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인문학 ― 자연계 능력자들과 표준모형
- 작성일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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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피스인문학]
"빛의 속도로 차인 적이 있나?"
― 자연계 능력자들과 표준모형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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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이어 자연계 열매 능력자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번에는 고대철학에서 말하는 '아르케'를 참조했다면, 이번에 도움을 받을 지식은 현대물리학이다. 현대과학이 찾아낸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힘을 현대의 새로운 아르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원자(atom, '더 쪼갤 수 없음'이라는 뜻이다)라고 부른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였지만 원자 역시 물질의 최소 단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11년 러더퍼드에 의해 원자핵이 발견되고 나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의 모형이 확립되었다. 이 세 가지 입자들(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수에 따라 백 가지가 넘는 원소의 종류와 성질이 정해지고(우리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그토록 골머리를 앓았던 '주기율표'는 양성자의 수에 따라 원소들을 배열한 표다. 원자는 이런 원소의 성질을 잃지 않으면서 물질을 이루는 최소 입자를 이르는 말이다), 원자가 결합하여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물체들의 최소 단위인 분자를 이룬다.
그런데 양성자와 중성자도 실은 더 작은 입자인 쿼크(quark)로 이루어져 있다. 여섯 종류의 쿼크가 발견되었는데, 이름이 위-아래, 맵시-야릇, 꼭대기-바닥쿼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쿼크는 둘씩 짝을 짓고 있다. 이 중에서 양성자는 위+위+아래쿼크가 결합한 것이고, 중성자는 아래+아래+위쿼크가 결합한 것이다. 결국 원자를 이루는 기본 입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아니라 두 가지 쿼크(위, 아래)와 전자이다. 그 후에도 여러 종류의 기본 입자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입자들과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형을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고 부른다. 표준모형을 정리한 표는 다음과 같다.1)
1) 도표는 개빈 헤스케스, 『입자 동물원』, 배지은 옮김, 반니, 2017, 10-11쪽에서 가져왔다.

왼쪽에 있는 도표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로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따서 페르미온이라고 부른다. 페르미온은 다시 렙톤과 쿼크로 나뉜다. 렙톤(lepton)이란 '가벼운 입자'라는 뜻이다. 렙톤은 가장 가벼운 전자와 가장 무거운 타우, 그 중간에 해당하는 뮤온 그리고 이 셋에 대응하는 세 가지 중성미자(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 표시한 1, 2, 3세대는 질량이 커지는 데 따른 분류다. 세대가 넘어갈수록 질량은 훨씬 더 무거워지며, 전자와 뮤온과 타우는 그것과 짝을 이루는 중성미자보다 훨씬 더 무겁다. 앞에서 말했듯 쿼크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위쿼크와 아래쿼크 외에도 네 가지 쿼크가 더 있는데, 이후에 발견된 무수한 입자들2)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이다.
오른쪽에 있는 도표는 기본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로 인도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드 보스의 이름을 따서 보손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우주에는 네 가지 서로 다른 힘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강한 핵력)과 약력(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중력이 가장 약한 힘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하는 힘이 중력이며, 전자를 원자핵 주위에 붙들어 두는 힘이 전자기력이다. 강력은 원자핵 안에서 쿼크를 결합하여 중성자나 양성자와 같은 입자들로 만드는 힘이며, 약력은 우라늄이나 코발트 같은 원소에서 방사능 붕괴를 일으키는 힘이다. 이 중에서 중력을 제외한 세 가지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각각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빛알),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 약력을 매개하는 W보손과 Z보손이다.3)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힘은 입자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상호작용인 셈이다. 전자기력은 전자끼리 광자를 교환하여 발생하는 힘이고, 강력은 쿼크끼리 글루온을 교환함으로써 발생하는 힘이며, 약력은 W입자와 Z입자를 교환함으로써 베타붕괴를 할 때 발생하는 힘이다. 이처럼 입자를 교환함으로써 상호작용하는 성질을 게이지 대칭성이라고 부른다. 이 대칭성이 깨져서 질량이 없는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되는 과정을 힉스메커니즘이라 부르며, 힉스 입자는 이 메커니즘의 부산물로 생기는 입자다.
2) 실험실에서 쓰는 입자가속기와 검출기의 성능이 향상되자, 전하와 질량이 서로 다른 많은 입자들이 계속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여기에 그리스 알파벳(뮤온, 파이온, 케이온, 이타, 로오, 시그마, 크사이, 오메가……)을 붙여 이름을 지었는데, 나중에 이 입자들은 (뮤온을 제외하고는) 쿼크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기본 입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머리 아픈 수험생들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미 표준모형을 이루는 입자 수(17개)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니다. 쿼크에는 세 가지 색전하(color charge, 적․녹․청이라고 구별한다)가 있으며, 기본 입자들에게는 각각의 반입자(질량은 같으나 전하가 반대인 입자)가 있다. 거기에 W보손이 둘, 글루온이 8개다. "각 세대당 2개씩 3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렙톤(6개)과 각 세대당 2개씩, 입자 하나당 3종류의 색전하로 3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쿼크(18개)를 더하면 24개이고, 이들의 반입자를 고려하면 48개이다. 여기에 12개의 매개입자(광자, W+, W-, Z0, 8개의 글루온)와 힉스 보손을 더하면 61개가 된다."(짐 배것, 『기원의 탐구』, 박병철 옮김, 반니, 2017, 92쪽)
3)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중력자(graviton)라 부르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힘에 비해 중력은 대단히 미약한 힘이다. 두 개의 전자 사이에서 끌어당기는 힘(중력)을 서로를 밀어내는 힘(전자기력)과 비교하면 얼마나 될까? "한 마디로 말해서 '쨉도 안 된다.' 전자기력에 의한 척력이 중력보다 100만×10억×10억×10억×10억(1042) 배나 크다! (중략) 전자기력이 이렇게 위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중력이 판을 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들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똑같은 양만큼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기적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뿐이다. 반면에 중력은 항상 끌어당기는 인력의 형태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자기력과 같은 상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질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중력의 세기는 오로지 증가하기만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념에서 볼 때 중력은 너무나도 미미한 힘이다. 실험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강력은 전자기력의 100배, 그리고 약력의 10만 배에 해당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브라이언 그린, 『엘러건트 유니버스』, 박병철 옮김, 승산, 2004, 35쪽) 중력이 이처럼 미약하기 때문에, 이를 매개하는 중력자 역시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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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 관한 짧은 개괄이다. 자연계 열매 능력자들의 여러 능력을 이 표준모형의 몇몇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표준모형이 자연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소와 힘을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피스 세계의 능력자들을 살펴보자.
보르살리노(Borsalino)는 키자루(노란 원숭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며, 원피스 서사의 전반부(위대한 항로의 전반부를 모험하던 시기)에서 사카즈키, 쿠잔과 함께 해군본부의 삼대장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정의'를 내세우는 사카즈키와 '한껏 해이해진 정의'를 표방하는 쿠잔의 중간쯤 되는 인물이다. 사카즈키가 극단적인 원리주의자이고, 쿠잔이 반성적인 회의주의자라면 보르살리노는 타협적인 현실주의자다. 그는 번쩍번쩍 열매를 먹은 빛 인간이다.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며, 손가락 끝에서 레이저를 쏠 수도 있다. 그가 선보인 기술 가운데 팔지경(八咫鏡)은 빛이 거울에 굴절되는 것처럼 빛으로 변한 제 몸을 굴절시켜 원거리를 이동하는 기술이며, 천총운검(天叢雲劍)은 손에서 발한 레이저를 검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속도 그 자체가 가장 큰 무기다.
"속도는 중량, 빛의 속도로 차인 적은 있나?"
(보르살리노가 바질 호킨스에게, 52권 508화)
저 대사 후에 호킨스는 얻어맞고 멀리 나가떨어진다. 그런데 이 문장은 실은 잘못이다. 빛(광자)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의 한쪽 극단이다. 빛보다 빠른 입자는 없다. 빛은 속도가 최대인 대신에 질량이 0이다. 아예 무게가 없다는 얘기다. 빛의 속도에 이르는 것은 빛뿐이고 빛은 멈추지 않고 광속으로 이동하는 입자다. 따라서 빛의 속도에 차이는 것은 빛과 충돌하는 것이고, 그때 우리는 햇빛이나 전등 빛을 받았을 때처럼 아무 충격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광속에 다가가는 물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광속에 도달할 수 없기에, 어떤 물체가 속도를 높여 광속에 다가가면 그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물체에 들이부은 에너지가 물체의 질량으로 변해버린다. 따라서 통상의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진다면(당연히 광속에 다다를 수는 없다) 거기에 들인 에너지가 모두 질량으로 변했을 것이므로 그 무게는 엄청날 것이다. 보르살리노의 발차기가 선보이는 파괴력은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삼대장의 성격은 그들이 먹은 자연계 열매의 특성과는 정반대다. 뜨거운 용암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사카즈키는 잔인하리만큼 냉혹한 인간이며, 얼음인간인 쿠잔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인간이다.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입자이지만 보르살리노의 성격은 느긋함 그 자체다. 말을 할 때에도 그는 불필요하게 늘여서 말한다. 이런 식이다. "거 참 이상하네에~~~…."(52권 507화) 이런 모순에도 이유가 있다. 빛은 속도가 최대인 대신에 시간도 0이다. 빛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반면 보르살리노는 주름투성이의 노안(老顔)을 하고 있으며, 실제 나이도 사봉디제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기준으로 56세다). 그런데 빛과 달리 이 속도에 다가가는 물체의 경우에는 또 사정이 다르다. 광속에 도달할 수 없기에, 어떤 물체가 속도를 높여 광속에 이르면 점점 시간이 느려지고 길이도 짧아진다.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여기에 기인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물체 ― 이번에는 광속의 절반 속도로 달려가는 자동차라고 하자 ― 가 빛과 나란히 출발한다고 해도, 이 자동차에 탄 사람의 눈에 빛은 자동차가 정지했을 때와 똑같이 저 앞에서 앞서 나간다. 시간지연의 효과(자동차가 빨라질수록 차에 탄 사람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와 길이축소의 효과(동시에 이 차는 점점 짧아진다)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빛의 속성이 보르살리노의 행동과 성격을 설명해 주는 셈이다.
에넬은 하늘섬 스카이피아를 다스리는 통치자다. 스카이피아에서는 통치자를 갓[神]이라고 부른다. 선대의 통치자였던 간 폴도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에넬은 스스로를 (통치자의 호칭이 아니라) 그 본질에서도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번개번개 열매4)를 먹은 전기인간이며, 번개로 스카이피아를 통치한다.
4) 원문은 'ゴロゴロの実'(고로고로, 천둥치는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이므로, '쿠릉쿠릉 열매' 정도가 적당한 번역이다.
"내가 신이다."(갓 에넬이 스카이피아의 신관들에게, 27권 254화)
"이제 알았겠지? 나는 번개다."(갓 에넬이 샨디아의 전사 카마키리에게, 28권 264화)
여기에는 말놀이가 있다. "내가 신이다"라는 말의 일본어 원문은 문어체 표현인 "我が神なり"(나는 신이노라)인데, 술어인 "神なり"의 발음이 '카미나리'이며, 이것은 번개 "雷"의 발음이기도 하다. 에넬은 스스로를 "나는 신이노라=번개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에넬은 아마도 중국 신화에 나오는 번개의 신인 뇌공(雷公)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번개는 또한 하늘신 제우스의 무기이기도 하다. 에넬 역시 하늘나라(스카이피아)의 신이므로 번개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번개로 변해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으며, 100만 볼트에서 최대 2억 볼트의 전기를 내어 적을 감전시킬 수 있다(에넬이 번개를 내어 만든 공격기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뇌신 이름이 붙어 있다). 게다가 그는 '만트라'라는 기술로 스카이피아를 통치하는데, 이것은 갓 에넬의 수하들도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지상 세계에서는 견문색 패기(상대의 기척이나 동작을 미리 읽어내는 능력)라고 알려진 능력이다. 에넬은 이 기술을 번개 능력과 결합하여 스카이피아 주민의 모든 말들을 엿듣는 데에 쓴다. 혼잣말을 듣는다는 것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과 같다. 에넬은 번개의 능력으로 무소부재(無所不在), 전지전능(全知全能)이라는 신의 속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표준이론에 따르면 에넬의 힘은 전자기력이다. 실생활에서는 전기(電氣)와 자기(磁氣) 두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이 둘은 한 가지 힘의 두 가지 효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힘이 빛이다.
빛의 파동은 앞으로 나아가는 한 부분이 다음 부분을 자극함으로써 나아가는 것이다(빛의 파동에서 전기적인 부분은 가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자기 부분을 누른다. 그 자기 부분은 에너지가 올라감에 따라 전기를 생성해서 이 순환이 계속 진행되도록 한다). (중략) 우리가 인식하는 빛이란, 서로를 밀어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기와 자기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빛은 정지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래서 결코 우리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5)
5) 데이비드 보더니스, 『E=mc2』, 김민희 옮김, 생각의나무, 2010, 77-78쪽.
도선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자기장 주위에 자석을 가져다 놓으면 가상의 자석(전기가 흐르는 도선 주변의 자기장 영역)과 실제 자석 사이에 힘이 생겨난다.6) 이 힘을 전자기력이라고 부른다. 전자기력을 전기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기력이 전기력의 부대현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전기에서 자기가 생기는 것이지, 전기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고유한 자기적 힘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7) 지구 자체가 N극과 S극을 가진 거대한 자석인 것은, 지구의 자기가 "유동적인 지구 내부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막강한 원형전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8)
전자기력은 원자를, 나아가 우주를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힘이다. 원자핵 안의 양성자가 바깥의 전자를 전자기력으로 붙잡아 두고 있기 때문에 원자가 성립하며(음전하를 띤 전자와 양전하를 띤 양성자가 같은 수만큼 원자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원자는 중성이다), 따라서 전자기력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에넬은 우주에 알려진 네 가지 힘 가운데 강력 다음으로 강한 힘인 전자기력을 제 힘의 근원으로 삼은 인물이다. 가히 신이라 자처할 만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6) 이 힘의 방향을 설명하는 것이 플레밍의 왼손 법칙이다. 왼손의 엄지, 검지, 중지를 서로 수직이 되도록 폈을 때, 검지가 자석의 힘 방향(N극에서 S극으로), 중지가 전기가 흐르는 방향(+극에서 –극으로)이라면 엄지가 전자기력이 향하는 방향이다.
7) 한스 그라스만,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염영록 옮김, 생각의나무, 2002, 238쪽.
8) 같은 책,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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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모형은 우주에 존재하는 힘 가운데 세 가지 힘(전자기력, 강력, 약력)과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이다. 이 입자들과 힘들은 극히 작은 세계에서 존재하거나 작용하는 양자역학의 소관이다. 우리의 일상세계나 별과 은하 규모의 거시세계에 작용하는 힘인 중력은 극히 미약하여 이 미시세계에서는 무시해도 좋은 힘이다. 그러나 인간이 접하는 일상세계나 우주적인 규모의 거시세계에서는 중력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중력과 관련된 악마의 열매 능력자가 있으니, 쿠잔의 퇴역 이후에 새로 대장에 영입된 실력자 잇쇼(별명은 보라색 범이라는 뜻의 '후지토라')가 이 사람이다. 사실 그는 자연계 열매 능력자가 아니다. 자연계 열매는 그 열매를 먹은 이가 열매 자체로 변신할 수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앞에서 소개한 이들은 모두 그런 능력을 가졌다. 에이스는 '불꽃'으로, 쿠잔은 '얼음'으로, 사카즈키는 '용암'으로, 에넬은 '번개'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 모래인간인 크로커다일은 '모래'로, 연기인간인 스모커는 '연기'로 변신할 수 있기에 이들은 역시 자연계 악마의 열매를 먹은 능력자다. 그런데 잇쇼는 그 몸 자체가 중력이 될 수는 없고 중력을 부릴 수만 있다. 따라서 그는 초인계 악마의 열매 능력자에 속한다. 이것은 돈키호테의 부하인 피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바위바위 열매 능력자인 피카는 거대한 암석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본체(그 자신의 몸)는 그 거대 석상(石像)의 어느 지점에 숨어 있다. 그는 이를 눈치 챈 검객 조로와의 전투에서 거대 석상을 거듭 절단당해서 결국 본체를 드러냈으며, 그 결과로 패했다. 바위바위 열매가 자연계 열매였다면 그의 몸은 그 자체로 암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피카 역시 자연계 열매가 아니라 초인계 열매 능력자다.
잇쇼는 맹인검객으로 중력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자다. 주변의 중력을 바꾸어 적들을 찌그러뜨릴 수 있으며, 우주 공간의 운석을 중력으로 끌어와 적을 공격할 수도 있다. 칼을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중력을 수평이나 수직으로 전개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중력을 거꾸로 작용하게 해서 건물이나 배를 공중에 띄울 수도 있다. 이 마지막 능력(인력이 아니라 척력으로 작용하는 힘)은 현대물리학에서 '암흑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암흑'이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힘의 70%가 암흑 에너지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에서 나온 중력이 4%이므로, 잇쇼의 능력은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렵다.
잇쇼는 전 세대의 삼대장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이다. 앞에서 우리는 사카즈키, 보르살리노, 쿠잔의 순서로 '정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았다. 철저하게 정의를 추구하다가 악이 되어버린 사카즈키, 현실적인 정의를 추구하다가 적당히 나쁜 짓도 저지르는 보르살리노9), 자신의 정의가 올바른지를 고민한 끝에 해군을 은퇴한 쿠잔과 달리, 잇쇼는 스스로 판단하고 옳다고 믿는 정의를 따르고 실천한다.
9) 사봉디제도에서 보르살리노가 처음 출현한 것은, 나쁜 짓을 저지르던 천룡인(세계귀족)을 두들겨 팬 루피 일당을 징벌하기 위해서였다. 법의 보호를 받는 악당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곧 현실과 이상이 들어맞지 않을 때 어찌해야 할 것인가? 보르살리노는 '이상(=정의)' 편에 서지 않고 '현실' 편에 선다.
"어째서입니까, 잇쇼 씨?"
"도플라밍고는 더는 칠무해로 있을 수 없어요. 지금 잡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한 거 아니외까. 당신, 해군에 오래 있었지요? 중장 나리. 내내 흘려들었던 겁니까? 이 분노가 가득한 비명을. 그들은 울고 있는 게 아닙지요. 화가 난 겁니다. 세계정부란 것이 신이라도 되는 것이오?"(해군본부 대장 잇쇼가 중장 메이너드에게, 75권 747화)
다스리던 땅 드레스로자를 지옥도로 바꾸어버린 도플라밍고를 잡아야겠다고 잇쇼가 말하자, 메이너드 중장이 만류한다. 그를 잡으면 세계의 질서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이때의 세계 질서란 해군본부와 칠무해, 사황이 삼분(三分)하고 있는 원피스 세계의 권력 지형을 말한다. 잇쇼는 이런 현실지형에 따른 권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느냐고, 이 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분노라고 말한다. 세계정부는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절대자가 아니다.
"그 흉악한 해적을 왕의 부하 칠무해라는 제도 아래, 일국의 왕으로서 인정하고서 이 땅에 군림시킨 것은 틀림없이 세계정부입니다. 모든 국민 여러분, 왕가의 모든 분들, 정부를 대신해서 깊이깊이 사죄를 드리는 바입니다. 정말 죄송한 짓을 했습니다."(잇쇼가 드레스로자의 전왕 리쿠 국왕과 국민들에게 절하며, 79권 792화)
해군대장 후지토라의 복배사죄(伏拜謝罪)는 특종이 되어 전 세계에 알려진다. 잇쇼가 생각하는 정의란 현존하는 권력자의 권력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의 지배하에 놓인 인민의 입장에서 나온다. 잇쇼야말로 해군본부를 정의롭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앞에서 말했듯 중력은 네 가지 힘 중 가장 미약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힘이다. 전자기력은 양전하와 음전하의 힘이 상쇄되어 일상에서는 별로 느낄 수가 없다. 전기나 번개, 자석의 힘 정도가 우리가 느끼는 전자기력이다. 강한 핵력은 원자핵 내부에서만 작용하는 힘이고 약한 핵력은 방사능 붕괴 때에만 작용하는 힘이므로 일상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잇쇼의 현실권력은 미약하지만(그는 새로이 원수가 된 사카즈키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는 일상의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중력과 암흑 에너지처럼.
이 반대편에 절대악을 추구하는 인물인 검은수염 티치가 있다. 티치는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며 흰수염해적단 산하 선원에서 (현상금 1억 베리를 넘는 신진을 일컫는) 최악의 세대로, 다시 칠무해로, 마지막에는 사황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잔인하고 흉포한 성격의 그는 사기와 음모와 배신으로 절대강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부하들도 최악의 성격과 최강의 실력을 조합한 자들로만 골랐다. 심지어 주인공 루피와는 취미에서 입맛까지 정반대인 인물이다.
티치는 자연계 열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어둠어둠 열매를 먹은 암흑인간이다. 그는 주변의 물체를 끌어당겨서 흡수했다가 한 번에 방출하기도 하고, 다른 열매 능력자들의 능력을 흡수해서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이 능력으로 에이스를 패배시켰으며, 흰수염에게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현대 우주론에서는 우리가 아는 중력의 힘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알려진 힘 가운데 4%), 알려지지 않은 추가적인 중력이 있다(전체의 26%)고 말한다. 나머지 힘은 앞에서 말한 암흑 에너지의 힘이다. 이 26%의 중력을 내는 물질을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에도 '암흑'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암흑물질은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며(정상결전에서도 티치는 보르살리노와는 만나지 않았다), 오직 중력에만 영향을 미친다. 그가 주변의 물체와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술을 '블랙홀'이라 하는데, 널리 알려진 것처럼 블랙홀은 물질의 질량이 너무 커서 빛마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간이다. 따라서 티치는 모든 사물의 무덤이자 능력자들의 무덤이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이 있다. 에이스와의 대결에서 불꽃에 타서 고통스러워하던 티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허억. 허억. 말했잖나. 어둠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총탄도, 칼날도, 타격도, 불도, 벼락도! 너희들과는 달리 공격을 받아넘기지 못해. 내 몸은 온갖 '고통'까지 일반인 이상으로 흡수하고 말지."(티치가 에이스에게, 46권 441화)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아주 작은 일부가 복사 에너지를 거의 방출하지 않는 일상적인 물질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복사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검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거대질량체인 '마초(MAHCO, Massive Astrophysical Compact Halo Object)'이다.
그러나 암흑물질의 대부분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입자인 '윔프(WIMP,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 입자는 뉴트리노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질량이 훨씬 커서 이동속도가 훨씬 느릴 것으로 추정된다.10)
10) 짐 배것, 『기원의 탐구』, 93쪽.
암흑물질의 일부가 일상적인 물질의 형태로 있는 것이 '마초'이며, 대부분의 입자는 '윔프'로 이루어져 있다. 티치는 실제로도 못 말리는 마초다. 그의 이런 무례한 성격은 대식가 주얼리 보니를 사로잡은 후에 그녀를 희롱할 때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인용한 티치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둠어둠 열매는 상대방의 능력을 흡수할 때, 그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 충격까지도 흡수해 버린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공격할 때마다 격통을 느끼며 데굴데굴 구른다. 마치 '윔프'(소심한 사람 내지 약골)가 겁주는 사람 앞에서 구르듯이.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다. 이런 수용성에 더하여, 그는 신체 구조마저 이형(異形)이어서 악마의 열매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다. 그는 흰수염을 죽인 후에 그의 능력을 빼앗아버린다.
"케하하하!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어둠의 인력',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진의 힘'! 손에 넣었다. 이제 더 이상 내게 적은 없다! 나야말로 최강이다!"(검은수염, 59권 577화)
그의 능력 가운데 생산하는 힘, 세우는 힘은 없다. 그는 파괴신의 모습으로 원피스 세계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4
표준모형은 우주가 탄생했을 때에는 네 가지 힘이 하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빅뱅 이후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난 뒤(10-43초 후) 중력이, 그다음에 10-35~10-32초 사이에 강력이, 다시 10-12초 후에 약력과 전자기력이 분리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우주 탄생 초기에 힘들이 분화되기 이전의 힘(이 힘을 '원시 힘'이라 부른다)을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만물의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의 이론 내지 대통일 이론은 물리학자들의 필생의 꿈이다. 아인슈타인도 30년 동안 대통일 이론(당시에는 두 가지 핵력이 알려지지 않아서, 전자기력과 중력을 통합한 이론)을 마련하고자 애썼으나, 끝내 실패했다고 한다. 이 이론은 아직까지도 마련되지 않았으나, 후보는 있다. 이 힘은 이 장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과도 관련되어 있다.
사황이자 흰수염 해적단의 선장 에드워드 뉴게이트는 초인계 흔들흔들 열매를 먹은 지진인간이다. 그는 해군본부 원수 센고쿠에 의해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57권 552화)고 평가받는 최강의 사나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진동시킬 수 있다. 정상결전 때 그는 거대한 해일과 대지진을 일으켜 마린포드를 위기에 몰아넣는다(물론 삼대장의 힘에 의해 저지당했지만). 대신에 그의 힘은 '모든 것'에 적용되기 때문에, 아군에게도 똑같은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물리학은 물질세계를 이루는 기초적인 구성단위가 기본 입자라고 가정한다. 겹겹이 쌓인 층을 벗기면서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결국 언제나 기본 입자를 만나게 된다. 입자 물리학에서 우주의 가장 작은 요소는 기본 입자이다. 끈 이론은 이 가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본 입자는 끈의 진동이라고 주장한다.11)
11) 리사 랜들, 『숨겨진 우주』, 이민재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8, 127쪽.
모든 힘을 통일하는 만물의 이론 후보로 각광을 받는 것이 끈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와 힘이 극히 미세한 1차원 끈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끈의 진동 수에 따라 끈이 다른 모습의 입자나 힘으로 나타난다고 가정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입자는 파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모든 입자는 특정한 진동 수를 가진, 그래서 파동으로 나타나는 끈이 아닐까? 끈이 특정한 패턴으로 진동함으로써 다양한 입자와 힘이 나타난다는 가정이 사실임이 입증된다면 만물을 기술하는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흰수염의 능력은 모든 것을 진동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끈이 하는 일이다. 흰수염은 모두가 한 가족인(=누구도 배척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 끈 이론 역시 모든 것을 설명하는(=어떤 입자도 배제되지 않는) 이론이 되고자 한다. 흰수염의 꿈은 좌절로 끝났으나, 그의 후계자(루피는 흰수염의 양아들인 에이스의 의형제이므로 간접적으로는 흰수염의 아들이기도 하다)에게서 더욱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끈 이론은 실험실에서 검증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으나 '초끈'이나 '막'과 같은 아이디어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자연의 힘에 대한 인간의 탐구와 자연의 힘을 구현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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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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