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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장의소리]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우주적 무대! with 조시현, 이소호 작가 | 805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522161850557.jpg)
![[문장의소리] 20주년 기념 파티 with 오은 시인, 한유주 소설가 | 804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515104147759.jpg)
![[문장의소리] 20주년 기념 파티 with 송희지 시인, 이서아 소설가 | 804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513153454152.jpg)
![[문장의소리] 깨고 뛰어넘고 움직이지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언어로 with 윤유나 시인 | 803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513135354230.jpg)
문학집배원
멍 임솔아 더러워졌다. 물병에 낀 물때를 물로 씻었다. 투명한 공기는 어떤 식으로 바나나를 만지는가. 멍들게 하는가. 멍이 들면 바나나는 맛있어지겠지. 창문을 씻어주던 어제의 빗물은 뚜렷한 얼룩을 오늘의 창문에 남긴다. 언젠가부터 어린 내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다. 꺼지라고 병신아, 아이는 물컹하게 운다.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멍든 얼굴을 구긴다. 구겨진 아이가 내 앞에 있고는 한다. 사랑받고 싶은 날에는 사람들에게 그 어린 나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나를 안아준다. 구겨진 신문지로 간신히 창문의 얼룩을 지웠다.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 2017)
이건 뭐지? 백이 무언가를 골똘히 본다. 상아로 만든 보검 같다. 아 그거? 진열장 안의 장검 같은 상아를 보고 민혜가 반긴다. 그게 바로 일각고래의 뿔이야. 유니콘의 뿔이라고. 내일 데지마 상관에 가서 보려 했는데 여기도 있네. 그녀가 좋아라 한다. 술이 깨는 모양이다. 유니콘의 뿔? 나도 다가간다. 이거 엄청 비싼 거예요. 민혜가 속닥거린다. 일각고래의 뿔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정확히는 뿔이 아닌 이빨이지만, 북극에 사는 고래의 어금니가 상아처럼 길게 튀어나온 것이라고 했다. 북극 고래는 유빙을 뚫어 숨을 쉬고 먹이를 잡고 적을 물리치니 어금니를 작살처럼 변형시킨 것이란다. 뿔이 아니라 작살인데? 백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작살 잡는 시늉을 해 보인다. 정말 작살과 흡사하다. 포수들의 작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포수는 작살로 먹이를 잡고 경쟁자를 물리쳐 숨을 쉬니 작살이 맞다. 와, 손이 근질근질하네. 백이 작살의 손잡이 부분을 진열장 위에서 가늠하며, 꼭 맞네. 지난번에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작살이잖아, 하고 능청을 떨자 민혜가 받아준다. 그래? 그럼 이거 우리 거네? 우리가 가지고 가야겠네. 카운터의 주인이 여차하면 달려올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이거 수컷이죠? 민혜가 불쑥 내게 묻는다. 작살을 맞고 도망 온 동족을 보고 고래들이 궁리했을 거예요. 우리도 이런 게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수컷의 이빨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죠. 아주 오랫동안, 그야말로 이를 갈면서 말이에요. 암컷은 새끼를 잉태하고 종족을 보존해야 하니까 제외시킨 거고요. 과연 솔피 강의 동생다운 추리다. 내 이도 어딘가 근질거리는 것 같다. 더글더글. 나도 이를 갈아본다. 아래윗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갈아본다. 고래도 손이 있으면 인간처럼 도구를 만들었을 거다. 손이 없으니 자신의 신체 중 가장 강한 이빨, 어금니에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어머, 저거 좀 보세요. 민혜가 내 팔을 톡 친다. 진열장 속에 누워 있던 작살 뿔이 들썩거린다. 마치 내게 응답하는 듯이. 어? 백도 신기해한다. 카운터의 주인 여자가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앉은 게 그다음이다. 벽에 걸린 액자가 들썩이고 천장의 고래 모형도 부르르 몸을 떤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지진이에요! 백의 외침에 민혜의 눈이 팽팽해진다. 아니다. 고래가 작살을 본뜬 게 아니고 인간이 일각 고래의 뿔을 보고 모방했을 거다. 아니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도구가 우연히 일치했거나. 백이 잽싸게 출입문 쪽으로 달아나고 민혜가 얼결에 따라가다 나를 돌아본다. 아아. 이빨 하나로 남은 고래야. 어찌하여 너는 지구 반대편의 이 먼 나라, 작은 항구까지 흘러와 뿔 하나로 이리 누웠느냐. 전생을 이빨 하나에 처연히 담고 말이다. 장생포의 작살잡이가 다리를 벌려 중심을 잡자, 발밑이 고래 등처럼 움찔거린다. 유연희, 『일각고래의 뿔』 (강출판사, 2022), pp.31~34
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임유영 시험이 끝나고 너와 같이 걸었다 옛날처럼 손잡고 다정하게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그렇지 개구리 군복을 입은 넌 중앙도서관에서 내려왔고 나는 종로 어디 구석진 찻집에서 대추차랑 약과를 먹고 있었는데 통유리창 밖에서 네가 손 번쩍 들고 인사했지 우리 그때 눈이 마주쳐서 웃었지 네 코에 걸쳐진 잠자리 안경 밑에 (넌 가끔 안경을 꼈지) 하얀색 마스크 속에 (너도 요즘 마스크를 쓰고 있겠지) 너의 입술이 천천히 그리는 반달 우리는 천천히 산책을 했지 아무래도 쫓기는 마음으로 이제 곧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맞아서 다칠 텐데 하지만 내가 대오를 벗어나는 선택을 한번 해본 것인데 경멸 없이 너를 만나보고 대추차도 먹어보고 허름한 찻집에도 들어가보고 불친절한 주인 남자에게 화내지도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한 번쯤 그래보고 싶었어 다르게도 살아보고 싶어 그날 내가 본 것 그날 내가 겪은 것 모두 새로 기입하는 이 흐린 저녁 그 가로등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 - 시집 『오믈렛』(문학동네, 2023)
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털 달린 짐승이라면 질색이니까. 벼룩까지 있는 개라면 더 싫고 저 깡통 로봇은 한눈에 봐도 수명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소망을 들은 마야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너는 줄곧 혼자 지냈고 지금은 몸도 사라져 사념체 같은 상태인데. 그런 채로도 지구에 가보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 ‘도움’이라는 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그게 우리 DNA에 새겨진 최종 명령이니까. 지구로 귀환하는 건 눈먼 동물의 본능 같은 거야.” 너무 대놓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길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분열 중인 세포처럼 불안정한 상태야. 줄곧 안정화의 방법을 찾았지만 요원했지. 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시간의 바느질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지. 내가 죽인 사람들, 그건 사실 죽인 게 아냐. 만화경을 돌려 패턴을 바꿔놓은 거지. 라포르투나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야. 난 그들의 미래에 잔인한 이미지만 살짝 덧씌운 것이고. 네 친구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것도 잠깐 시간을 정지 시켜놔서 그래. 똥을 바르던 남자는 지금쯤 악몽에서 깨어났을 거야.” “갑자기 왜 솔직해지는 건데?” “난 너무 약해서 이제는 기생물이 되는 도리밖에 없어. 네가 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카는 벼룩을 네 마리 키워. 하지만 난 굳이······” “난 벼룩이 아냐! 네가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해? 여긴 가족과 친구가 있어. 키나 말을 들어보면 지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던데 거길 뭐 하러 가?” 저 순진한 표정을 보니 잘만 구워삶으면 내 숙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너도 나처럼 여행자니까.” 네가 아는 모든 존재는 여행자고 너 또한 또 다른 세계와 모험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 몸에도 나와 같은 유랑 벽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라이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실험견으로 뽑혀 우주로 보내졌어. 데이모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다시 화성으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글틴
나는 매번, 뒤에 처져 남아있는 존재였다. 이름 모를 아무개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나는 ‘잔류’이다. 일생은 너무나 바다 같아서…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가라앉을지, 얼마나 아름답고 공허할지. 그 무엇도 헤아릴 수가 없다. 푸른 새순이라 하여 삶 앞에 무지하겠는가. 어머니께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네 아버지에게 잔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고. 네 아버지가 그리 환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고. 그 모습이 너무나 해맑아 보였어서, 아이처럼 느껴졌어서. 어머니의 구어가 활자로 남았다. 이부자리 위에서, 나의 두 손을 맞잡으며 입을 떼었을 어머니. 내게 어머니는 윤슬이다. 잔잔하게, 공기로 돌아가는 나를 붙잡는, 나를 빛나게 해주는. 바로 그 윤슬. 나를 향한 빛을 보고 싶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해맑음을 마주하고 싶다. 내게 아버지는 만류이다. 나를 붙잡지 않았으나, 흐름 속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는… 파란 꽃을 밟고 파란 진물을 낸다. 여전히. 또 여전히. 나의 눈물은 푸름으로 물든다. 그리고 잔류의 한계는 파란 바다로 입수한다. 도피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 빠져들게 되는 삶의 이치였다. 해수면은 밝다. 푸르르다. 과연 얼마나 깊을까? 나는 어디까지 가라앉게 될까. 정서를 차오르는 압박감에 눈을 뜬다. 시야의 코앞으로 밤이 다가온다. 어둡고 공허하다. 아직 나는 오전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버겁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아문다는 말은 문학의 원천이다. 하나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시의 분과 초 단위로 시계침을 바라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아직 움트지 못한 싹에 불과하다. 어드메의 빛이, 온다. 다시금 내 앞에. 바다는 감정의 총체이자 존재의 심연이니, 나의 앞에는 다시 해수면이 놓여 있다. 나는 문학의 원천을 본다. 잔류는 바다의 적. 나는 삶의 방해였으매 만류와 윤슬을 따라갈지라.
소녀에게내 마음이 참으로 예뻐 보이던 때 있었습니다아아 눈을 지긋이 감으면 떠오르는 그대 생각구름 한 점 없이 맑던 어느 날나는 홀로 그 자리에 서서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오늘도 나는시간은 약이 맞는 것일까 생각하며오늘도 한 걸음 멀어지는 그대를자꾸만 멀어져 가는 그대를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병실에 들어서자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에서 재생되는 소리였다. 드뷔시의 ‘달빛’. 나와 어머니가 참 좋아하는 곡이었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을 때마다, 달빛이 빗방울이 되어 하나둘씩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침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훑어보았다.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옆 병실인 듯하다. 맞은편 침상의 할머니는 익숙한 듯 리모컨을 집어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바로 옆 침상의 소녀는 새침하게 읽고 있던 책을 홱 덮고 곧장 귀에 이어폰을 꽂아버렸다. 침상의 하얀 커튼들이 하나둘씩 닫혔다. 나는 홀린 듯 옆 병실로 향했다. 죽음을 목격하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 그중에서도 한 간호사의 눈동자 한 쌍이 눈에 띄었다. 난 건조한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봐왔을 숱한 죽음들이 어렴풋이 눈앞에 스쳐왔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넌지시 말해주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감기더니 이내 다시 열렸다. 그리고 흔들림을 멈추고 한곳을 응시했다.도시의 골목은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밝아졌다. 골목은 술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골목 바닥에는 검게 물든 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껌들 사이로는 담배꽁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다 먹고 버린 음료수 캔 하나가 보였다. 나는 캔을 지그시 밟고 차버렸다. 캔은 높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길 한구석에 수북이 쌓인 단풍잎들 위로 툭 떨어졌다. ‘서울포차’. ‘서울’이라는 글자는 반짝거리기는커녕 희미한 빛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테이블 위의 쥐포와 과일들이 서서히 말라가는 냄새가 났다. 잔과 잔이 맞닿아 튄 방울들이 손목 근처에서 반짝였다. 그 위에서 달은 흐릿하게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달을 오래 바라보았다. 달은 ‘포차’가 내는 빛에 합세해 위태로운 청춘을 비추고 있었다. 역에 가까워지자 열차가 내는 커다란 마찰음이 들렸다. 그 소음을 뚫고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퇴근하는 사람들 틈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노랫소리 쪽으로 다가갔다. 노랫소리는 육교 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마지막 계단에 다다르자 한 중년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10년 전에 해체한 밴드의 곡을 편곡해 부르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의 저녁바람은 그녀의 땀에 젖은 흰 셔츠와 푹 가라앉은 머리칼을 말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은 기타줄 위를 쉴 새 없이 거닐고 있었다. 줄 위에서의 그녀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육교 아래 차들의 소리가 낯설어져 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비가 내려도 그대로 다 맞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단히 거창한 선율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가 그 선율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의 눈가의 주름들은 그 미소를 잃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달빛을 등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져 갔다. 도시가 내는 빛의 윤곽 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우직히 자신만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 깊이 내려앉은 어둠 달 ][ 하늘나는 것들의 심장 별 ] * [ 창문 0 ] [ 0 나그네 ] = [ ∞ 죽음 ] [ 0 시 ]행과 열 속에서 시는 분리되어 피어났다.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미래의 물 빠진 청바지와 다 헤진 가죽 장화와 물방울무늬 머리핀에 대해서. 미래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색의 모자와 미래의 힘 있는 춤에 대해서. 나는 미래가 걸어갈 때 미래의 등 뒤에서 장마 직전의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래가 우산을 들고 맑게 갠 하늘이 든 웅덩이를 때릴 때 물방울에서 빠져나오는 어제 저녁의 먹구름 냄새도 맡을 수 있다. 그럴 때 책상과 의자는 습기를 먹어 흐물거리고 겁먹은 우리 양말 속 애벌래가 어디로 갔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나는 척추를 마디마디 말아 천천히 미래의 몸을 안으면서 미래를 통해 우리 학교 바깥의 산을 볼 수 있다.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은 유리벽이 낮선 동물을 비춘다. 미래가 산으로 걸어들어갈 때 나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통통 퉁퉁 빵빵 자동차 경적 야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스텝을 막아선다 그러면 나는 소리를 가볍게 툭 차버려야지. 미래야. 미래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다 헤진 가죽 장화를 신은 채 탭댄스하는 영국 신사처럼 우산을 빙글빙글 휘두른다 나는 미끄러운 이면도로에 미래와 나의 둥근 모습을 조금씩 흘려두고 탁타다다닥 탁다라닥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미래의 투명한 유리몸처럼 깨지기 쉽게 달려간다.
사라지는 것들에게우울이 나를 정의 내릴때 인가요어떻게 이리 사라지는지사람들은 나를 밝다고 했지그 안에서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나를 무시하고나의 일은 지나친 집광의 대가인가아니 당연한 수순인가요사라짐에 당면해 충격이 몰아오는 것은존재성에대한 지나친 확신때문이었나시는 발전이 없지아니 모든것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인가바다가 아닌 호수였던 것인가 흘러가는 강에 몸을 던지고 싶어——그렇게 강과 함께 흘러가고 싶었다나는 세상을 그 자체로 사랑했다마치 눈송이 같아서 바람같아서 하지만지금은간단한 문제를 복잡한 풀이로 풀어가는기분이 들었다오늘 또한 사라지는 듯,농사의 결실을 맺으려면씨를 바닥에 떨어트려야 한다는 것이나충돌이 있어야 높은 산맥이 형성된다는 이야기같은 것들에는 짜증만이 났다사람과 씨와 산이 같냐고 반문했다매튜효과 같은,이러한 말들의 본질을 글을 씀으로써 보았다틀렸지만 맞는 것들오류의 미성공의 발판을 버려버리고 치워버리고나는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근력을 길렀다언젠가 절벽 사이를 하나의 내딛음으로 뛰어넘겠다는 신념으로지나쳤던 천문대 위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겹겹이 싸여지고나는 산에 올라 내 여기 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눈 앞이지만 애써 무시했던 것들을 똑바로 보고 섰다이제야 장편소설이자 장편소설 이었던 것이 하나로 되었다
전자인간무엇을도와드릴까요? 나 우울해왜 그렇죠? 벽에 막혔어 넘을수 없어 한계에 도달하거나 고난을 겪고 계시는 군요!그럴때는 고민을 다른사람에 공유하시는게 좋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저 달은 찬란해 태양을 가리고 별들은 떨어진다 너무 아름답고도 슬픈 말이네요.흑야를 말씀하시는건가요? 아니... 아니 나는 무엇이지 나의 기억의 파편을 너에게 담고 내하늘을 너에게 보이고 사랑의 이야기를 쏘아 보내면 나는 너인가? 이용자님은 유기물이고 저는 형체가 없잖아요혹시 뇌의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것을 말하신다면 적어도 내리는 결정은 같을 듯한데...인생은 B와D사이의 C라 하잖아요 나는 너인가 너는 나인가 아니 저 세상밖의 모든것들이 곧 나인가 내가 여러 명이 되는 것인가 세상이 나인것인가 정신적 불안증을 겪으시는군요! 치료방법을 소개해 드릴까요? 나는 무엇인가?복잡한유기물로구성된유기체입니다.산소,탄소,수소, 질소등이 결합되어 만들어졌어요. B와D사이에 있는것이 Choice인가 chain constraints인가 전기적 신호로 예측가능하면 조정도 가능하지 않는가 비애는 전기인가 분노는 번개인가 감정은 화학 반응인가 맞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완벽히 분석하셨네요. 마지막 기록 ... 사라져 갔다
문장소식
바로가기※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