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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

  • 작성일 2007-12-17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출처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 시 - 허수경 :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등이 있으며,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 - 이금희: KBS 아나운서. <6시 내고향>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아침마당> 등 진행중.

허수경, 그녀의 ‘불우한 악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악기가 내는 울음소리 같은 시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악기는 울지 않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말줄임표이거나, 잦은 쉼표이거나, ‘킥킥’이라는 짓궂은 듯한 웃음입니다. 울음은 또한 문장의 도치와 어휘의 반복, 그리고 이미지의 건너뜀을 통해 행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도 독자를 울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 이라는 그 흔한 2인칭 대명사가 이렇게 절실해서 아픈 시를 나는 본 적 없습니다. 당신, 킥킥 당신도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2007. 12. 17.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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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건

  • 익명

    허수경 시인의 '불우한 악기'라는 시를 찾아 보았습니다.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노래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신이라는 악기 속에 참으로 많은 연주가 있는 것 같네요. 울음, 슬픔, 상처, 시름, 그리고 킥킥. 당신이라고 부를 때마다 이런 노래들이 떠오르면 제목 그대로 먼 길이 될 것 같아요. 혼자니까요. 그런데도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라고 하는 걸 보니 불우함도 아름다움이 되는가 봐요. 그래서 저도 홀로 낭송해봅니다. 킥킥은 최대한 낮은 음으로요.

    • 2008-07-30 21:17:5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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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저 또한 킥킥거립니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네요

    • 2008-07-30 06:08:2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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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무너지는 슬픔 앞에서도 의연하게 킥킥거릴수만 있다면... 전 아직 삶의 내공이 좀 더 필요할 듯 합니다. 킥킥 당신.. 이쁜 당신..

    • 2008-07-19 02:24:5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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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y정구지

    시인은 해서는 안 될 사랑의 절망과, 그 뼈저린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합니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하지만 당신이라고 불러서는 알될 사람을 당신이라고 부른다면, 그 아무도 모르는 기쁨에 킥킥, 숨죽여 웃지만 아주 잠시겠지요. 그 뒤에 밀려오는 건 절망이고 뼈저린 외로움이고 마음의 무덤이겠지요. 그러나 사랑은 운명이라고 했던가요. 당신에게로 뻗어가는 사랑을 멈출 수 없어, 시인은 맨술 한병 차고 혼자서 죽음 같기도 한 먼 집으로 가는 것이겠지요. 킥킥 자조 섞인 웃음을 남기면서 말입니다.

    • 2008-07-05 10:58:53
    yy정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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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진이

    좋은 시는 여전히 울림을 전해주네요.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듣는 시 또한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합니다. 절절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킥킥 당신. 슬픔의 아우라가 시 전반을 감싸고, 나를 감쌉니다.

    • 2008-06-28 02:37:35
    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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