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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실리아「얼음 호수」

  • 작성일 2007-12-24
  • 조회수 4,964

얼음 호수

 

손세실리아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봉(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 출처 :『기차를 놓치다』, 도서출판 애지 2006

 

● 시, 낭송 - 손세실리아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2001년『사람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시작. 시집『기차를 놓치다』가 있음.

마치 이육사의 시 ‘절정’을 2007년 12월에 다시 보는 듯합니다. 자신을 송두리째 염하고 완벽히 봉한다는 것, 그것은 생의 어떤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이르러서야 소요와 엄살로 점철된 지나온 시간을 온전하게 성찰하게 됩니다. 우리는 꿈틀거리면서도 죽은 척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한 사나흘 죽어보지도 않고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 피운 건 아닌지? 반성 없이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한 해의 반성문을 써야 할 시간입니다.

2007. 12. 24.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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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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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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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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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하늘우물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을 삭이고 삭이다가 마음을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이에게 털어놓았을 때, 응석부리지 말라는 말을 듣고 참 많이 아파했다. 얼음호수처럼 한 사나흘 죽어보고 나서야 내 마음이 엄살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2008-07-30 20:02:03
    하늘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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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만 고통속에서 사는 것 같아 괴로워했고,정말. 죽고싶을 만큼 슬픔에 잠겼었는데,지나고 나니 별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엄살이 심했구나 하는 생각!이제 중년에 접어드니 죽을것 같이 큰 일도 작게 느껴지고모든 고통도 슬픔도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고 해결된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갑니다.그리고 견디지 못할 고통은 없지않나 싶습니다.

    • 2008-07-28 1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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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꽁꽁 얼어버리게 한 자신의 마음같습니다. 아무것도 정말 그 아무것들도 없는 그 곳이 어딘가고 몇번이고 되뇌이면서 죽고싶은 심정이 그 얼마나 많던가. 그 아무것도 먼지 하나도 없는 그 곳. 그 곳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고달픈 인생길을 허황되게 바보스럽게버리지도 못하는 바보같은 생활, 아무것도 할 수없으면서 정말 밉기까지 한 자신의 모습을 질책하면서 이렇게 매일을 시간과 싸우고 있는 이런 사람도 있소이다. 얼음호수 지금' 나' 와 같은 심경이리라.

    • 2007-12-29 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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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시인의 마음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만한번에 읽었을때 느껴지는 명징함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2007-12-24 06: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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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낯익은 이름 손세실리아님, 신문 에세이를 많이 공감하며 읽은 탓인지요. 시로 만나뵈니 더욱 반갑네요. 남은 며칠은 지나온 삶의 깊이를 진지하게 가늠해봐야겠습니다. 행복 가득한 새해 되시기를! 감사합니다.

    • 2007-12-24 0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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