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렴형미「아이를 키우며」

  • 작성일 2008-04-28
  • 조회수 28,847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 출처 :『ASIA』 제4호, 2007

 

 

● 詩: 렴형미-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999년 전국군중문학현상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어 창작활동 시작.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운명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한결같이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북의 젊은 문학가 중에서 이채를 발함.

 

 

● 낭송: 성병숙- 연극배우. <하나둘셋>등에 출연했으며, MBC드라마 <문희>, 연극<친정엄마>에 출연함.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는 심장이 마구 요동쳤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몇몇 생경한 어휘들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한 인간의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이 구절 앞에서 저는 박수를 치고 싶었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한사람으로서 왠지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렴형미 시인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으로 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여성시인입니다. 1999년 이후에 작품을 활발하게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북의 어려운 현실을 견디며 사는 여성의 목소리를 시에 주로 담고 있다고 합니다.

 

2008. 03. 28.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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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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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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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2건

  • 11014이상혁

    이 시는 어머니들이 생각을 잘 담은 시인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화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아이에게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치겠노라고. 무한경쟁사회, 초등학교부터 학원에 아이들이 내몰리는 사회에서 ‘사랑’에 대한 가르침부터 하겠다고 하는 화자의 말이 특히 인상적인 시였습니다. 그리고 ‘보려무나’, ‘주련다’등의 어투를 사용한 것도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듯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사는 저에게 마음에 위로가 되는 시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쓴 이런 시들을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8-10-29 12:14:59
    11014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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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재구10201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정말 진실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서 자유롭게 많은 것 을 해보라는 마음을 5연에서 볼 수 있고,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에서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 자유분망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의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어떤 재간을 가르켜야 하지 않냐고 무어라 할때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으로 키워서 아이에게 세상을 해쳐나갈때 도움이 될 '사랑'을 먼저 가르키려는 엄마의 따듯한 모정을 느낄수 있는 시입니다.

    • 2018-05-31 09:15:34
    강재구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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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5살 아이를 키우며 많이 고민합니다...내딸은 정이많은 아이로 스트레스 덜받도록 키우고싶은데 학습지다 뭐다 해서 벌써부터 난리법석 떠는 엄마들을 보면 가만히 마음놓고 있지만은 못하겠습니다..내딸이 건강히 홀로서기를 잘할수있도록하는것이 고사리 같은 손에 연필을 잡고서 공부를 많이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 2012-10-12 09: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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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엄마의 사랑이 무진장 따뜻하게 다가오는 시네요! 가슴이 포근해집니다~ 잘읽고 갑니다 ㅎㅎ

    • 2012-02-26 2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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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2011.12.15(갯바위) 내 아들을 다 키우고 난 에미인지라 마음이 무겁네요. 조국을 들어올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키우지 못해서요.

    • 2011-12-15 11:05:1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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