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 작성일 2011-02-21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시_ 김윤배 - 194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등이 있음.
 
낭송_ 이상협 - KBS 아나운서. 1TV 주말 정오 뉴스, 93.1MHz 1FM 정다운 가곡 등.
출전_ 『굴욕은 아름답다』(문학과지성사)
음악_ 교한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스승님,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혜가가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달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아 보게. 그러면 내가 편하게 해 주겠네.”
 
마음이라는 물건은 우리 몸 어디에 있을까요?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면서 속을 긁고 끓이고 뒤틀리게 할까요? 수술하느라 다 드러난 아우의 내장에서 마음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꼭 어린 아이 같습니다. 마음이 내장 어딘가에 붙어 있어서 아플 때 약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참동안 마음을 찾았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미 자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네.”
 
문학집배원 김기택
 
 

추천 콘텐츠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 임솔아「멍」

멍 임솔아 더러워졌다. 물병에 낀 물때를 물로 씻었다. 투명한 공기는 어떤 식으로 바나나를 만지는가. 멍들게 하는가. 멍이 들면 바나나는 맛있어지겠지. 창문을 씻어주던 어제의 빗물은 뚜렷한 얼룩을 오늘의 창문에 남긴다. 언젠가부터 어린 내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다. 꺼지라고 병신아, 아이는 물컹하게 운다.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멍든 얼굴을 구긴다. 구겨진 아이가 내 앞에 있고는 한다. 사랑받고 싶은 날에는 사람들에게 그 어린 나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나를 안아준다. 구겨진 신문지로 간신히 창문의 얼룩을 지웠다. 창밖을 내다보다 멍든 바나나를 먹었다.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 2017)

  • 2025-05-08
한번쯤 그래 보고 싶었어, 다르게 살아 보고 싶었어 | 임유영「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움직이지 않고 달아나기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 임유영 시험이 끝나고 너와 같이 걸었다 옛날처럼 손잡고 다정하게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그렇지 개구리 군복을 입은 넌 중앙도서관에서 내려왔고 나는 종로 어디 구석진 찻집에서 대추차랑 약과를 먹고 있었는데 통유리창 밖에서 네가 손 번쩍 들고 인사했지 우리 그때 눈이 마주쳐서 웃었지 네 코에 걸쳐진 잠자리 안경 밑에 (넌 가끔 안경을 꼈지) 하얀색 마스크 속에 (너도 요즘 마스크를 쓰고 있겠지) 너의 입술이 천천히 그리는 반달 우리는 천천히 산책을 했지 아무래도 쫓기는 마음으로 이제 곧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의 친구들은 모두 맞아서 다칠 텐데 하지만 내가 대오를 벗어나는 선택을 한번 해본 것인데 경멸 없이 너를 만나보고 대추차도 먹어보고 허름한 찻집에도 들어가보고 불친절한 주인 남자에게 화내지도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한 번쯤 그래보고 싶었어 다르게도 살아보고 싶어 그날 내가 본 것 그날 내가 겪은 것 모두 새로 기입하는 이 흐린 저녁 그 가로등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 - 시집 『오믈렛』(문학동네, 2023)

  • 2025-04-05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속삭임 | 조용우「세컨드핸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 2025-03-0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4건

  • 10913 이기택

    나는 이 시를 읽고 아우가 너무 힘들고 고통을 받고 있고 연민을 느꼈습니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순경인 화자의 아우는 그의 윗사람 상사에게 모멸과 질타의 말을 듣고 또한 협박과 회유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아우에게 연민과 슬프게 느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지금 화자의 아우 처지는 담석증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서 수술을 받고 있는 처지이고 그 처지 때문에 아우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아우가 고통을 겪는 처지 때문에 연민을 느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멸, 질타, 협박과 돌은 화자의 아우가 겪게되는 고통을 뜻할 수 있습니다.

    • 2018-05-29 15:50:26
    10913 이기택
    0 / 1500
    • 0 / 1500
  • 11020 조연호

    저는 이 시의 화자의 아우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년 순경인 아우에게 가해졌던 모진 모멸과 질타의 말, 협박과 회요의 말, 하지만 아우의 몸 속에는 그 어떠한 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시는 한 사람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많이 들을 수 밖에 없는 날카로운 말들 아마 그 말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단단한 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우의 담낭 속에서 발견된 수많은 돌조각들, 아마 그것은 아우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나름대로의 돌조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시의 제목과 같이 "이런 돌들이 있기에 인간은 더욱 나아가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달든 쓰든 그 많은 기억이 인생을 만들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 또한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 그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2018-05-28 15:47:53
    11020 조연호
    0 / 1500
    • 0 / 1500
  • whdkdus

    이 시에서 아우가 경찰일을 하면서 상사의 압박과 피의자를 심문하느라 험한 말을 듣거나 했는데도 아우의 내장의 모습에는 이러한 말들이 보이지 않고 아름답다고 표현한것이 나의 내심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어디 한 구석에 숨은 험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고통이 되고 담낭에서 나온 돌들은 지금까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위해 견디면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인것 같다.

    • 2017-06-11 09:35:04
    whdkdus
    0 / 1500
    • 0 / 1500
  • 익명

    나도 마음이 찾을수 있는 존재이길 빈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만나고 싶어서

    • 2011-02-22 13:37:08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