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의「보리방귀」
- 작성일 200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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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방귀
정양
보리밥 먹는 여름철에는
방귀 많이 뀌는 게 큰 자랑이다
상학이 방귀는 동네뿐만 아니라
5학년 1반만 아니라 전교생이 다 알아준다
상학이가 방귀 뀌는 걸 보고
담임선생님도 놀란 얼굴을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며 몇 번이나
올림픽 금메달 깜이라고 했다
뭘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 때나
상학이만 보면 방귀 좀 뀌어보라고
무턱대고 졸라대지만 사정 아는 아이들은
상학이 낯빛이 치잣물에 적신 것처럼
노랗게 질릴 때를 기다렸다
어쩌다 한 번씩 은행나무 밑에서
상학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엉덩이를 깐다
한꺼번에 힘을 모아 큰 소리로 터뜨리는
그런 예사 방귀가 아니다
두 손으로 오르락내리락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엉덩이를 뒤로 조금 내밀고 무릎은
엉거주춤 오므리고
불알이 달랑거리거나 말거나
엉덩이와 오금쟁이와 뱃살과 똥구멍으로
골고루 힘을 나누어 자디잘게 움짓거리면
품 넓은 은행나무 그늘 속에는
염소똥 같은 자디잔 방귀총 소리가
번번이 백 방도 넘게 이어지는 것이다
일부러 꽁보리밥 배 터지게 먹고
곁에서 상학이를 흉내내던 복철이는
스무 방도 못 넘기고 철프덕
생똥을 싸버린 적도 있다
은행나무 잎들도 방귀총 소리에 숨을 죽인다
야든일곱 야든야달 야든아홉
방귀총 소리에 맞추어
숨죽여 수를 세는 아이들 목소리가
백 방을 넘기면서 점점 커지다가
방귀총 소리 놓칠까봐 다시 숨을 꺾는다
조용히 좀 하라고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입술께를 두드리면서
상학이 엉덩이 근처에 바짝
귀를 들이미는 아이들도 있다
백아홉, 백열, 백열하나, 백열둘
상학이가 무릎 펴고 허리 펴고 바지춤을 올린다
우와아 신기록이다 백열둘 백열둘 백열둘
아이들 함성에 은행나무 잎들이 화들짝 놀란다
샛노랗던 상학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점점 커지는 아이들 목소리가 합창으로 바뀐다
상학이 똥은 맴생이똥 상학이 방구는 보리방구
상학이 똥은 퇴깽이똥 백 방도 넘는 보리방구
상학이 방구는 줄방구 올림픽 금메달 깜 줄방구
● 출처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문학동네 2005
● 시: 정양-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당선되어 등단. 시집 『까마귀떼』『수수깡을 씹으며』『빈집의 꿈』『눈 내리는 마을』등이 있으며, 모악문학상, 제1회 아름다운작가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 안도현- 시인, 현재 문학집배원으로 활동중.
● 낭송- 이금희: KBS 아나운서.
사전에 따르면‘방귀’의 정의는 “음식물이 배 속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기어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 나는 무색의 기체”입니다. 이 문장을 만든 이도 아마 몇 차례나 웃었겠지요. 굳이 심각해야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귀도 이렇듯 신나는 시가 됩니다. 그것은 방귀라는 언어가 우리의 규격화된 의식을 무장해제 시켜버리기 때문이지요. 해방된 언어공간에서는 방귀가 보리방구가 되고 줄방구가 되고 방구총이 되어야 하고, 여든일곱이 야든일곱이 되고 토끼가 뙤깽이가 되는 게 제격이지요.
문학집배원 안도현. 2007.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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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못 살던 60년대 보리고개 미끈등 미끈등 입안에서 이리저리 잘도 굴러다니지요꽁당 보리밥소화제가 필요없죠먹기만 하면 소화 짱!!!여러가지 냄새, 여러가지 음율로 언제나 웃음을 선물했던 방귀사랑스러운 옛친구여 ~~~그립다 어려운 시절 너와 함께 했던 시절말야~~~^*^
푸하하하.................어릴적 친구가 생각나게하는 기분좋은 시 입니다.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저절로 빙긋이 미소짓게 만드는 구수한 시다.시는 고상해야 된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이 시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