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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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뚜껑 & 마개
[권혁웅의 상상이야기_5] 뚜껑 & 마개 권혁웅 @ 커플지옥 바늘 가는 데 실이 있고 수나사 있는 곳에 암나사가 있듯, 마개 닫은 곳에는 따개가 있습니다. 커플에도 종류가 있는 걸까요? 실과 바늘이야 본래 천생연분이고 암나사와 수나사가 오래 산 부부와 같다면, 마개와 따개는 토라지고 달래는 애인들 같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그예 열어젖히는 솜씨 좋은 애인이 마개지요. 하긴 망치와 못도 있으니 다른 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머리끄덩이를 잡고 두들겨도 찍소리 못하는 애인이라니, 솔로천국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 사지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왜 놀랐을까? 자라가 너무 커서일까, 아니면 너무 무거워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 뜨거운 자라여서일까? 혹 손잡이 달린 자라여서? @ 사동과 피동의 차이 일의 내막을 공개하는 걸 뚜껑을 연다고 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걸 뚜껑이 열린다고 한다. 요는 누가 열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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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숟가락
[권혁웅의 상상이야기_5] 숟가락 권혁웅 @ 아주 작은 숟가락 어휴, 저 귀지 좀 봐. 우유만 부으면 인디안밥이네.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아주 조그만 숟가락. 그것도 밥이라고, 귓밥을 퍼내는 데 쓰는 그런 숟가락. 이걸로도 고봉밥을 만들 수 있겠어. 그녀가 소근 댔다. @ 아주 큰 숟가락 북두칠성 혹은 작은곰자리가 국자 모양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손잡이 끝에 놓인 별이 북극성이다. 모든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북극성을 임금의 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자를 휘휘 돌리는 자가 밥줄을 쥐고 있는 자라는 뜻. @ 첫 번째 밥통 사람보고 왜 밥통이라고 부르는지 알겠어요. 거 왜, 시력 검사할 때 숟가락으로 한쪽 눈을 가리잖아요? 그렇게 가리면 안 보이니까, 남들이 이 밥통아, 하겠지요? 사실은 그 숟가락으로 제 자신을 떠먹으려 드는 거랍니다. 자기가 정말로 밥통인 줄 아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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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그릇
[권혁웅의 상상 이야기 _1] 그릇 권혁웅 @ 중국식 만찬 이과두주, 공부가주, 오가피주, 죽엽청주……는 죄다 배이름입니다. 일엽편주 같은 거지요. 한 번 타면 떠내려 갈 수밖에 없거든요. 제법 격류거든요. 타는 곳은 아는데 내리는 곳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배들이지요. @ 가야식 만찬 경남 창녕의 송현동 고분에서 발견된 순장은 참 아프다. 아리따운 소녀도 아프지만,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들어간 주인 때문에 더 아프다. 자기 혼자는 억울하니, 시종들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심보 말이다. 밥 한 그릇으로 만족할 수 있겠냐고, 국그릇도 있고 반찬 그릇도 옹기종기 좀 모여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만찬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거 참, 그 주인도 밥을 먹는 자가 아니라 밥그릇 하나에 불과했던 것을. @ 러시아식 만찬 마트로시카 아시죠?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그 속에 더 작은 인형이 겹겹이 든 러시아 인형 말입니다. 그거, 사랑의 상형입니다.