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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 『사무실』 중에서

  • 작성일 2009-12-24
  • 조회수 3,406




앨리스 먼로, 『사무실』 중에서 

 

 

어느날 저녁 다림질을 하는 동안 내 인생에 대한 해결책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과감한 해결책이었다. 나는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실로 들어가서 ‘사무실을 하나 얻어야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듣기에도 황당하게 들렸다. 도대체 나에게 사무실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나에게는 집이 있다. 그 집은 아주 기분좋게 널찍하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다. 그 집은 먹고 자기에, 그리고 목욕을 하고 친구들과 담소를 하기에 적절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 나는 정원도 갖고 있으므로 공간이 부족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로서는 공개하기 편치 않은 사실이 개입되는 것이다. 내가 작가라는. 아니, 〈작가〉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내 자신을 <작가>로 칭하는 것은 너무 주제넘달까, 허풍스럽달까, 아니 어쨌든 별로 신빙성이 가지 않는다. 다르게 표현을 해보는 게 어떨까? 나는 글을 쓴다. 그렇게 말하면 좀 나은가? 나는 글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아니, 그건 더 나빠. 위선적인 겸손의 냄새가 나니까. 그러면 어쩐다? 그리고 똑바로 말하자면 내가 거기서 집필을 할지 안 할지는 내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냥 앉아서 벽을 물끄러미 바라볼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은 〈사무실〉이라는 말의 어감이었다. 위엄과 평화를 시사하는, 그리고 그 말이 풍기는 목적성과 중요성의 암시.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남편에게 구태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신, 매우 거창한 명분을 표방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것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남자는 집에서 충분히 일을 할 수가 있다. 남자가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면 식구들은 그를 위해 일할 자리를 치워준다. 그리고 식구들은 그의 일을 중심으로 생활을 재조정한다. 남자의 일은 누구나가 인정을 하는 것이다. 남자가 집에서 일을 할 때는 아무도 그가 전화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없어진 물건을 채워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아보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 방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어머니가 방문을 닫아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생각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여자가 남편이나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공간을 응시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로 인식되어 있다. 여자는 집에 들어와서 집을 사용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여자는 바로 집이기 때문에 여자는 집과 분리될 수 없다.

물론 이 주장은 전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분수에 넘친다고 생각되는 것의 획득을 주장할 때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감정적인 어조로 이 논리들을 늘어놓았다. 어떤 때, 가령 처량하게 비가 내리는 어느 긴 봄의 저녁시간 같은 때에, 구근식물들의 꽃이 피고 희망적이라기에는 너무 희미한 빛이 바다 위를 흐를 때, 나는 창문을 열고 집이 그 구성요소인 나무와 석회 따위로 환원되어버리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도 사그라들어서 나를 빈 손으로 대기 중에 노출시킨 것같이 느끼면서 격렬한 무법적인 자유의 떨림을, 그리고 견딜 수 없으리만큼 무자비하고 완벽한 고독을 느끼곤 했다.

 

 

● 작가 / 앨리스 먼로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윙엄에서 태어났으며,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발표함. 지은 책으로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공공연한 비밀』『떠남』『목성의 위성들』『사랑의 경과』『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등이 있음. 장편소설 『소녀와 여성의 삶』은 미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함. 총독문학상, 길러 상,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오헨리 상 등을 수상함.

낭독 / 성경선(배우_‘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 출연)

출전 / 『19호실로 가다』, 민음사

음악 / 권재욱

애니메이션 / 최창숙

프로듀서 / 김태형

 

문장 배달 원고를 마감하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여행지에서 써 보낼 생각으로 책 네 권을 골라 가져갔죠. 이 책은 오래 전에 읽었지만 깊은 인상이 남아 있어 언젠가 배달하려 했었구요. 그런데 문장을 고르려다보니, 이런, 생각보다 밋밋한 거예요. ‘세계 페미니즘 단편선’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서일까요. 아니면 저의 30대에는 절실했던 페미니즘이란 말이 이제 그만 지겨워진 걸까요. 혹은 그 사이 페미니즘에 대한 더욱 깊은 사유를 담은 세련된 소설을 읽어온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어쩌죠, 외국 여행지이니 한국 책은 없고, 마감은 닥쳐오고. 하는 수 없이 눈을 부릅뜨고 이 책을 여기저기 뒤적이는데 흐음, 제가 성급했더군요.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명편들 맞아요.(그래야만 했어요!) 다만 뭔가 가르치고 주석을 다는 듯한 책의 구성이 마음에 안 들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잔소리를 싫어하는 건 세 가지 이유 같아요. 여러 번 되풀이되거나, 이미 아는 얘기이거나 혹은, 지극히 옳은 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어쩌다 철이라도 들어버려 잔소리하는 소설을 쓰게 될까봐 걱정이라니까요(ㅎ). 맥락 없는 오늘의 한마디. 대부분 잘 하려고는 하지만, 언제나 잘 되는 건 아니네요.

 

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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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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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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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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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한번쯤은 과감히 문을 닫읍시다. 누가 와서 대신 닫아주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 2009-12-25 23:42: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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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의 글 답네요. 음양의 이치처럼 여성의 행복이랄 수도 있으면서 한편으론 부당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집안에서 가족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2009-12-25 10:38:4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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