소설, 아동문학 참여 가능) 4. 등단 이력은 없지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동일 장르 수상 이력이 있을 경우 참여 가능 여부 → 장원 수상 이력 외 참여 가능 위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추후 사업의 경우 현재보다 더 개선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