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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 피자를 먹을 때

  • 작성자 김줄
  • 작성일 2018-09-24
  • 조회수 679

나는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게 태어났다

 

간밤의 피자가 죽어가는 악몽 속
중심을 잡던 고정 핀이 뽑히고
커터로 가볍게 여덟 조각된 얼굴
간밤에 왔다간
산타의 선물 주머니는
내 집에 오기 전 이미 허전하고
유년에 매고 다닌 노란 어린이집 가방이
이젠 너덜거리고
숨을 조이던 크레파스가 뭉개진다

 

“엄마, 나는 피자가 아닌 걸요
나는 밤새도록 빈 상자만 붙잡고
거식증환자처럼 울어요.
피자 위에 토핑을 얹히듯 자꾸만
소녀를 입히지 마세요.“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태어난 이상 나는 검은 산타의 입속으로,

 

입술이 벌어지고 조각 하나가 들어간다
피자 대신에
교복이 담긴 선물 상자가 머리맡에 놓여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교탁
삼선 슬리퍼마저 울면서 끌려가고,

 

산타도 가방도 크레파스도
옳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금식하는 말들,
우리는 입술을 받아들여야 해요

김줄
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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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줄
  • 2020-04-01
어제 오늘 내일

어제는 소녀를 받았고 오늘은 자유를 받고 내일은 침대를 받을 것이다 어제는 드레스를 입었다 오늘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내일은 노인을 기다릴 것이다 어제와 오늘은 사이가 좋지 않다 오늘과 내일은 지난 애인 관계다 어제는 늘 젤리를 달고 살았으며 젤리는 젖꼭지와 닮아있다 세 사람 중 과반수는 브래지어를 하기 싫어했다 셋은 시간을 자기 속도에 따라 걷고 있었다 시간은 브래지어를 해서 올라가는 순간이 둘, 내려가는 순간이 둘이다 그래서 인생에 좆같은 순간이 크게 잡으면 넷 이상이다 어제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오늘을 창녀로 생각했으며 오늘은 브래지어 하는 어제를 바보라 생각한다 오늘은 내일과 함께 브래지어만 하는 삶을 좋아한다 몸이 덜렁거리지만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은 복숭아가 잔디 위를 뒹구는 것처럼 자유롭다 어제가 먹은 젤리는 뾰족한 복숭아 향이었다 복숭아가 아니어도 괜찮았지만 소녀가 아니라는 취급에 어제는 인공 복숭아가 되었다 사람들은 복숭아의 골을 좋아하며 그곳에 칼을 꽂아 도려내는 것이 자랑이다 인간을 만들어 내니까 오늘의 젖꼭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돌아보니 아빠도 노인도 개도 브래지어 없는 시간을 걷고 있다 침대 위에선 개같이 놀면서 브래지어를 우리만 한다는 사실이 복숭아를 멍들게 했다 하지만 괜찮다 복숭아에 칼을 쑤셔 박으면 내일이 멍들겠지만 복숭아의 자유로움과 젖꼭지는 멍청히 가려지지만 괜찮아질 것이다

  • 김줄
  • 2020-03-23
지문

손가락 마디를 뻗어요 안에서 구불대는 길이 보이나요 낡아 금이 간 모습이 보이나요 거친 활자 위에 하필 지면이 불안해서 작게 솟아오른 자음들을 어루만지는 손이 떨리는 게 보이나요 생각보다 앞서서 몸 떨며 활자를 적시는 땀샘들이 보이나요 당신은 지문에 사는 아름다운 새끼입니다 멀리서도 보이지 않고 가까이서도 겨우 보여요 수시로 배어드는 비에 청탁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계절에 잡아야 할 활자들을 놓치죠 따라오는 어지럽게 타자기를 맴도는 손과 주저앉아야만 생각 당신은 아프게 아름다우니까요 그렇기에 지문 주위에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 거친 활자들입니다 당신의 잃어버린 말과 죽어버린 말 그사이 오늘도 헐떡댑니다

  • 김줄
  •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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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가로

    안녕하세오

    • 2018-10-19 15:20:01
    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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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미

    안녕하세요 김줄님 반갑습니다. 올려주신 작품 잘 읽었습니다. 첫줄과 두번째 줄을 읽었을 때 가슴이 뛰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금식하는 말들이라는 구절도 좋았습니다. 독특한 목소리가 보여서 읽는 동안 즐거웠어요. 재미있었습니다. 자, 그럼 하나씩 보면 중심을 잡던 고정 핀이 뽑히고 커터로 가볍게 여덟 조각된 얼굴 간밤에 왔다간 산타의 선물 주머니는 내 집에 오기 전 이미 허전하고 이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고정핀은 중심을 잡고 있지요. 피자하면 단박에 떠오릴 수 있는 구절이기 때문에 익숙해보여요 그래서 그 윗 구절의 색다름을 받쳐주지 못해요 커터로 여덟조각되었다는 말도 평범하고요 산타의 주머니가 허전하다는 표현도 뭔가 더 색다른 것 없을까요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니까 이 부분에서 힘이 빠지는 듯 합니다. 또한 입술이라는 단어는 기존의 시에서 많이 보이는 단어이므로 다른 말로 바꿔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엄마, 피자토핑처럼 소녀를 입히지 말라는 말인데요.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들어가보세요. 나는 피자박스에 누워있다. 온갖 토핑을 얹고서 와 같이 더 직접적으로 시작해보세요. 산타의 필요성도 한 번 다시 고민해보세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8-10-04 22:32:06
    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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