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사랑 없이 살 수 없어
- 작성자 카임
- 작성일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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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은 군대 가느라 휴학 때렸고 미국 국적 달고 있는 박윤오는 그런 동기들과의 의리에 맞서 입대를 하려 했지만… 빡빡이 머리로 나타난 용철이를 만난 뒤로 마음 접었단 얘기다. 불필요한 인간관계 지양하는 윤오는 동기 세 명과 동아리 멤버 네 명 외에 친구가 없었고 아싸 캠퍼스 생활 같은 건 질색이라 일단은 휴학만 때린 상태. 새벽까지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세 개 무한 반복으로 조지게 돌리던 윤오는 동틀 때쯤 잠들어서 오후 두 시나 되고 좀비 같은 소릴 내며 깼다.
윤오 형 오늘 합주 있으니까 두 시까지 와 늦으면 니 노란 머리털 다 뽑아버림. 김민성이 보낸 문자를 천천히 곱씹으며 시간을 확인한 윤오는 좀 좆됐다고 생각하며 구석에 처박아둔 기타를 등에 멨다. 부스스한 머리칼은 탈색 여섯 번 해서 빗든 안 빗든 개털이었고 붕 뜬 뒷머리만 대충 물 묻혀 수습하고 끝. 휴학한 사람 굳이 학교에 불러내는 심보는 머임. 김민성이 말은 그 모양새로 해도 가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두 번 해서 건네주면 머리털 뽑는 건 금방 까먹을 거였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보드 타고 카라의 프리티 걸 열창하며 정류장으로 향하던 윤오는 급하게 노선을 틀었다. 멀리서 보이는 사람 존나 꽉꽉 여백 없이 들어찬 정류장의 꼴이 윤오의 발걸음을 막았기 때문이다. 숨이 막히기 시작하고 내리쬐는 태양은 윤오의 작은 눈 더 작게 만드는 중. 급하게 방향 돌려 근처에 보이는 지에스 편의점으로 보드를 몰았다. 수분 보충이 필요한 날씨. 퍼킹 써머…. 두 시 삼십 분. 파워에이드만 사 먹고 버스 타도 세 시 전까지는 충분히 도착 가능했다. 약속 시각 두 시라는 건 넉넉잡아 네 시까지 오면 된단 소리 아닌가.
“이거 원쁠원인데요.”
“필요 없어요.”
“엥 왜요. 공짠데.”
“두 개는 먹기 싫은데요.”
“옙….”
딱 봐도 초짜 티 나는 알바생은 윤오의 말에 금방 꼬릴 내렸다. 쫌 시무룩해진 것 같기도. 그러나 도무지 윤오의 머리론 자기가 원쁠원 안 챙긴 거 그 알바생과 뭔 관련인지 연결지을 수 없어서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몇 미터 떨어진 정류장은 여전히 사람들 꽉꽉 들어차 있었고 윤오는 손에 들린 생명수(파워에이드) 더 꽉 쥐며 위풍당당하게 인파 속으로 들어가려 보드 위에 올라탄다. 마침 윤오가 타야 할 칠 번 버스가 멀리서 다가오고 윤오는 좀 더 빠르게 보드를 몰아보는데 버스가 개빠르게 달려오는 건 차마 윤오의 슈퍼울트라 보드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에휴 씨발 그래 가라 안 붙잡어. 찌질한 구애인 발언을 버스 뒤꽁무니에다 대고 뱉던 윤오는 순간 제 몸의 모든 근육과 신경과 뇌와 생각과 그 모든 것들이 멈추는 기분을 느낀다.
그 많던 인파가 모조리 흩어진다. 버스 기사는 급하게 버스 문 열어 재끼고 공포 영화 스무 편 하루에 몰아본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윤오의 반대편으로 달린다. 창에 비친 승객들은 문을 열었음에도 함부로 내리지 못하고 몇 명은 미친 것처럼 창문을 두드려댄다. 쿵쿵쿵. 삼십 분 같던 삼십 초 흐르고 드디어 버스서 내린 첫 승객은 말이지. 피범벅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다리를 절뚝이고 당장 입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은 소릴 내며 천천히 겁에 질린 사람들을 향한다. 자빠져있는 아길 향해 다가가는 것 같은데 도와줄 방법이 없다. 나 이 장면 어제 넷플릭스에서 본 것 같은데. 그게 장르가 뭐였냐면. 스릴러였는데. 그 미친 생명체는 결국 겁에 질린 아길 물어버린다. 찢어버릴 기세로 무자비하게. 한참 소리 지르며 울다 잠잠해진 아기는 아마 죽은 것 같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는데도 윤오에게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 슈퍼울트라 보드 타고 저 앨 구할 수 있었을지도.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모습을 풀로 감상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릴 지르며 도망친다. 죽었던 아기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감상하는데 저건, 그래, 확실했다.
“이 후진 동네에서 영화 촬영을 할 리는 없는데 씨발.”
좀비. 부산행 킹덤 새벽의 저주 월드워제트. 거기 나오는 좀비. 남들 다 도망칠 동안 윤오는 가만히 서서 아이의 엄마가 좀비가 된 아이에게 무자비하게 물어뜯기는 장면을 관람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몸이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뇌는 다시 정상 작동하는데 근육만 상황 파악 못 하고 rest 팻말 걸었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개체 수와 여기저기서 들리는 처절한 외침과 멀찍이 떨어져 상황 촬영 중인 기자 꿈나무와…. 젤 처음 물어뜯겼던 아기 좀비가 윤오를 향해 달려오는 게 보인다. 미친 존나 빠르네. 마인크래프트도 좆밥 좀비들보다 아기 좀비가 더 무섭다. 마크가 현실 패치 게임이었다는 걸 윤오는 느끼면서 여전히 rest 팻말 건 근육 억지로 움직여 바로 눈앞에 위치한 지에스 편의점으로 존나 뛴다. 편의점 문 앞에 도착하고 문 열려는데 바로 뒤따라온 아기 좀비가 보여서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슈퍼울트라 보드로 대가리를 내리친다. 쏘리 베이비 좀비…. 그치만 니가 먼저 날 죽일랬잖아.
급하게 편의점 문 열어 재낀 윤오는 빠르게 뛰는 심장 부여잡고 편의점 카운터에 엎어졌다. 살점 튄 역겨운 보드는 편의점 문 앞에 버리고 왔고 아까 샀던 파워에이드는 행방불명. 제 가슴께 부여잡고 한참을 숨 몰아쉬는 원쁠원 거절 손님을 내려다보던 알바생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머하세요.
“맘 바뀌셔서 원쁠원 다시 받아가시려구 오셨나요.”
“아니 저기요. 밖에 소리 못 들었어요?”
“예? 뭔 소리요?”
알바생이 아무것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윤오는 그런 알바생 얼굴 보며 어이없는 표정 잠깐 짓다가 손가락으로 문밖을 가리킨다. 저기 뭐가 있는데요. 태평한 발걸음으로 투명한 유리문을 향해 걸어가는 알바생 뒤통수 바라보다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 첨부된 에어팟 프로 보고는 납득했다.
“으악 미친 저게 뭐야.”
“아니 목소리 크기 좀 제발!”
문 활짝 열고 소리치는 알바생의 모습은 좀비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았다. 아마 쟤도 모든 근육과 신경과 뇌와 생각과 그 모든 것들이 멈추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다. 윤오는 좀비 발생 현장 몇 분 일찍 본 좀비 아포칼립스 선배로서 기꺼이 싸워주기로 결심했다. 편의점 향해 다가오는 좀비 떼들이 하나 둘 셋 넷…. 개 많다. 동아리 멤버 수보다 많다. 진짜 좆됐다고 생각하며 편의점서 판매하는 일회용 우산 뽑아 들고 걔네들 대가리 하나씩 터뜨린다.
“저기요 문 잠글만한 거 없어요?”
“어어 잠만요.”
눈앞에서 터지는 대가리가 하나 둘 셋 넷…. 토하기 일보 직전인데 토하다 자기 대가리 먼저 터질 것 같아서 윤오는 꾹 참고 우산을 휘둘렀다. 우산 타고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이 역겨웠다.
“가져왔어요. 잠그면 되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옙”
알바생이 급하게 편의점 문을 잠근다. 쿵쿵쿵. 죽이지 못한 좀비가 편의점 문 부술 기세로 몸을 부딪쳐오는데 힘없는 통유리 출입문은 금방이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 꼴 지켜보던 윤오가 못 미더운 눈빛으로 알바생을 바라보자 걘 윤오의 눈치를 보다 입을 연다.
“그, 철문도 내릴까여.”
“안에도 철문 있어요?”
“넹. 점장님이 바깥이랑 안이랑 이중으로 설치해 가지고.”
“제발 그런 건 먼저 해주실래요.”
“죄삼다….”
쟤랑 한동안 지독하게 얽힐 것 같단 당연한 생각은 윤오가 구토 여덟 번하고 멘탈 이백 서른다섯 번쯤 갈린 뒤에야 들었다. 윤오의 카톡에 쌓이는 메시지는 삼백 플러스를 돌파했다. 첨엔 박윤오 휴학 압수 아직 처자냐로 시작된 밴드 단톡방 메시지였는데 좀비 첫 출현 이후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건 곧 윤오 형 좀비 됐어? 로 흘렀다. 운도 지지리 없다. 첫 좀비 생성이 자기 눈앞이라곤 어젯밤 킹덤 정주행하면서도 몰랐다. 윤오는 나가리 된 정신 겨우 붙들고 걱정스런 표정 짓는 알바생의 팔뚝을 잡았다.
“헉 왜요. 또 토할 것 같으세요?”
“아니아니…. 너 이름 뭐야.”
“갑자기요?”
아무리 띨치같은 놈처럼 보여도 이 재앙 속에서 함께 살아낼 유일한 인간임은 확실했다. 윤오는 몸 겨우 일으켜 걔 얼굴을 제 눈에 담았고 곧 걘 입을 열었다. 저어 송우림이에요 스무 살. 그쪽은요?
“박윤오. 스물두 살.”
“형이시네요.”
“응.”
“말 편하게 하세요.”
“이미 그러고 있는데.”
우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형이라 불러두 되나요. 윤오는 허락했다. 그러자 우림은 계속해서 윤오의 이름을 불렀다. 형, 형, 윤오 형. 자긴 형이 없어봐서 형이란 말 꼭 해보고 싶었다고 걘 말했다. 뇌 구조가 단순하다.
단언컨대 편의점은 최고의 피난처였다. 없는 게 없었다. 배고프면 진열대 뒤져서 컵라면 도시락 삼각김밥 까먹었고 바깥소식 궁금하면 편의점 와이파이 연결해서 유튜브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찾으면 됐다. 우림은 윤오에게 친구들이 연락되지 않는다며 우는 소리했지만 윤오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평소처럼 나대고 있던 터라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제까지도 민성은 윤오에게 연락해선 말했다. 형 방금 해우가 드럼 스틱으로 좀비 눈깔 찔렀음 개쩔어.
그러던 중 꽤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날은 좀비 출현 정확히 일주인 된 날이었다. 좀비 바이러스 미국까지 퍼졌다 어쩌구저쩌구 기사 읽고 있는데 우림이 미친 짓을 했다. 철문 열고 유리창 막고 있던 자물쇠를 풀어낸 거다. 야 미쳤어? 너 뭐해? 윤오가 말렸는데도 걘 암말 없이 그 짓만 했다.
“뭐해?”
“점장님이,”
“점장이 뭐.”
“오신다고…. 문 열어놓으래서.”
윤오는 할 말이 없다. 그걸 왜 나한테 말도 안 하냔 당연한 소리도 안 했다. 우림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맨날 바보처럼 웃는 표정만 봐와서 울먹이는 얼굴은 초면이었다. 걘 잠금장치 하나둘 풀더니 창고에서 커다란 박스 챙겨와 이것저것 집어넣었다.
“또 뭐해.”
“형도 짐 얼른 싸세요.”
“왜?”
“점장님이,”
“또 점장 씨발.”
“자기 편의점이니까 넌 딴 데 가라고….”
윤오는 우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서 처박아둔 기타 가방 다시 들쳐멨다. 이젠 정말 울고 있는 우림은 여전히 커다란 박스에 식량 따위를 챙겨 넣고 있었는데 윤오는 그거 보더니 박스 그냥 엎어버렸다. 우림이 눈 크게 뜨고 윤오를 바라본다.
“이딴 거 말고 무기 챙겨.”
“형, 그러다 좀비한테 물려 죽기 전에 아사해요. 대피소가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집으로 갈 거야. 그니까 거기까지 갈 동안 사람이든 좀비든 대가리 터뜨릴 수 있는 몽둥이나 챙기라고.”
점장 개미친놈 마주치면 대가리 후려치고 좀빈 줄 알았어요 죄송함다 따위의 성의 없는 사과 할랬는데 눈치는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오던 길에 좀비한테 물려서 뒤졌길 바랍니다 윤오가 속으로 저주하는 동안에도 우림은 심란한 표정이었다.
편의점에서 윤오의 집까진 별로 안 멀었고 이미 한바탕 지나갔는지 가는 길목에 좀비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윤오는 오른쪽 손에 편의점에서 쌔빈 우산 들고 긴장 늦추지 않으며 걸었다. 좀비들은 소리에 민감해서 우림과 윤오는 눈빛으로만 대화해야 했다. 좀비들 보통 햇빛 보면 알아서 뒈지지 않나 첨 봤던 그 좀비는 대낮에 활동 잘 하던데. 윤오는 학창시절에 머리 좀 굴렸던 짬바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좀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윤오의 아파트 출입문까지 오는 동안 점장도 좀비도 안 마주쳤다. 행복 아파트. 페인트 다 벗겨진 글자가 윤오와 우림을 반기고 둘은 잠깐 긴장을 풀었다. 빠르면 이 분 좀 느려도 오 분 뒤에는 윤오의 아늑하지만 낡아빠진 집에 들어가 있을 거였다. 둘은 묵언의 파이팅을 나누고 백일 동 출입문 향해 돌진했으나,
“여기 다 모여있었나 본데요 형.”
“글게.”
좀비 떼가 허여멀건한 눈깔로 윤오와 우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유리문 비밀번호 쳐야 들어갈 수 있는데 저 새끼들 입주민이었나. 윤오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것들 바라보다 이상한 소릴 내며 문을 부수려 드는 좀비들 보고는 자비롭게 비밀번호 눌러서 문 열어줬다. 자동 센서는 좀비를 감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림아.”
“네넵.”
“너 야구부였다며.”
“옙.”
“야구공 후려치듯이 후려치는 거야.”
언젠가 들었던 야구부였단 말 기억해낸 윤오는 우림의 어깰 두어 번 두드려줬다. 넘 심하게 떠는 것 같길래. 우림은 고갤 끄덕이며 윤오가 쥐여준 우산을 야구 빠따 마냥 쥐었고 윤오는 일주일 전 좀비 대가리 모조리 터뜨렸던 짬밥으로. 돌진.
윤오와 우림이 좀비를 향해 달려들자 그것들도 둘을 향해 달려든다. 기껏해야 열 마리 정도. 그정돈 둘이서 해치울 수 있다. 윤오가 무자비하게 좀비의 대가리를 터뜨리고 우림은 그것들의 머리통 후려쳐서 날려버린다. 홈런. 한쪽에선 푹팍푹팍 시체 쑤시는 역겨운 소리 들리는데 한쪽에선 야구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나니까 윤오는 쫌 당황스럽다. 혹시 너 체대생이냐? 윤오가 물으니 우림이 답한다. 저 미국에서 캐스팅 왔었어요 거절했지만. 마지막 좀비의 대가리까지 홈런으로 마무리한 우림이 웃으며 말한다. 근데 저 유교과예요.
윤오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열어 식량 확인했다. 그 사이 우림은 화장실 들어가 샤워하고. 길어도 이주 겨우 버틸 식량만 남아있었지만 괜찮았다. 좀비 사태가 사그라들 때까지 영영 여기서 버틸 생각도 아니었고. 곧 대피소를 찾아 이동할 것이다. 윤오는 휴대폰 켜서 근처 대피소를 찾았다. 딱 하나 있었는데 윤오의 집에서 멀진 않았다.
샤워 끝내고 나온 우림을 먼저 재우고 윤오까지 샤워 마친 뒤 하나밖에 없는 싱글 침대에 몸 쑤셔 넣었다. 지쳤는지 금방 잠든 우림의 얼굴을 천천히 훑으며 윤오는 제 의지와 관계없이 멋대로 감상평을 내뱉었다. 귀엽다. 이렇게 자세히 본 건 첨인데 생긴 것도 꽤 훈훈하고. 무엇보다 말랑한 볼살이랑 하얀 피부랑 아직 벗지 못한 애티가 너무 귀여웠다. 유교과라더니 잘 어울리네. 제대로 말리지 못해 축축한 머릴 손으로 쓸어주고 윤오도 눈 감았다. 일어나면 바로 대피소로 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형 일어나봐요.”
“…….”
“형. 윤오 형.”
우림의 목소리에 윤오는 무거운 눈꺼풀 겨우 끌어올렸다. 아직 방 안은 어두웠고 낮부터 잤으니까 이제 겨우 밤이 된 것 같았다. 왜 그래 더 자.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 기세의 목소리에 우림은 아예 윤오의 얇은 상체를 힘으로 들어 올렸다. 키는 더 작은 게 힘은 훨씬 셌다.
“안 들려요?”
“머가.”
“쿵쿵대는 소리요.”
우림의 말에 귀 기울이자 그제야 다른 소음들이 윤오의 귀에 박혔다. 밤에도 기타 연습하느라 방음벽 설치해둬서 웬만한 소린 잘 안 들렸는데도 미세하게 들렸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다. 이 정도로 잘 들린다면 무지 세게 치고 있는 모양. 윤오는 침대서 일어나 잠도 제대로 안 깬 채 우산부터 찾아 들었다. 다시 대가리 존나 쑤셔.
윤오가 우산 들고 위풍당당하게 거실로 발걸음 옮기고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배드민턴 채 든 우림이 윤오의 뒤꽁무니 따랐다. 거실에 발 딛자마자 보인 풍경은 굳이 십 층까지 기어 올라와 창문 부술 기세로 몸 박아대는 좀비 무리. 하여간 좀비 새끼들 존나 인싸다. 하나만 다니는 법이 없다. 무리 형성해서 단체로 창문 두드리는데 나약한 창문은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귀찮다는 표정 지으며 윤오가 창문 벌컥 여는데 반동에 의해 뒤로 자빠질 줄 알았던 좀비들은 오히려 앞으로 떨어져서 윤오의 아늑한 집에 안착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우산을 놓쳤다. 창문을 다시 닫을 생각도 못하고 윤오가 그대로 얼었다. 무기 없인 반칙이지. 그러나 좀비는 그런 것까지 이해하기엔 지능 딸리는 놈들이다. 우산 떨어지는 소리에 반응한 좀비들 모두 윤오에게 달려들고 창문을 통해 줄지어 아파트 벽 기어오르던 좀비들 윤오의 집으로 하나둘 떨어진다. 우림은 힘껏 윤오의 이름을 부른다. 윤오 형! 그러나 윤오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산으로 걔네 대가리 터뜨릴 수도 없고 주먹으로 걔네 면상 후려칠 수도 없고. 좀비 하나가 윤오를 향해 입을 벌리면서 다가오는데 순간 윤오의 머릿속엔 차라리 창문 밖으로 몸 던져 자살하고픈 욕구가 솟구친다. 내가 좀비가 돼서 송우림을 물어버린다면. 박윤오가 창밖으로 몸 던지기 삼 초 전. 좀비 하나가 윤오의 목덜미 물어버리기도 삼 초 전. 그리고 송우림이 좀비 아가리에 배드민턴 채 쑤셔 박기 일 초 전. 나가리 된 좀비 대갈통을 마구 짓밟으며 우림은 멍한 표정의 윤오에게 떨어진 우산을 쥐여준다.
“정신 차리세요.”
“어어….”
우림과 윤오는 힘껏 좀비를 물리친다. 완전 영화처럼. 한 놈은 우산으로 좀비 쑤시고 한 놈은 종목 바꿔 배드민턴 채로 좀비 아가리 쑤시기. 괴상한 소릴 내는 좀비 주둥이를 뭉개버려 쌉치게 만든다. 밤이라 작정하고 활동하는 건지 좀비들이 자꾸만 윤오의 창문 통해 집으로 들어와서 할 수 없이 창문을 닫았다. 집 안에 남은 좀비 마저 처리하고 윤오는 베란다 문 닫아서 걸어 잠갔다.
“저것들 어카죠.”
“구글링 중. 쫌만 기다리셈.”
“옙.”
멘탈 다시 회복한 윤오는 열심히 손 놀려 검색한다. 저거 좀 지나면 시체 썩는 냄새 쩔 텐데. 우림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고 윤오는 구글 네이버 다음 가리지 않고 열심히 검색 중. 내가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서치킹 콘테스트 나가서 일 등 먹었어. 윤오의 말에 우림은 헐 미국인이세요? 물었다.
좀비 퇴치. 좀비 도망. 좀비가 도망가게 하는 법. 좀비가 싫어하는 거. 좀비 천적… 잠만 천적이 뭐임. 윤오는 이것저것 검색하고 연관검색어 모조리 눌러가며 마침내 간단한 방법 하날 알아냈다. 우림아 들어봐. 옙. 좀비는 빛을 싫어하잖아. 그쵸. 그럼 우리가 뭘 해야겠어. 빛을 만들어요. 그치 처잔다고 불 끄지 말고 형광등을 켜놔야겠지. 윤오는 스위치 눌러서 거실 불 켰고 순식간에 밝아진 내부에 창문에 매달려있던 좀비들 뒤로 나자빠졌는데 더불어 우림도 눈 끔뻑이며 적응하질 못했다. 니가 좀비냐. 그 말에 우림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웃었다.
형광등 켜는 것도 완벽한 좀비 퇴치법이 아니라 둘은 계속 행복 아파트 백일 동 천일 호에 머무를 수 없었다. 아니 무슨 하루 만에 다시 피신 가냐. 윤오와 우림은 잠도 다 깼겠다 냉장고랑 찬장 뒤져서 햇반 돌리고 계란 부치고 스팸 구워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곧 다시 해가 뜰 거야 해 떠도 활동하긴 하는 것 같은데 밤보단 덜 활동하는 것 같으니까 쫌만 버텼다가 날 밝으면 대피소로 도망치자. 윤오의 말에 우림이 고갤 끄덕였다.
밥 다 먹고 윤오는 가방을 쌌다. 우림한테도 초딩 때 썼던 낡아빠진 가방 하나 건네줬다. 구급상자 비상식량 각종 무기가 될 것들 쫌쫌따리 챙기니까 여행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이거 다 끝나면 여행갈까 우림아. 우림은 좋다고 했다.
날 밝기까지 몇 시간 남아서 수칙 같은 걸 정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되니까 좀비 세상에 발 디뎌도 규칙만 정하면 살 수 있는 거였다. 윤오는 우림을 맞은편에 앉혀두고 다 아는 말 계속 반복했다. 배신하기 금지 식량 혼자 먹고 튀기 금지 몽둥이로 좀비 대신 상대 대가리 후려치기 금지…. 그런 쓸데없고 당연한 말 반복하는데 우림이 끼어들어 물었다.
“근데요.”
“엉.”
“만약에 둘 중 한 명이 좀비가 되면요?”
그 질문에 윤오는 잠깐 생각했다. 그렇게 심오한 질문을 혼자 생각해낸 우림이가 좀 대견한 것 같기도 하고…. 윤오는 몇 분 고민하다 마침내 우림의 눈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죽여야지. 둘 중 누가 좀비가 됐든 죽이는 거야. 다른 좀비 죽이듯이 대가리 쑤시고 홈런 날려서.
날 밝기 전에 억지로 우림일 재우고 윤오는 창고 뒤져 야구 방망이 하날 찾아냈다. 그래 버렸을 리 없잖아. 미국에서 야구공 몇 번 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었다. 편의점에서 훔쳐온 우산은 이미 다 뒈진 상태라 더 쓰긴 불가능해 보여서 윤오는 눈물 흘리며 이십만 원짜리 기타를 손에 쥐었다. 퍼킹 좀비 새끼들 나중에 청구할 거임. 일회용 너덜너덜 우산보단 사용하기 좋을 것 같았다.
다섯 시쯤 되자 동이 트기 시작했는데 안전빵으로 일곱 시에 출발했다. 자다 깬 얼굴로 야구 방망이를 건네받은 우림은 행복해 보였다. 저는 야구 하는 거 진짜 좋아해요. 웅 그래. 기뻐해서 뿌듯했다. 제가 이걸루 열심히 좀비 대가리 날릴게요. 어엉…. 뒤이어지는 말이 좀 섬뜩했는데 알 바 아녔다.
대피소를 가려면 사거리를 지나야 했다. 거긴 신호등이 자주 고장나 평상시에도 사고가 많았는데 좀비 사태가 되니까 사거리는 진짜 개미친 거리가 됐다. 거기까지 오는 십 분 동안 좀비 고작 세 마리 봤고 윤오는 기타 희생할 필요도 없이 우림의 야구 방망이로 그것들 대가리 모두 쑤셔 박았는데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사거리만 지나면 대피손데 사거리 이름값 하듯 좀비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여길 견뎌내야 대피소까지 닿을 수 있다. 윤오는 연주용으로만 사용하던 기타를 좀비 대가리 후리는 데 사용하기 위해 편한 자세로 그러쥐었다.
하나
둘
셋.
우림아 가자.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우림과 윤오를 이길 수 있는 좀비는 없었다. 야구부 에이스였다던 송우림이 휘두르는 야구 방망이에 대가리 안 날아갈 좀비 없었고 대학교 내에서 미친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박윤오의 기타 휘두르는 솜씨에 나가떨어지지 않을 좀비 없었다. 무식하게 쑤시는 게 아니라 살점 마구 휘젓는 불쾌한 기분은 안 느낄 수 있었는데 다만 윤오의 소중한 슈퍼울트라 기타에 좀비의 역겨운 살점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십만 원 공중분해 쇼 실시간으로 관람하네. 윤오는 착잡한 맘으로 열심히 좀비들 후려쳤다. 나중에 좀비한테 백만 원 청구해서 기타 다섯 개 살 거.
윤오가 기타 열심히 휘두르는 동안 우림도 열심히 방망이 휘둘렀는데 둘 다 간과한 게 있었다. 우림이 유아교육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었다. 걘 태생이 아기 동물 귀여운 거 좋아하는 놈인데 수능 점수 보고 유교과 들어간 케이스. 암튼 결론은 아기들도 좋아했단 거다. 그리고 곧 이 사실은 큰 문제가 된다. 우림은 멀대 같은 좀비 대가리 날리기엔 자신 있었지만 아기 좀비는 다룰 줄 몰랐단 거다. 쟤네를 어케 죽여요. 불쌍하잖아요. 이 문장에선 우림 혼자 간과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앞에 나왔던 마크 현실 패치 설을 기억해야 한다. 어른 좀비보다 아기 좀비가 존나 당장 일 초 전에 개통한 휴대폰 속도보다 더 빠르단 거. 힘은 어른 좀비와 다를 것도 없음서. 우림은 그 사실을 몰랐고 아기 좀비가 우림의 몸뚱어리 향해 개빠르게 뛰어올 동안 걘 아무것도 못 했다.
“야 송우림! 뭐해?”
“애기를 어떻게 죽여요. 넘 어린데.”
“방망이 들어 미친놈아.”
“기껏해야 네 살 같은데 어쩌다가.”
우림이 눈물 글썽이며 아기 좀비의 인생 서사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당장 물어버릴 기세로 달려오는 아기를 우림은 죽일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고. 윤오는 처리하던 좀비들 놔두고 우림을 향해 전력 질주한 후 아기 좀비를 향해 제 이십만 원짜리 기타를 휘두른다.
“송우림 정신 차려.”
눈앞에서 분해된 아기의 형체에 얼빠져있는 우림에게 소리쳤다. 우림은 그제야 다시 맘 다잡고 달려드는 좀비 떼를 향해 방망일 휘둘렀다. 사거리에 몰려든 좀비를 모두 처리하는 데 한 시간 이십육 분 걸렸고 실신 직전에야 서로의 손 잡고 대피소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대피소는 근처 초등학교 체육관이었는데 일 학년부터 육 학년 쓰는 체육관이라 다른 체육관보다 컸다. 좀비의 내장이며 살점이며 뒤집어쓴 윤오와 우림은 조심스레 대피소 문을 열었는데 동네 사람들 다 거기 모였는지 고작 두 사람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어쩐지 오는 길에 사람이 없더라니 다 여기 있던 거다. 문 연 순간 모두의 시선이 기타 든 윤오와 방망이 든 우림으로 향했고 쳐다보는 눈길들이 매서웠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 더 좁아지기 싫겠지. 우림은 이해할 수 있었는데 윤오는 함께 표정 야리며 사람들 노려보고 있었다.
“형 그냥 다른 데 가요.”
“딴 데 어디. 갈 곳 있어?”
“아뇨…. 없긴 한데 그래도. 여기 자리가 없잖아요.”
“좀만 붙으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어?”
순간 윤오와 우림을 째려보던 눈들이 일제히 동그래지더니 누군가 외친다. 좀비다! 윤오가 황급히 몸 돌려 우림의 뒤에 달라붙은 좀비 대가리를 쑤셨지만.
“우림아?”
“…….”
“우림아. 왜 그래. 우림아.”
“윤오 형.”
“왜 장난치지 마.”
“저 그, 물린 것, 같은데.”
그 말 듣고 윤오는 급하게 가방 뒤져 식칼 찾아내 좀비에게 물린 우림의 오른손 잘라버린다. 그 충격으로 걘 소리 하나 못 낸 채 쓰러지고 윤오는 엿 같은 대피소 문 다시 닫은 뒤 우림을 눕혔다. 미안해 우림아 어쩔 수 없었어. 급하게 구급상자 꺼내서 붕대로 잘린 손 둘둘 감아버리고 눈 감고 있는 우림의 얼굴에 마구 키스한다. 우림아. 눈 떠 봐. 사랑해. 응? 일어나. 정신 차려. 죽은 거 아니지. 제발. 걔 가슴팍에 귀를 대니 심장이 뛰고 있어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식칼 들고 이미 뒈진 좀비 대가리 수십 차례 쑤신다. 씨발놈. 미친놈. 개새끼. 누굴 건드려.
우림을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일 층에 바로 보건실 있길래 불 켜고 침대에 우림을 눕혔다. 챙겨온 휴대폰으로 미친 듯이 검색했다. 좀비한테 물렸을 때. 좀비한테 물린 부위 잘라내면 좀비 안 되나요. 좀비한테 물린 부위. 손 잘렸을 때. 우림이 살리는 방법.
꼬박 이틀 지나서 우림은 겨우 눈 떴다. 그 이틀간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학교로 마구 돌진하는 좀비 대가리 쑤신 윤오는 뒤척이는 우림의 몸뚱어릴 가만 내려보다 갈라진 목소리로 아파, 말하는 걔 목소리에 결국 울었다.
“미안해 우림아.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아프지 잠만 진통제 찾아올게. 기다려.”
우림은 눈도 못 뜬 채 앓다 윤오의 목소릴 듣고 그나마 웃었다. 입꼬리 조금 올려서. 웃는지 우는지 헷갈릴 정도로. 윤오가 물과 약을 들고 오는 동안에도 우림은 계속 아프단 말만 반복하다 윤오가 건넨 진통제 삼키곤 좀 잠잠해졌다.
“미안해.”
“…….”
“손 잘라버려서 미안해. 근데 내가 있잖아,”
“네에….”
“너 좀비 됐을 때 내가 너 차마 못 죽일 것 같아서 그랬어. 너 좀비 돼버리면 죽이기로 약속했는데 다른 놈들 대가린 다 뭉개도 너는 살리고 싶어서 그랬어.”
“…형 나 많이 사랑하네.”
우림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워서 윤오는 자꾸 우림의 얼굴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얼굴 보고 눈 맞추고 우림의 입술 움직이는 모양 하나하나 눈에 익히면서.
“저도 형 좀비한테 물렸음 뭐가 됐든 살렸을 거예요.”
“…….”
“만약 좀비 됐어도 밧줄 묶어서 계속 데리고 다녔을 거예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형이랑 어떻게든 함께하면서.”
“우림아 너 말 넘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다. 쫌 쉬어.”
윤오가 우림을 편하게 눕힌다. 그래도 걘 끝까지 말하려는 것처럼 여전히 입 다물지 않고 말한다.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너한테 어떻게 미안하다고 안 해. 나 때문에 손 하나가 없어졌는데. 너 이제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요. 형이 나 살린 건데.”
“아냐.”
“맞는데. 형 아녔음 나 좀비 돼서 생판 남한테 대갈통 처맞고 내장 다 터져서 뒈졌을 텐데.”
우림이 상체 조금 들어 올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윤오는 여전히 눈물 흘리며 우림의 왼손을 한참이나 만져대고 우림은 윤오의 귓가에 대고 말한다.
“저도 형 사랑해요. 같이 손잡고 편의점 탈출하면서 점장님 대가리 깰 생각하던 날부터.”
“우림아.”
“그러니까요 한 번만 키스해주세요.”
우림이 웃으며 윤오에게 부탁한다. 안 울고 해줬음 좋겠는데. 뒤이어지는 말에 윤오는 눈물 닦고 푸석하게 갈라진 우림의 입술에 자기 입술 갖다 붙였다. 트고 갈라진 입술로 피가 배어 날 때까지. 먼저 뗀 건 우림이었고 걘 윤오를 보며 예쁘게 웃었다.
“있잖아요. 저 좀만 더 잘게요, 형.”
“알았어. 꼭 일어나야 해.”
우림이 눈을 감는다. 꼭 일어날 수 있어. 우림이는 일어날 것이다. 윤오한테 하지 못한 말이 너무너무 많아서 꼭 일어날 거다. 일어나서 다시 야구 방망이 쥐고 좀비들 대가리 터뜨릴 것이고 폐허가 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길이길이 기록될 것이다. 끝까지 살아서 같이 여행 가야지 약속했잖아. 우림이 침대에 누워 다시 눈 감기까지의 그 모든 장면을 윤오는 열심히 뇌로 기록해낸다. 말랑한 볼살이랑 하얀 피부랑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우림이. 이 아포칼립스에서도 너만 있으면 끝까지 살 수 있어. 대피소 불 지르고 좀비 대가리 깨뜨리며 점장 새끼 존나 팬 뒤에도 우린 살 수 있어. 너무너무 사랑하는 우림아.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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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임 님. 잘 지내시죠? 이번 소설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시 로맨스가 모든 절망적인 아포칼립스 상황을 압도해버리는 카임 님의 "사랑"이 힘 있게 다가왔네요. 호쾌하고 전개가 빠른 좀비 액션 서사로 읽었고, 역시 카임 님 소설에서 안 나오면 섭섭할 윤오와 우림 사이의 낯간지럽고 귀여운 사랑의 순간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음, 이 소설의 전체적인 서술적 자유로움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소 황당하고 개연성 없는 좀비 서사, 좀비 퇴치의 과정도 납득할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서사를 전개할 때 소설 속의 시간과 전개의 속도를 조금 안배할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재밌어하는 게 느껴져 저 또한 재밌었지만 어떤 독자의 경우 이 서사가 맹목적이고 자의적으로 전개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문체와 캐릭터를 읽는 재미가 상당했고, 읽으며 현실 미소와 웃음의 순간, 그리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칭찬의 의미로)이 많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한가지 조언 드리자면 이 소설 또한 중간부의 참신한 전개에 비해 후반부의 정념이 아쉬웠어요. 우림이 좀비에 물려 죽음을 맞이하고 그에 슬퍼하는 나의 모습은 어쩌면 이 소설에서 사랑의 비극을 만들어주는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다소 클리셰적일 뿐더러 소설 속의 감정이 갑작스레 과잉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음, 굳이 이런 결말로 인물들을 이끌지 않았으면 사랑의 힘으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재해석하는 카임 님의 독특한 시선이 더 살아났을 듯도 하구요. 한번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