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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 임솔아「멍」

멍 임솔아 더러워졌다. 물병에 낀 물때를 물로 씻었다. 투명한 공기는 어떤 식으로 바나나를 만지는가. 멍들게 하는가. 멍이 들면 바나나는 맛있어지겠지. 창문을 씻어주던 어제의 빗물은 뚜렷한 얼룩을 오늘의 창문에 남긴다. 언젠가부터 어린 내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다. 꺼지라고 병신아, 아이는 물컹하게 운다.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멍든 얼굴을 구긴다. 구겨진 아이가 내 앞에 있고는 한다. 사랑받고 싶은 날에는 사람들에게 그 어린 나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나를 안아준다. 구겨진 신문지로 간신히 창문의 얼룩을 지웠다.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 2017)

2025.05.08
유연희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일각고래의 뿔』

이건 뭐지? 백이 무언가를 골똘히 본다. 상아로 만든 보검 같다. 아 그거? 진열장 안의 장검 같은 상아를 보고 민혜가 반긴다. 그게 바로 일각고래의 뿔이야. 유니콘의 뿔이라고. 내일 데지마 상관에 가서 보려 했는데 여기도 있네. 그녀가 좋아라 한다. 술이 깨는 모양이다. 유니콘의 뿔? 나도 다가간다. 이거 엄청 비싼 거예요. 민혜가 속닥거린다. 일각고래의 뿔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정확히는 뿔이 아닌 이빨이지만, 북극에 사는 고래의 어금니가 상아처럼 길게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다. 북극 고래는 유빙을 뚫어 숨을 쉬고 먹이를 잡고 적을 물리치니 어금니를 작살처럼 변형시킨 것이란다. 뿔이 아니라 작살인데? 백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작살 잡는 시늉을 해 보인다. 정말 작살과 흡사하다. 포수들의 작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포수는 작살로 먹이를 잡고 경쟁자를 물리쳐 숨을 쉬니 작살이 맞다. 와, 손이 근질근질하네. 백이 작살의 손잡이 부분을 진열장 위에서 가늠하며, 꼭 맞네. 지난번에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작살이잖아, 하고 능청을 떨자 민혜가 받아준다. 그래? 그럼 이거 우리 거네? 우리가 가지고 가야겠네. 카운터의 주인이 여차하면 달려올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이거 수컷이죠? 민혜가 불쑥 내게 묻는다. 작살을 맞고 도망 온 동족을 보고 고래들이 궁리했을 거예요. 우리도 이런 게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수컷의 이빨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죠. 아주 오랫동안, 그야말로 이를 갈면서 말이에요. 암컷은 새끼를 잉태하고 종족을 보존해야 하니까 제외시킨 거고요. 과연 솔피 강의 동생다운 추리다. 내 이도 어딘가 근질거리는 것 같다. 더글더글. 나도 이를 갈아본다. 아래윗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갈아본다. 고래도 손이 있으면 인간처럼 도구를 만들었을 거다. 손이 없으니 자신의 신체 중 가장 강한 이빨, 어금니에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어머, 저거 좀 보세요. 민혜가 내 팔을 톡 친다. 진열장 속에 누워 있던 작살 뿔이 들썩거린다. 마치 내게 응답하는 듯이. 어? 백도 신기해한다. 카운터의 주인 여자가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앉은 게 그다음이다. 벽에 걸린 액자가 들썩이고 천장의 고래 모형도 부르르 몸을 떤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지진이에요! 백의 외침에 민혜의 눈이 팽팽해진다. 아니다. 고래가 작살을 본뜬 게 아니고 인간이 일각 고래의 뿔을 보고 모방했을 거다. 아니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도구가 우연히 일치했거나. 백이 잽싸게 출입문 쪽으로 달아나고 민혜가 얼결에 따라가다 나를 돌아본다. 아아. 이빨 하나로 남은 고래야. 어찌하여 너는 지구 반대편의 이 먼 나라, 작은 항구까지 흘러와 뿔 하나로 이리 누웠느냐. 전생을 이빨 하나에 처연히 담고 말이다. 장생포의 작살잡이가 다리를 벌려 중심을 잡자, 발밑이 고래 등처럼 움찔거린다. 유연희, 『일각고래의 뿔』 (강출판사, 2022), pp.31~34

2025.04.17 천운영
한번쯤 그래 보고 싶었어, 다르게 살아 보고 싶었어 | 임유영「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임유영 시험이 끝나고 너와 같이 걸었다 옛날처럼 손잡고 다정하게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그렇지 개구리 군복을 입은 넌 중앙도서관에서 내려왔고 나는 종로 어디 구석진 찻집에서 대추차랑 약과를 먹고 있었는데 통유리창 밖에서 네가 손 번쩍 들고 인사했지 우리 그때 눈이 마주쳐서 웃었지 네 코에 걸쳐진 잠자리 안경 밑에 (넌 가끔 안경을 꼈지) 하얀색 마스크 속에 (너도 요즘 마스크를 쓰고 있겠지) 너의 입술이 천천히 그리는 반달 우리는 천천히 산책을 했지 아무래도 쫓기는 마음으로 이제 곧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맞아서 다칠 텐데 하지만 내가 대오를 벗어나는 선택을 한번 해본 것인데 경멸 없이 너를 만나보고 대추차도 먹어보고 허름한 찻집에도 들어가보고 불친절한 주인 남자에게 화내지도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한 번쯤 그래보고 싶었어 다르게도 살아보고 싶어 그날 내가 본 것 그날 내가 겪은 것 모두 새로 기입하는 이 흐린 저녁 그 가로등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 - 시집 『오믈렛』(문학동네, 2023)

2025.04.05
김성중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화성의 아이』

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털 달린 짐승이라면 질색이니까. 벼룩까지 있는 개라면 더 싫고 저 깡통 로봇은 한눈에 봐도 수명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소망을 들은 마야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너는 줄곧 혼자 지냈고 지금은 몸도 사라져 사념체 같은 상태인데. 그런 채로도 지구에 가보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 ‘도움’이라는 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그게 우리 DNA에 새겨진 최종 명령이니까. 지구로 귀환하는 건 눈먼 동물의 본능 같은 거야.” 너무 대놓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길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분열 중인 세포처럼 불안정한 상태야. 줄곧 안정화의 방법을 찾았지만 요원했지. 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시간의 바느질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지. 내가 죽인 사람들, 그건 사실 죽인 게 아냐. 만화경을 돌려 패턴을 바꿔놓은 거지. 라포르투나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야. 난 그들의 미래에 잔인한 이미지만 살짝 덧씌운 것이고. 네 친구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것도 잠깐 시간을 정지 시켜놔서 그래. 똥을 바르던 남자는 지금쯤 악몽에서 깨어났을 거야.” “갑자기 왜 솔직해지는 건데?” “난 너무 약해서 이제는 기생물이 되는 도리밖에 없어. 네가 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카는 벼룩을 네 마리 키워. 하지만 난 굳이······” “난 벼룩이 아냐! 네가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해? 여긴 가족과 친구가 있어. 키나 말을 들어보면 지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던데 거길 뭐 하러 가?” 저 순진한 표정을 보니 잘만 구워삶으면 내 숙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너도 나처럼 여행자니까.” 네가 아는 모든 존재는 여행자고 너 또한 또 다른 세계와 모험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 몸에도 나와 같은 유랑 벽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라이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실험견으로 뽑혀 우주로 보내졌어. 데이모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다시 화성으로

2025.03.20 천운영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속삭임 | 조용우「세컨드핸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2025.03.06
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2025.02.20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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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세 상처

내 다리에 난 세개의 상처언제 났는지도 모른다고통도 없다어딘가에 쓸린 것일까내가 긁어버린 것일까알 길이 없다그저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다상처는원인이 그렇게 중요한가?그거 알아서 뭐해상처가 남았다는 결과는 그대론데그리고 이 결과는 머릿속에 남아언젠간 잊혀지겠지내 다리에 새 상처가 생긴다그 전의 상처는 잊혀진채지금 당장의 새로운 시각적 결과만 눈에 들어온다원인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상처 안나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통은 무뎌진게 아닌 무감각해져버리고나는 바뀌지 않는다세상도 바뀌지 않는다뭔갈 해봤자 뭐하냐?너도, 결국 그대로잖아

2025.06.01 도래솔
노을

팔레트 위에 펼쳐진 세상 속노을이 조심스레 고른붉은 세상 한 움큼하루 끝자락에 물결을 타고 내려와지친 땅위에 살며시 발을 디디고남은 흔적을 덧칠하듯 번져나간다노을은 하나의 물감이 되고바람은 하나의 붓이 되고하늘은 하나의 캔버스가 되고우리 세상은 하나의 팔레트가 된다노을이 그리는 부드러운 손길로세상 모든 어둠이 서로를 감싸안는다

2025.05.31 wxcinq
검은 새 마을

어느 초여름에는 하늘에 손을 뻗지 말 것.기대하고, 또매일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 것.내 손가락 마디마디에 휘감기는 햇빛가닿는 곳은 심히 밝고 그렇지 않은 곳은종일 어둡기만 한데내 손이 이렇게 예뻤을까.쏟아지는 졸음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구원, 구원 아니라면 영원.그날 잠든 이후로마을은 소란을 삼킨 하나의 이야기노래하라!목울대에 차오르는 울분을 토해내며거리를 쏘아다니는 아이들검은 새가 물어나르는 환각에 제 힘에 못 이겨아이들은 풀린 눈으로어느 집 유리창을 부쉈다는데분노하라!멍하니 쳐다보는 아이들 눈동자에깃털은 귓속말처럼 휘날리고 두려워 오줌을 누는 아이들은 금세하늘을 가리킴으로써 서로를 위로했다자신들의 신을 아래로, 더 아래로 모셔왔다깨어나라!아이들은 다음 날에도 검은 새를 보겠다며놀이터 모래바닥에 그림을 그렸다그 그림은 새의 형태였음이 추후에 밝혀졌다괴상한 구호들. 흔들리는 마을. 지진.아이들은 꺽꺽 웃으며 손에 손을 잡고절대 등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손에 손을 잡고아이들의 웃음과 새의 울음이 구분되지 않는그 순간.잠에서 깨어났을 때마을 사람들은 죄다 턱을 떨고 있었다해가 들지 않는 나의 손 마디마디가 흐드러지듯.

2025.05.31 옥상정원
수필 창작의 자격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면 손가락이 무게추라도 되는 듯 추욱 늘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글을 쓰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면 스스로가 글을 써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저 금단의 생각을 단물 빠질 때까지 곱씹는다. 내게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게 진실로 느껴져 끝도 없이 절망하지만, 머지 않아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긴가민가한 상태가 반복되는 게 내 슬럼프다.지금 내겐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허망하고, 그 텅 빈 상태로 인해 스스로의 창작에 대한 자격을 의심하고 있다. 사실 좌절은 내 인생에 있어 흔한 이벤트다. 오히려 절망하지 않은 날들을 세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무너질 때마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때마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까진 매번 그랬지만 이번엔 정말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수렁에서 벗어나 다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다 멈춰버리고 싶었다. 여기 저기서 끝나지 못한 채 나뒹구는 이야기들이 눈에 밟혀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만 다 쓰면, 이라는 생각으로 버틴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보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건 은은한 충격을 주는 일이었다. 정말로 이게 나와 창작의 마지막이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처음이라는 사실은 그 사실만으로도 날 낙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찌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으나 내 모자란 대가리는 이런 상황에도 눈물 외에 해답을 찾지 못해 짠물을 쏟아낸다. 이렇게 자주, 또 심하게 좌절할 거라는 걸 알고도 시작했을까, 하는 한탄에 다시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이 없다는 게 이렇게 슬픈 건 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 소설만 안 썼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씁쓸하게 회상해봤자 현재가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이 망할 모든 것의 시작은 단 한 편의 소설이었다. 추억 속 그 소설은 지금 돌아보면 내용이나 실력 모두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이었다. 인물들은 조악했고 단순했으며, 문장들은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었고 사건들의 개연성도 아쉬웠다. 하지만 처음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완결지었다는 기쁨을 맛본 당시의 나는 막연하게 이걸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하고 말고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재밌으니까, 그게 다였다. 당시 내가 최고가 되길 바라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최고가 될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밌는데 잘하고 못하고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밝고 활기찬 태도로 글을 계속 써내려갔다. 정말 즐거웠다. 내가 한 생각에 실체가 생긴다는 게 그땐 이상할 정도로 신기했다. 그렇게 비록 조금이지만 내가 쓴 글이 모이기 시작했고

2025.05.31 환상

알아볼 수 없이 뜯어져 내린 벽지와 더는 찬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얇은 벽에 사방이 막힌 아주 좁은 단칸방 한 구석에 노인이 누워있다산 사람처럼 보이지도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는 마치 송장이 된 것 마냥 숨을 죽인 채 아무런 소리 없이 벼룩보다 작은 눈물을 흘린다발 끝을 물어뜯는 것이 모기인지, 아니 발 끝을 물어뜯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한 줌의 소리도 남지 않은 한숨을 내쉬어본다누군가 그랬었나, 떠나갈 때가 된 자의 앞엔 검은 옷을 입은 아주 흰 피부의 사내가 나타난다고그저 부서져가는 서랍장으로 그늘진 새카만 그림자만 한참을 쳐다본다셀 수도 없는 아주 오랜 날 저잣거리를 거닐던 참한 처자의 얼굴이 생각난다처자의 얼굴엔 연지 곤지가 칠해지곤, 지워졌다가, 이내 주름만 서서히 늘어난다하나 둘 늘어나는 새치에 웃음이 나면서도, 서글퍼지고, 곧 검은 머리는 사라진다아, 그녀는 한 줌의 재가 되었소아주 따스한 한 줌의 재가 되었소그녀의 피부가 그리도 뽀얬는지 모르겠소노인은 좁은 단칸방이 멀게만 느껴진다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서서히 빨라진다, 점점, 정신없이아,

2025.05.31 정용재
어느 새벽 소나기

녹이 스는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코를 움켜쥐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새벽공기만 둥둥 떠다닌다. 내 마음속 공백은 진공상태인데 누가 채워줄까 세상은 먹구름이 짙게 가려서 내 앞길도 저 너머에 한 줄기 빛이라도 보여주질 않는데 갑자기 내 두 눈만 뜨끈해져 소나기가 줄줄줄 내린다. 나는 축축이 젖은 눈을 꾹 짓누른다. 그러자 아득한 어둠이 걷히고 형형색색의 섬광들이 아롱아롱 비쳐온다. 다시 눈을 떠서 창문을 직시한다. 밖은 고요하다. 비 내음이 올라오듯 내 목에서도 짠맛이 올라와세면대에 모든 것을 게워낸 후에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나, 내가 있었다. 뿌연 안개처럼 희미해진,깜빡이는 형광등처럼 위태로운. 내가 이리 흐릿했던가. 비 그친 새벽 아무렇게나 입었던 면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가지런히 벗고 보송보송한 극세사 잠옷을 꺼내어 입었다. 비린내가 서서히 빠져서 이제야 잠에 들 수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이불을 힘껏 끌어안는다. 위로를 원하며, 내일을 바라며.

2025.05.31 우주물고기
쾌락

너의 몸에 피어난 가시마저내가 사랑할 수 있으랴날카로운 아름다움에 홀려독이 퍼지기 조차 모르니그러나 이제 알게 되었으니나는 달콤한 고통을 잃었다뜨거운 마음을 잃었으며 또한나의 사랑을 잃었다 보내야 할 너를 깊은 땅 속에향기조차 밀봉하면 그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까네가 없어 슬플 그 어느 날은

2025.05.31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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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협성마리나G7)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호텔프린스)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남이섬)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2025년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