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물속에서」
- 작성일 201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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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진은영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
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점점 부풀어오르게
잠이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는 일
◆ 시·낭송 / 진은영 -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등으로 등단.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우리는 매일매일』 등이 있으며,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함.
◆ 출전 /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 음악 / 박세준
◆ 애니메이션 / 박상혁
◆ 프로듀서 / 김태형
어린 시절 처음 깊은 물에 빠졌을 때의 공포감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혼자라는 것의 놀라운 실감. 어둠보다도 더 강하게 세상과 차단되는 느낌.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기이한 세계. 피부로 다 만져질 것 같은 죽음. 이 섬뜩한 느낌이 땅 위에서도 순간적으로 내 몸을 관통할 때가 있습니다.
홀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일의 두려움도 깊은 물속에 혼자 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다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깁니다. “내가 모르는” 삶의 시간이 흘러와 나를 적시고 “내가 아는 일들”로 나를 채우기를, 그리하여 내가 물이 되어 부드러워지거나 따스해지고 바다처럼 깊어지기를 기다립니다. 내 몸에는 아홉 달 동안 물속에서 살았던 모태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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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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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7건
물이 흘러가는대로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바라본다. 굽이치는 물의 작은 부딪침은 내가 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자른 감정 같기도 하고 물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발에 쥐가 나고 질식헀던 그 위험한 순간
마음이 흘러가는대로내게오는 사랑내가 보내는 사랑침묵의 사람이든 침잠된사랑이든가만히 들여다본다.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못해질식사할 뻔한 쥐가 난 감정들..시한편 건지기위해 온 마음의 감정들을 찾아다녔던 마음처럼..물에 풀어놓은 감정의 탁도를 조절한다.
물을 내가 아는 기억으로 될때까지의 모든 공포 그리고 내가 두려워했던 기억 그리고 무서움이 될때까지 의 모든것을 물로 표현한거 같아요 그러면서 나의 인생과 삶을 나름 잘 표현한것 같습니다.
나는 어릴때 물에 빠진적도 물가에 간 적도 없는데. 지금도 물에 대한 공포는 무섭습니다. 상상을 초월하죠.보통 인간은 모태에 대한 경외심과 본능으로 물을 그리워 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반대 개념인것 같습니다.수영을 배우려고 몇차례 강의 신청을 하고 돈도 지불했지만, 두번하고 포기했습니다.왠지 모르게 수영을 배울때 눈을 감으면 공포가 밀려 오더군요.태생적인 모순인가요
이 작품은 글과 함께 시각적인 요소가 무척이나 눈길을 사로잡네요. 개인적으로 물 무서워합니다. 집배원님처럼 저도 어렸을때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무척이나 무서워하죠. 정말.. 그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물이 계속해서 저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깊은 바다를 쳐다보면 무언가가 저를 자꾸 그 속으로 인도하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요. 하지만 이 공포를 털어버리면 무엇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괜시리 스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