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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K에게」 중에서

  • 작성일 2011-04-21




 
한유주, 「K에게」 중에서
 
 
 
 
(……)학급문고에서 그의 전기를 꺼내 읽었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무장공비와 맞닥뜨렸을 때 어린 소년이 느꼈을 법한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압도적이고 위악적인 무게에 질려버리고 말았죠. 누군가가 그에게 증오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면, 한낱 산골 아이가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 나는 오늘도 여전히 궁금하기만 합니다. 아이는 다음 날, 입이 찢긴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나라면 결코 하지 않을 말을 외치다가 입이 찢겨 죽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건 용기도 무모함도 아니었을 거예요. 어린 나는 그 이야기에서 무지에서 비롯된 순수한 증오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공비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과, 아이를 바라보는 공비의 시선을 차례로 상상해봤어요. 그리고 제풀에 겁에 질리고 말았죠. 죽을 이유도, 죽일 이유도, 그러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었거든요.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을까요? 다수의 사람이 증언하듯 1968년의 어느 겨울날 일어났던 그 사건은 사실임이 분명하겠지요. 그러나 사실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실만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일까요? 혹은 그럴 듯한 이야기라는 것일까요? 누군가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했고, 아이들은 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에 대한 감상문을 써서 제출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 사건이 과도하게 사실적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거예요. 가장 사실적인 증오는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혹은 그저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까요. 나는 오늘도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이념이 충돌하고, 잔영으로만 남아 있던 과거가 되돌아와 붉게 번뜩이는, 그래서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드러나는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었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어떤 이야기가 사실적이라고 할 때, 혹은 실화라고 할 때 사람들은 보다 쉽게 속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믿고 싶은 말만 믿으니까요. 국가라는 형식, 체제의 개연성, 산골 소년이라는 소재, 반공의 서사, 한 편의 이야기, 감동적인. 우리는 그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자 과도하게 다른 의견을 갖고 있죠.
 
 
 
 
작가_ 한유주 -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달로』, 『얼음의 책』 등이 있음.
 
낭독_ 변인숙 - 자유기고가, 문화기획자
출전 : 『얼음의 책』(문학과지성사)
음악_ 최창국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언어를 능숙하게 다룬 소설을 읽는 건 즐거워요. 그 능숙함에 대한 찬탄은 공들여 화장하고도 이른바 ‘쌩얼’로 보이는 사람을 향한 경이와 비슷한 거겠지요. 하지만 때로, 잡티로 뒤덮인 윤기 없는 살갗이며 거스러미 인 입술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민낯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낱낱이 드러나는 그 주름살이며 살결의 거칢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일은 민낯을 보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들어요. 전에 읽은 책을 꺼내 펼치니, ‘무지에서 비롯된 순수한 증오’라는 대목에 밑줄이 그어져 있네요. ‘이승복’이라는 주제로 반공 글짓기를 하던 아이가 자라 소설을 쓰네요. 글을 쓰며, 낱낱의 단어와 단어들의 결합에 걸핏하면 끼여드는 거짓됨에 무뎌지지 못하고 끝내 분주한 저 더듬이, 그 더듬이의 미더움.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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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쓸쓸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젠 필요 없게 된 꽃다발을 껴안은 채 순임이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걸었고, 병기는 연신 담배 연기만 한숨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때마다 하얀 병원 건물의 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유리창들이 마치 숱한 들짐승들의 눈알마냥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어디에 있느냐.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어느 흙더미 속에 산 채로 묻어 놓고 너 홀로 돌아오는 것이냐.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렇게 자꾸만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상처 입은 한 마리 들짐승처럼 울부짖는 그 소리는 우리가 버리고 온 또 하나의 우리들의 부끄러운 아벨의 음성이었다. 우리는 다리에 다다랐다. 거기서부터 병원은 산자락에 가려져 더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 아래 개울에서 꼬마 아이들이 여럿 보여 웅성대고 있었다. 가방이며 신발을 모래밭에 벗어놓고 아이들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수면 위로 희고 반짝이는 작은 점들이 무수히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죽은 물고기들이었다. 겨우 엄지손가락 크기의 어린 물고기들을 손으로 건져내며 아이들은 키들키들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 위쪽에서 어른들이 약을 풀었대요.” “뱀장어를 잡아요. 이만큼 큰 걸루만 많이 잡았대요.” 아이들이 우리를 올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개울 상류 쪽에서 사내 둘이 팬티바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까 오던 길에 보았던 바로 그자들이었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다리 아래 수면에 비치는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거기, 자갈 박힌 푸른 하늘이 투명한 물밑에 깔려 있었고, 우리들의 얼굴 위로는 죽은 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쉴 새 없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언제쯤······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수면 위에서 병기의 얼굴이 말했다. “누구?” “상주 말이야.” “······” 그때 나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작은 붕어 하나가 꿈틀거리며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줄곧 지켜보고 있는 참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끼어들었다. “근데 말야. 난 아직도 한 가지만은 모르겠거든. 정말 그날 새벽 죽임을 당하기 전에 명부가 녀석의 집을 찾아갔었을까······” 병기는 여전히 시선을 물 위에 던져둔 채 말했다. “어쩌면······ 어쩌면 말예요. 그건 혹시 사실인지도 모르겠어요.” “뭐라구.&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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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움... 낱낱이 드러나는 그 주름살이며 살결의... 다음에 단어는 뭘까요?

    • 2011-04-21 17:27: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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