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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서른」중에서

  • 작성일 2012-09-27
  • 조회수 5,404




  김애란,「서른」중에서
 
  언니, 저는 지금 제 방에 앉아 있어요. 서울에서 구한 여섯번째 자취방이에요. 언니와 같이 있던 데를 포함하면 일곱번째일까요? 거기는 방이 아니라 칸이었는데, 사임당독서실. 여성 전용이니 신사임당처럼 훌륭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라고 그렇게 지었을 텐데. 정작 그 안에는 훌륭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보통의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들이 많았지요. 무엇이 보통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곳 언저리에 금이라도 한번 밟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요. 언니는 전북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아가씨. 나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된다는 각오로 충남에서 올라온 재수생이었지요. 거기서 1년. 주위 여자들은 몇 번 바뀌었지만 언니와 저는 처음부터 쭉 같은 자리에 있었단 걸 기억해요. 한 칸에 네 명, 칸과 칸 사이에 벽이 아니라 커튼이 있고, 잠을 잘 땐 책상 위로 의자를 올려야 하는 데서, 그래도 늘 예약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던 그곳에서, 언니와 나, 등을 맞댄 채 자주 밤을 새우곤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언니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뒷모습이 떠올라요. 침침한 스탠드 아래서 밤새 뭔가 쓰고 외던 언니의 굽은 어깨가요. 아마 언니 눈에 제 뒤태도 비슷하게 보였겠죠? 우리 둘 다 꿈 말고도 이고 있는 것이 많았으니. 그래도 언니가 제 뒷모습을 본 것보다 제가 언니 뒷모습을 본 적이 더 많을 거예요. 눈꺼풀 위로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잠을 어쩌지 못해 만날 헤드뱅잉만 하다, 먼저 잠자리에 든 건 제 쪽이었으니까요.
  언니, 여기 제 앞에는 공책만 한 창이 하나 있어요. 열리진 않고 장식처럼 그냥 박혀 있는 거예요. 테두리도 손잡이도 없는 유리판인데 나름 신축 건물이라고 멋을 내느라 그런 모양이에요. 그래도 창은 창이라고 동네 모습이 훤히 내다보이는데, 이 집이 도로를 등지고 있어 창 너머로 온통 주택가뿐이에요. 건물 간격이 좁아 볕 들 겨를이 없는 다세대주택과 크고 작은 빌라, 다락이 세모나게 솟은 1980년대풍 양옥을 비롯해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촌 따위가 얕은 산등성이를 따라 주르륵 연결돼 있어요. 얼핏 봄 쓸쓸하지만 고요하고 가지런한 풍경이에요. 하루 일을 마치고 고단하게 잠든 서울의 얼굴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새벽이라 불 밝힌 집이 많지 않은데, 몇몇은 추위 덕에 더 오롯하게 빛나네요. 그중 저기 제일 꼭대기, 뉴타운에 들어선 아파트는 저녁마다 회사 로고를 본뜬 네온등을 밝히는데요, 그게 어두운 허공에 붕 떠 있으면, 어느 땐 천공의 섬 같고, 또 어떤 때는 모두에게서 모든 것을 승인받은, 이 세기의 대표적인 문장(紋章)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따금 유리벽에 코를 박은 스푸트니크의 개를 떠올리며 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이 방이 어떤 공간이나 장소가 아닌, 어디론가 계속 이동 중인 물체처럼 느껴지거든요. 이제 저쪽 세계와는 같은 시공을 공유할 수 없겠다는 예감을 안고, 묵직한 가속도를 내며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우주선처럼요. 아무튼 오늘도 멀리 캄캄한 도시 위엔 붉고 노랗고 희고 푸른 불빛들이 알사탕처럼 뿌려져 있어요. 깨물어 먹고 싶을 만큼, 예쁜 서울이에요, 여기.
 
 
작가_ 김애란 -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자람.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달려라, 아비』,『침이 고인다』,『비행운』, 장편소설『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음.
낭독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출전_ 『비행운』(문학과지성사)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 김태형

  작가가 예쁜 서울,이라고 묘사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다단계 판매회사의 토끼장 같은 숙소에서 감금되다시피 하며 지낸 젊은이들에 대한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김애란은 굳은 풍경을 새로이 보게 하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짜 세트장같이 그리고 마는 서울 풍경이 김애란의 손을 거치면서 새롭고 신비롭게 태어나지 않습니까? 풍경의 의미를 잘 알고 있고, 제 프리즘으로 보려는 노고의 흔적일 테지요. 김애란은 원룸이라는 공간을 발견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가들에게 풍경은 모사되기보다 발견됩니다. 연암 박지원이 1780년 북경거리에서 발견한 장관은 기와조각과 똥거름이었습니다. 깨진 기왓장을 담에 올리고 보도에 깐 풍경, 말똥을 주워 거름간에 사각형 혹은 육각형으로 맵시 있게 쌓아올린 풍경을 보고 연암은 북경의 생활사가 보여주는 실용성과 미의식을 추켰지요. 황석영이 기차역과 공장들이 들어선 1950년의 영등포를 그릴 때 녹슨 철로에 솟은 잡초 까마중과 부글부글 끓는 하수구도 비로소 서정성 짙은 근대의 풍경으로 태어납니다. 풍경이 그 시대를 잘 담고 있으니 발견된 것이지요. 김애란의 묘사처럼 고층 아파트의 마천루 야경은 아름다우면서 왠지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시대의 풍경입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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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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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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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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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불빛이 추위 '덕에' 더 오롯이 빛난다는 말이 더욱 슬프게 느껴집니다. 김애란 님은 도시 생활에 대해서 정말 묘사를 잘 하시는 작가란 생각이 드네요.

    • 2012-09-27 23:05: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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