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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 작성일 2011-02-21
  • 조회수 4,252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아우는 큰 몸뚱이를 수술대 위에 버리고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마취되어 있다
집도의가 가리키는 모니터에 아우의 내장이
속속들이 보인다 담낭이 제거된 자리가
검붉을 뿐 내장은 아름답다 연붉은 간덩이
사이로 흐르는 핏물은 불빛에 놀라 기포를 뱉으며 급히 몸을 숨긴다
집도의는 내시경을 움직여
내장 이곳저곳을 헤집는다
간 한 잎 뒤집으면 나타날 것 같던
만년 순경인 아우의 내심은 보이지 않는다
상사의 모멸과 질타의 말들도 피의자를 다루던
온갖 협박과 회유의 말들도 보이지 않고
서늘한 오기도 찾을 수 없다
내장은 아름다울 뿐 더러운 일상에
물들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나의 손을 거부한다
담낭이 절개되고 돌들이 쏟아져나온다
강렬한 조명을 받아 돌들은 빛난다
그랬구나 내장 속에서 찾을 수 없었던
너의 내심 가슴에 맺혀
욕스러운 나날들 더욱 단단해지고
그렇게 견디어낸 아름다운 굴욕들
빛나는 돌이 되어 네 몸 속 환한
고통이었구나
 
 
 
 
시_ 김윤배 - 194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등이 있음.
 
낭송_ 이상협 - KBS 아나운서. 1TV 주말 정오 뉴스, 93.1MHz 1FM 정다운 가곡 등.
출전_ 『굴욕은 아름답다』(문학과지성사)
음악_ 교한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스승님,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혜가가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달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아 보게. 그러면 내가 편하게 해 주겠네.”
 
마음이라는 물건은 우리 몸 어디에 있을까요?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으면서 속을 긁고 끓이고 뒤틀리게 할까요? 수술하느라 다 드러난 아우의 내장에서 마음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꼭 어린 아이 같습니다. 마음이 내장 어딘가에 붙어 있어서 아플 때 약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참동안 마음을 찾았으나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미 자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네.”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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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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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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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10913 이기택

    나는 이 시를 읽고 아우가 너무 힘들고 고통을 받고 있고 연민을 느꼈습니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순경인 화자의 아우는 그의 윗사람 상사에게 모멸과 질타의 말을 듣고 또한 협박과 회유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아우에게 연민과 슬프게 느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지금 화자의 아우 처지는 담석증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서 수술을 받고 있는 처지이고 그 처지 때문에 아우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아우가 고통을 겪는 처지 때문에 연민을 느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멸, 질타, 협박과 돌은 화자의 아우가 겪게되는 고통을 뜻할 수 있습니다.

    • 2018-05-29 15:50:26
    10913 이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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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20 조연호

    저는 이 시의 화자의 아우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년 순경인 아우에게 가해졌던 모진 모멸과 질타의 말, 협박과 회요의 말, 하지만 아우의 몸 속에는 그 어떠한 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시는 한 사람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많이 들을 수 밖에 없는 날카로운 말들 아마 그 말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단단한 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우의 담낭 속에서 발견된 수많은 돌조각들, 아마 그것은 아우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나름대로의 돌조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시의 제목과 같이 "이런 돌들이 있기에 인간은 더욱 나아가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달든 쓰든 그 많은 기억이 인생을 만들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 또한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 그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2018-05-28 15:47:53
    11020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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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dkdus

    이 시에서 아우가 경찰일을 하면서 상사의 압박과 피의자를 심문하느라 험한 말을 듣거나 했는데도 아우의 내장의 모습에는 이러한 말들이 보이지 않고 아름답다고 표현한것이 나의 내심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어디 한 구석에 숨은 험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고통이 되고 담낭에서 나온 돌들은 지금까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위해 견디면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인것 같다.

    • 2017-06-11 09:35:04
    whdk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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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익명

    나도 마음이 찾을수 있는 존재이길 빈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만나고 싶어서

    • 2011-02-22 13:37:0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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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