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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munjang

문학집배원

윤이안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온난한 날들』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2024.10.24 천운영
조성래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창원」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2024.10.11 김언
김기창 소설가의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2024.09.26 천운영
이린아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양동이」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2024.09.12 김언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2024.08.22 천운영
남지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2024.08.08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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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첫사랑

옛적에 열린 주말의 현관문주말의 발걸음은 처음 그대로낭랑한 목적지를 삼아 오직 그대로.옛적에 온 역전도이젠 새로운 기차역그대와 벗어나는 지역처음 보는 플랫폼에 내려낭랑한 목적지를 삼아그대와 처음 보는 세상내 역사의 분기점.오늘날 연 평일과 현관문과이젠 지나치는 플랫폼저곳 아직 향기만은 그대로인데저 순간도 그대로인데달라진 것은 이 순간옛 향기만 기억에 남은 채내 역사의 또 다른 분기점.잃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찢기는 싫은지나치는 인연.내 역사에 점찍어분기점을 남긴 그대를한생에 잊을 수는 있을까마음 한 곳 편에 두어 살아갈 수는 있을까답은 없는 듯하다.

2024.11.23 고을
나의 첫 비행 연습

죽고 싶을 때면 나는 전생을 떠올려혼자 말이 없어지면서 말이야죽고 싶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우린 아직 키가 덜 자라서 그렇다고 말했어. 그런데 나는 알고 있지 우리가 왜 우울한지에 대해, 책상 밑에 숨어서 보았던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나의 침전은 깊어지는 것이 아닌 가벼워지는 것이어서 농담이 그 무게를 잃을 때 까지 나는 깊이 침전했다. 무게를 완전히 잃은 날에는 다시 날 수 있겠지. 날기 전에 나는 죽음에 대한 농담을 실컷 던지며 놀았고 너는 그런 내 농담을 좋아하고 그럴 때면 나는 자꾸만 무거워져 날아가지 못하게. 너는 다음 생에는 우리가 키가 더 클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를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날자 날기 위해 연습하자어미 새는 새끼 새를 떨어뜨리면서 비행 연습을 시키지지난 생을 기억하며 점프충분히 가벼워지지 못한 이유일까나는 이제 침전 아닌 추락을 하고우린 다음 생에 키가 더 크겠지

2024.11.23 이형규
내가 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내 손에 없음에 슬퍼해봐도 그것은 또 다시 달아나고 저 멀리 달아나버린 것을 해내려면 서쪽 더 서쪽으로 가야한대요 해가 지는 곳으로 

해가 지는 곳으로한참을 울고 일어나면 베갯잇이 축축하게 절여지고 눈자위는 찢을 듯 아파서다시는 울지 않겠다 이 아픔을 겪고 싶지 않다 말했어그러자 천장에 붙은 야광별을 떼었다끈적하게 남은 온기는 별이 살아 움직였다는 증거겠지나는 꿈틀거리는 꿈을 붙잡고 초승달을 봅니다저 달이 채워질 쯤에야별을 날려 보낼 수 있겠지 하고해가 지는 곳으로하지만 달이 차오르려면 해가 뜨고 져야 하고나는 해가 지는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언제나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은 당신과 출렁이는 인공보도를 걸으면 나는 어쩐지 동쪽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싸우죠나를 놓아줘나는 풍선처럼 날아갑니다 어디로 향하는 줄 모르게울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또다시 눈물을 쏟아내는 건 이별 탓입니다서쪽으로 가면 울지 않을 수 있다며거짓말 투성이야……흩뿌려지는 눈송이처럼 나는 흩날립니다민들레 홀씨처럼……눈을 떠보면 서쪽에서 더 서쪽해가 지는 곳으로나는 무엇을 잃었나 무엇을 이뤘나 손에 쥔 꿈이 진정 별이 되었을 때 가슴 속 차오르는 공허한 희열걷습니다 땅거미 지는 길 바닥에 박힌 이정표당신 그곳에 있어요?동쪽에서 더 동쪽해가 뜨는 곳으로

2024.11.22 nana
바보와 사랑

밤이 지나가면바람이 시원한 아침을 울리고때 지난 부끄러움은 용서가 덮어주었지그렇게 스스로 눈을 가려주는 용기네게도 그런 사랑이 필요했다나는 네게손바닥이라는 의미로 남고 싶다좁고 편협하고 꽉 막힌 상자로언제든 편안히 되돌아갈 수 있는 둥지로그렇게 마음이 지친 네가휩쓸려 감당할 수 없는 형태로서러움을 토해 내도알면서 모른 척 하는 일이사실은 어느때보다 가르치는 일이라는 걸시간으로써 알려주고 싶다밤이 지나가면기쁨이 고동처럼 밝게 차오른 네가눈물을 흘려도계속해 그 의미 그대로남아있어주고 싶다

2024.11.22 방백
피할 수 없는

하늘이 구름을 먹어 삼켰다면오늘 아침 작은 구름을 보지 못했겠지하늘은 남김없이 먹는 뚱보니까설령 하늘이 디저트로 남겨둔 작은 하늘을 깜빡해서그가 홀로 살아남은 거라 할지라도하늘의 눈에 띄면 바로 먹어 치워 질 운명이야그러니 결국 이미 먹힌 구름들과 다름없지봐, 어제 그 수많은 구름을 먹으며침을 뚝뚝 떨어뜨린 하늘이아직도 입맛을 다시고 있잖아저 뱃속에서 구름이 완전히 소화되면배고픔에 눈이 돌아서무엇을 먹어버릴지 아무도 몰라!으악! 이럴 수가하늘이 저 작은 구름을 놔두고 우리한테 오고 있어빨리 땅에서 뿌리를 뽑고 도망쳐야 해!하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척으로 내려와두려움에 떨던 꽃들을 한번 훑어보았다그는 이내 큰 혀를 내밀어 꽃들에게 침을 발랐다하늘이 떠나고 온갖 울음과 비명이 난무하는 꽃들 사이로 무언가 삐죽 솟았다그는 뿌리를 뽑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꽃 한 송이.그에겐 하늘의 흔적이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하늘의 입.그는 하늘에게 발각되어 먹히는 작은 구름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2024.11.22 가엘
소설 분위기

춤추지 않는 밤은 몰라 -フレデリック, 히로시는 분위기를 탔다. 꽤 들어간 술 탓일지도 모르고 유난히 물 좋은 클럽 탓일지도 몰랐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산들바람보다는 폭풍에 가까웠다. 양쪽 귀가 마비될 정도로 몰아치는 비트의 난류(亂流)는 고막을 지나 신경을 타고 뇌에 닿고는 전기 신호를 쏘아 보낸다. 전신의 어지러운 본능을 향하여.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때 다다른 그 전기 신호는 새어나오던 몸의 힘을 일직선으로 통일해버렸다. 히로시는 눌려 있던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섰다.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히로시 씨?" 일행이 놀라든 말든 히로시는 가락에 올라앉았다. 융기하고 추락하는 멜로디를 롤로코스터처럼 타고, 이미 춤추고 있던 몇몇 사이로 끼어들었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 부유감 사이로 아찔한 박자가 불쑥 끼어드는 것이었다. 몸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히로시의 몸은 이미 사랑에 전율하는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퉁, 하는 드럼의 폭음에 허리를 틀어올리고 일렉 기타의 폭주에 팔을 흔든다. 터지듯 달리는 음정과 미칠 듯한 본능이 각각 반이다. 히로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움직였다. 흐린 시야로는 주변인들의 몸짓이, 먹먹한 청각에는 움직임을 지시하는 박자가. 몇 년만에 추어보는 춤사위요 자극적인 맛의 자유였다. 혼자만의 흥이었던 춤은 곧 주변인들과 연결되어 간다. 그들의 박자와 히로시의 박자가 노래를 매개 삼아 이어지고 정신이 이어붙는다. 사람들의 놀람이, 즐거움이, 짜릿한 흥분이 전도되고 생각이 통일된다. 비트에 맞춰 그들은 스스로가 되고 덩어리가 되길 반복했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거대한 역동성에 심취해서, 물처럼 시간이 흐르고 폭포가 되어 떨어지려는 찰나. 기억이 탁, 끝겼다. "으으....." 히로시는 클럽 문앞에 주저앉아 머리를 긁적거렸다. "쫓겨났나." 풍속영업법은 히로시의 생각에 아주 악법이었다. 2014년의 현대에 춤추기를 제한하는 것은 중세로의 퇴보에 지나지 않는 짓이었다. 아니, 중세에도 그런 법은 없었을 것이다. 히로시는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치 큰 가드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그는 돌아섰다. 주변에는 히로시처럼 쫓겨난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저 클럽에는 출입 금지를 당할 것이었다. 일행이라는 사람들은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들이었다. 기다리면 누가 올지도 몰랐지만 히로시는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와 봤자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는 늘 타는 파란색 반, 하얀색 반의 버스가 오는 정류장을 찾아 걸었다. 헌 걸음에 보도블럭 네 개, 아주 일정한 걸음걸이다. 히로시는 조금 다르게 걸어보았다. 세 개 반, 세 개, 조금 욕심 부려 다섯 개. 살짝 부족했다. 조금 다리를 더 뻗었어야 했다. 그런다고 익숙한 보폭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아서 그는 곧 네 개의 보도블록을 걷는 자신을 발견했다. 히로시는 포기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정류장이었다. 버스는 꼭 오 분 뒤에 왔다. 히로시는 타고 싶지 않았고 출발하고 싶지

2024.11.22 김희수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 (퇴고)

홍시가나뭇가지 끝에 매달렸습니다.매달려서 간댕간댕 합니다.우리 집 담벼락도 겨우 섰습니다.언젠가 할머니께서 심으신 감나무나는 마지막으로 한 알따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부스럭거리는 잎들 사이로하늘이 분처럼 허옇습니다.그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옵니다.분칠이 벗겨진우리 집 담벼락을 넘어 날아옵니다.날아와서 우리 집 홍시를 쩝니다.나는 막대기를 치워 버리고 가만까치를 지켜봅니다.홍시를 다 먹은 까치는하늘로 날아 오릅니다.눈 앞이 파랗습니다.까치가 우리 집 홍시를 먹고어딘가로높이 날았습니다.얼굴이 후끈거립니다.바람도 꼭 멈춘 것만 같습니다.까치가 먹고 떠난 홍시그 흔적은 하늘로 떠나어딘가에 남아 있을 겁니다.우리 집 담벼락이 무너져도그곳은 사라지지 않겠죠.하늘 어딘가엔 우리 동네의 흔적이영원히 흐르겠지그런 생각이 납니다.이파리는 부스럭거리고까치는 아궁이의 김처럼 날아가고먹다 남은 홍시 꼭지는나뭇가지 끝에 매달렸습니다.혀 끝에 홍시 맛이 어른거립니다.

2024.11.22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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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누리집 이용자 만족도 조사 (기프티콘 5천원권 증정)

여러분과 함께 더 나은 문학광장을 만들고 싶어요! 문학광장 누리집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 참여해주시면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이 더욱 반영될 수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깜짝 선물도 준비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ㅇ 조사기간 : 2024. 11. 11(월) ~ 20(수) ㅇ 설문링크 : http://isurvey.panel.co.kr/?Alias=9256906499

2024.11.13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결과 안내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수상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시)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시 장원 김ㅇ언 지우개의 행방 우수상 김ㅇ림 볼풀장 장려상 정ㅇ영 뜨개질 장려상 이ㅇ민 지우개 인간 장려상 주ㅇ영 지우개 입선 박ㅇ희 기다림 입선 정ㅇ연 영구임대 입선 박ㅇ원 공연 입선 박ㅇ정 기다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산문)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산문 장원 김ㅇ애 매실의 시간 우수상 박ㅇ연 지우개 장려상 전ㅇ희 지우개는 그곳에 두고 왔다. 장려상 장ㅇ현 기다림의 순환 장려상 김ㅇ연 나는 오늘도 내일의 나를 기다립니다. 입선 박ㅇ선 그런 기억도 소중하다고 당신에게 배웠습니다. 입선 손ㅇ선 겨울 준비 입선 조ㅇ옥 두번 심은 고추(모종) '기다림' 입선 김ㅇ연 얀의 선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아동문학)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아동 문학 장원 고ㅇ성 특별한 청설모 우수상 임ㅇ정 회색 꼬마 공룡 지우개 장려상 지ㅇ순 안젤라 누나 장려상 이ㅇ민 한 줄 두 줄 엮이더니 장려상 한ㅇ비 나와 너의 기다림 약속 입선 이ㅇ지 커다란 지우개 입선 김ㅇ영 당근 김밥 입선 이ㅇ희 기다림 입선 한ㅇ숙 D-15 누나가 나타났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특별상)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특별상 오ㅇ원 나와 타인 특별상 김ㅇ희 지우개

2024.10.11
공지사항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결과 안내

안녕하세요.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수상 작가님을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은 올해 2회차를 맞이하였으며, 올해 297명의 작가님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차년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상(1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대상 이*숙 0691 □ 공감상(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공감상 한*희 6220 방*의 8596 장*교 3370 김*아 7073 정*선 5498 □ 소통상(1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소통상 김*선 9218 유*하 0913 박*영 0631 장*현 5963 김*언 8675 이*령 7811 조*숙 0875 박*롱 7714 최*숙 4557 권*현 8068 이*지 0691 정*숙 7863 최* 5552 강*은 0694 이*님 3413

2024.10.08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등단/미등단) 관련 안내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의 등단(미등단) 작가님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목표로 미등단 여성 작가님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의 흐름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등단 이력이 있는 작가님도 본인이 등단하지 않은 장르(시, 산문,아동문학에 한함)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참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ㅇ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 가능여부 안내 -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여성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등단 여성 작가님은 등단하신 장르로 참여는 불가하나, 다른 장르로는 신청이 가능합니다.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신청 예시 1. 산문(소설) 분야 등단 작가님 → 산문 부문 신청 불가(아동문학, 시 부문 참여 가능) 2. 아동문학 분야 등단 작가님 → 아동문학 중 세부 장르의 등단 분야 신청 불가(시, 산문 참여 가능) (예시 : 아동문학_동화 등단일 경우 동화 신청 불가, 동시로는 가능 / 반대일 경우도 동일) 3. 시 분야 등단 작가님 → 시(시조) 부분 신청 불가(소설, 아동문학 참여 가능) 4. 등단 이력은 없지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동일 장르 수상 이력이 있을 경우 참여 가능 여부 → 장원 수상 이력 외 참여 가능 위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추후 사업의 경우 현재보다 더 개선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