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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 「할머니의 봄날」

  • 작성일 2010-04-19
  • 조회수 6,813




장철문, 「할머니의 봄날」
 
 
 
 
볕 아깝다
아이고야 고마운 이 볕 아깝다 하시던
말씀 이제사 조금은 알겠네
그 귀영탱이나마 조금은 엿보겠네
없는 가을고추도 내다 널고 싶어하시고
오줌장군 이고 가
밭 가생이 호박 몇구덩이 묻으시고
고랫재 이고 가
정구지 밭에 뿌리시고
그예는
마당에 노는 닭들 몰아 가두시고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먹감나무 장롱도
오동나무 반닫이도 다 열어젖히시고
옷이란 옷은 마루에
나무널에 뽕나무 가지에 즐비하게 내다 너시고
묵은 빨래 처덕처덕 치대
빨랫줄에 너시고
그예는
가마솥에 물 절절 끓여
코흘리개 손주놈들 쥐어박으며 끌어다가
까마귀가 아재, 아재! 하고 덤빈다고
시커먼 손등 탁탁 때려가며
비트는 등짝 퍽퍽 쳐대며
겨드랑이 민둥머리 사타구니 옆구리 쇠때 다 벗기시고
저물녘 쇠죽솥에 불 넣으시던 당신
당신의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렸네
당신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기슭에는
가을에 흘린 비닐 쪼가리들 지줏대들 태우는 연기 길게 오르고
이따금 괭잇날에 돌멩이 부딪는 소리 들리겠네
당신의 아까운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려 저 혼자 마르고 있네
 
 
시·낭송 / 장철문 - 1966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바람의 서쪽』『산벚나무의 저녁』『무릎 위의 자작나무』, 동화 『노루 삼촌』『나쁜 녀석』, 그림책 『흰 쥐 이야기』 등이 있음.

출전 / 『산벚나무의 저녁』(창비)

음악 / 심태한
애니메이션 / 박상혁
프로듀서 / 김태형
 

 

햇볕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펑펑 나오듯 해서 헤프게 마구 쓰도 되는 줄 알았지요. 햇볕을 쬐며 꾸벅 잠이 들어도 좋다고만 생각했지요. 아깝다고는 생각 못했지요. 고맙다고는 생각 못했지요. 그러나 당신 때문에 이제 봄볕 귀한 줄을 알게 되었네요.
봄볕 받아먹고 자라는 생명을 키울 줄도 알게 되었지요. 봄볕에 세상이 한층 밝은 곳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햇볕으로 무언가를 씻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이 세상 모든 그릇마다 굴먹굴먹하게 담긴 봄볕을 보아주세요. 봄볕을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쭉 살펴보세요. 수 만 올의 햇볕을 살펴보세요. 내 몸과 마음을 한 번 훑어 주는 봄볕 아래 서 보세요.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것 같지 않은지요. 봄볕은 안과 밖이 모두 눈부십니다.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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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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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알수있다

    할머니를 못만난지오랜데 이 시를 보면서 할머니생각이많이났고 이 시의 할머니의 혼자서 일을다하는 고단함과 혼자있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 할머니와의 기억을 다시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를 보고 어릴적 매우 친했던 우리 할머니가 많이보고싶고 곧 생신이신데 빨리 보고싶다는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보다 많이 본 할머니 전화 한통 못 드려서 죄송하고 앞으로는 잘해드려야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못보더라도 전화라도 가끔 드려서 더 잘해드려야겠다. 봄은 지나가고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시험기간이다가왓지만 이번시험끝나고는 연락한통 꼭 드리고 할머니댁으로가 할머니뵈러 꼭 계획을 짜야겠다.

    • 2018-05-31 10:55:04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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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소녀땽

    제가 이번년에 봉사를 다녀오면서 할머님들을 많이 뵙고 할머님과 많은 추억을 쌓아 그런지 시중에서 도 같은 단어인 할머니의 봄날이 가장 눈에 들어 왔습니다. 시를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다보니 그곳에 머문 할머님들이 더많이 생각 나더라구요.할머님들 도 누군가에겐 희생적이시고 누군가를 위해 굳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오셨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 셨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저도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가 될텐데 저도 이시처럼 정답고 부지런한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됬습니다.제가 제대로 이시하나하나 뜻을 해석하고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요..ㅎㅎ문학의 종류 중에서도 시에 가장 관심이 많은 저로써 감명깊게 잘 읽고 깨닫고 갑니다.

    • 2017-07-10 01:04:34
    문학소녀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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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큰아들과 작은 아들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내고 항상'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나직이 읊조리던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돌아가신 다음날 꿈에 부처님 옆자리에 계셨던 할머니. 지금은 겨울이지만 그곳은 봄볕처럼 따스한 곳이겠지요.

    • 2011-11-25 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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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볕 귀한 줄은 알았지만 아까운 줄은 몰랐군요 어릴 적 양지쪽에서 따뜻한 햇볕 서로 나누던 노란 병아리들생각 납니다

    • 2011-03-17 17:22:5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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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